목록엄마로 사는 이야기 (208)
고래가 부르는 노래
너그럽고 관대한 육아의 기본은 사랑보다는 사실, 측은지심이다. 아직 미성숙한 너를 내가 봐준다는 심정. 언뜻 오만해보이지만 꽤나 중요한 마인드이다. 미성숙하기에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방향을 잘못 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무시하지 않으면서 가엷게 여기는 마음'은 진정 어른의 너른 품성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화가 나서 윤우에게 소리를 지르면 윤우는 "소리질러서 미안하다고 말해!"라고 한다. 일단 네가 잘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라고 하면 (굳이 먼저 사과를 받겠다는 유치뽕 마인드..ㅠ.ㅜ) 사과를 하는데, 그 후 내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안긴다. 그토록 매살찼던 엄마가 여전히 내 편임을 확인한 안도감의 눈물일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매번 어린 시절의 나를 안는 느..
# 아들의 프로포즈 를 읽어주고 있었다. 는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아이들 관점으로 이야기해주는 아주 사랑스러운 책이다. 하루종일 시무룩해하는 검은 토끼에게 흰 토끼가 묻는다. - 왜 그러니? * 무슨 생각을 좀 하느라고 그래 -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 내 소원을 생각하는 중이야. - 소원이 뭔데 그러니? * 언제까지나 늘 너와 함께 지내고 싶어. 갑작스런 '프로포즈'에 눈이 똥그래지는 흰토끼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 이 책을 읽더니 윤우가 갑자기 나를 보며 얘기했다. - 엄마, 나 무슨 생각하는지 물어봐 나는 벌써 윤우가 무슨 말할지 예상이 되어서 큭큭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 무슨 생각하는데? - 언제까지나, 엄마와 함께 지내고 싶어. 죽을 때까지 엄마랑 함께 ..
윤우가 어린이집에서 첫 생일을 맞았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의 생일잔치는 소박하다. 다같이 먹을 제철 과일 한가득과 아이들이 직접 빚어서 만들어준 수수팥떡 한 접시 그리고 생일잔치 때마다 사용하는 커다란 초가 하나. 이렇게 세 가지만 있으면 일단 생일상은 차려진다. 주인공은 색종이로 만든 왕관을 쓰고 그 앞에 머쓱하게 앉아있으면 된다. ^^ 어색한 웃음을 짓는 주인공. ^^ 많이 컸다. 아들. 맞은편에서는 친구들이 이렇게 생일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윤우가 사모하는 서연누님. 이제 장화 하나를 고를 때도 "이거 신으면 서연누가가 이뻐하겠지?"라며 그녀의 반응을 먼저 가늠해본다. 아직 아들 마음 속 일등자리를 내놓을 수 없는 나는 재밌으면서도 마음이 허해지곤 하는데 그런 사랑 표현(?..
속이 텅 빈 '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짜증과 불만과 온갖 떼부림을 담아내지 않고 그저 흘러보낼 수 있도록. 윤우는 요즈음 들어 모든 것에 예민하다. 원래부터 무던한 성격의 아이는 아니었지만 요즈음에는 이상스럽게 생각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해졌다. 일단 짜증이 엄청 늘었다.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섞인 괴성을 토해낸다. 윤우가 옷을 벗거나 입기 시작하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질 지경이다. 옷 벗다가 걸려도 짜증, 신발이 안 신겨져도 짜증, 장난감이 망가져도 짜증이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스케치북도 "너무 멀리 있따구!!!!"라고 소리를 지르며 가져다 달라고 한다. 감각이 엄청 예민해졌다. 입맛이 민감해서 왠만한 새로운 음식은 시도조차 안하는 것은 기본이고, 몰래 먹이려고 같은 모양의 ..
원래는 내 어린 시절 동요를 윤우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동요 씨디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펄~펄~ 눈이 옵니다' '동구 밖 과수원 길~' '기찻길 옆 오막살이~' 요런 노래들을 윤우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전자악기음 배경이 아닌, 소박한 반주에 이렇게 옛 노래들을 담아놓은 씨디를 찾기가 진짜 어려웠다. ㅠ.ㅜ 뾰로롱 거리는 전자음이 난무하는 동요도 싫고 '우유송' '숫자송' 같이 인터넷 플래시 애니로 먼저 제작되어서 퍼진 노래(목소리는 귀엽게 한다고 일부러 변조시키고...어후...)도 싫은데 동요 씨디라고 검색하면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온통 이런 노래들 일색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찾다가 지쳐 포기하고 있을 즈음 이 노래책+CD 세트를 만난 거다! '소박하게 연주하겠다'고 다짐하고 만든 동요집이다. 심지어 바이올..
'유아'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있는 윤우. 순간 순간이 아쉬운 나날들이다. 1. 협상의 달인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 중 많은 부분이 조건문이다. "이거 한 입만 먹으면 간식 먹자." "정리 안 할꺼면 엄마는 들어갈꺼야." 등등 "~하면 ~한다."는, 우리가 영어수업 시간에나 의식했던 가정법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좋게 말해 가정법이지 흔히 협박으로 활용되는 이 문법을 아이가 부모에게 고스란히 쓰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엄마, 아빠는 아차! 하며 다시 한 번 육아서를 뒤적여 대화법을 탐색한다. 그래서 다음 번에 등장하는 것이 협상문. 아이가 적절하지 않은 요구를 하면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문법이다. 원래는 이 대안에 혹해서 갈등 상황이 종결되는 것이 부모들이 기대하는 바지만 아이들은 부모에게 차선책을 ..
보낼까, 말까... 유치원에 대한 우리 부부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린이집에 적응해야 하는 건 아이뿐 만이 아니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부모 또한 적응이 필요했다. 적응에 한 달 꼬박 걸리지 않을까 각오했던 윤우는 2주 반 만에 적응을 끝내고 어린이집 현관에서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하는데, 정작 윤우 아빠와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기대를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공동육아를 공부한 만큼, 공동육아를 기다린 만큼 내 안에 높은 기대치가 존재했던 것 같다. 등원을 시작한 바로 다음 주부터 현실과 기대의 극심한 괴리감에 지극히 혼란스러웠으니 말이다. # 터전 안은 마치 야생동물이 버글대는 정글과 같았다. 공동육아에서는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동생들을 돌보면서 서로 배려와 돌봄을 경험하게..
요즈음 들어서 윤우는 자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죽은 벌레들을 가끔 보더니 '죽음'이라는 것이 뭔가 다른 상태라는 것을 눈치챈 것 같다. "엄마, 죽는 게 뭐야?" 글쎄, 죽는다는 게 뭘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아 몇 번이나 "음~"을 길게 반복한 끝에 밋밋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음..죽으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거든. 옆에서 보면 자는 것처럼 보일꺼야. "엄마, 죽으면 눈 뜨고 있어?" - 음...뜨고 죽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 "난 뜨고 죽고 싶어. (흐억! -ㅂ-;;) 엄마, 나 죽을 때 옆에서 눈 뜨게 도와줘~" - 음..아마 윤우가 죽을 땐 엄마, 아빠는 옆에 없을 꺼야. 그 땐 윤우 친구들이나 윤우 아들, 딸들이 도와주겠지. 윤우 얼굴이 갑자기 심..
4월에 진눈깨비가 내린다. 기다리는 마음때문에 봄은 항상 더디 오는 것 같다. 밖에는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3월의 마지막날에 봄은 '3, 4, 5월!'이라는 인지적 구별에서 오는 불편함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이의 겨울내복들을 서랍 깊숙히 정리했다. 지난 겨울 입었던 내복은 2년째 입히는 옷이었는데, 무릎으로 기는 아기도 아니면서 무릎이 몹시 헤졌다. 같이 산 3벌의 내복들이 모두 그랬다. 쑥쑥 크는 아이에게 3개월용으로 새 내복을 사줄 수는 없어서 이번 겨울은 버텨보자며 꿋꿋하게 헤진 내복을 입혔다. -_-;;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너무 거슬렸다. ㅠ.ㅜ 헌 옷을 입히더라도 깔끔하게 보이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서툴게 손바느질을 시작했다. 작아서 못입게 된 윤우의 긴팔 옷을 동그랗게 ..
내가 책읽기를 즐기기 시작한 건 얼마되지 않는다. 정규교육 과정 12년 동안 교과서만 죽어라 읽다보니 책을 지루하고 딱딱하게만 여기게 되었고 학문의 날개를 펼쳐야 할 대학시절에는 갑작스레 몰려드는 홉스, 루소, 로크, 맑스같은 대천재들의 지성을 미처 다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허덕거렸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아기가 현미밥을 받아먹을 수 없는 것처럼, 독해능력도 없는 뇌로 쏟아지는 사상(思想)의 폭포수에 나는 항상 소화불량 상태였다. 그러나 그 한껏 체한 시간들 덕분에 난 도서관을 '발견'하게 되었다. 쿤쿤한 옛 냄새가 나는 낡은 책들 사이에 가만히 서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 넓고 다양한데 전율했고 그 모두를 한꺼번에 다 빨아들이고 싶은 욕심에 애가 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서관과 멀어졌다가 윤우를 임..
폭풍같은 2주일이었다. 10년 넘은 장롱면허의 먼지를 털고 운전대를 잡은데다가, 예상은 했지만 유난히 적응에 힘들어하는 윤우를 안쓰런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했고, 그런 아이를 도와주고자 시작한 터전 생활 속에서 혼란스러운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금 중간 점검을 해 보면, 자동차는 2주만에 차 문 한 번 긁고 범퍼 한 번 찌그러뜨렸고..ㅜ.ㅠ 윤우는 헤어질 때 울지만 다시 만날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조합원 전체모임 후 뿌옇게 흐려졌던 나의 마음이 맑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부터 윤우가 어린이집에 쉽게 적응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윤우는 낯선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힘들어하는 성격인데다가 또래 친구들을 '장난감 뺏는 아이들'로 규정하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새로 어린이집에 ..
겨울이 끝나간다. 가을 끝에 맺은 뼈아픈 다짐과 함께 시작했던 겨울. 유난히 추웠지만 눈은 적어서 방콕생활이 예상보다 길었던 겨울이었다. 항상 철저하게 준비만 하다가 지쳐서 정작 행동은 뜻뜨미지근해지는 나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 엄마표 미술놀이책을 한권 독파하고 놀이 커리큘럼을 짠 후, 미술놀이 재료 사이트(www.momart.co.kr)에서 기본재료로 불려지는 것들을 대거 구매했었다. 폼폼(폭신한 구슬공), 모루(털달린 철사), 무빙아이(인형눈) 등 유아교육 분야의 또 다른 신세계 용어를 익히게 됐다. ^^;; 결과적으로 말하면 다부진 각오로 구매한 미술재료들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만 3세가 조금 넘는 아이에게 의도대로 자르고 붙이고 그리는 일은 버거웠다. 윤우가 한 건 '재료탐색' ..
월요일, 윤우가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했다. 몇 주 전부터 3월에는 어린이집에 갈꺼라고, 아주 재미있는 일이 많은 곳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어린이집 가는 것 자체로 실갱이를 벌이지는 않았다. 윤우가 가는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대안 유치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부모들이 출자금을 모아서 직접 어린이집 터전을 마련하고 선생님과 영양교사를 채용해서 운영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어린이집'이다. 부모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유치원, 어린이집의 대표이며 소유권자인 '원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공동육아(共同育兒)'라는 뜻 그대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동체'인 것이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 어디로 보낼까 고민하고 정보를 찾으면서도 정작 '공동육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참 색다른 주제의 그림책이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기에는 제법 묵직한 주제인 '재개발'을 이야기한 흔치 않은 그림책. '집'을 그리라는 말에 '아파트'를 그리는 요즘 아이들에게 집과 동네, 마을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림으로나마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사직동 - 한성옥 그림, 김서정 글/보림 사직동, 찾아보니 광화문에서 경복궁을 바라보았을 때 경복궁 왼편에 있는 동네이다.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거닐었던 효자동의 옆 동네인 것 같다. 경복궁이라는 제일 큰 문화사적과 인왕산, 청와대 부근이라는 점 때문에 주변 지역은 아직도 재개발이 막혀 다행스럽게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데, 효자동이나 부암동의 모습이 옛 사직동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이 책을 김서정과 함께 쓰고 그림을 그린 한..
아이와 말을 나눈다는 건 에너지 소모가 크다. 아이의 말을 이해하는 것도, 아이에게 내 말을 이해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해와 지각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상대방에게 맞추어야 한다. '나'를 놓고 '너'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반복된다. 부모가 되야 어른이 된다는 말은 이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은 하루하루가 그 '연습'의 나날들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누구나 그렇겠지만 윤우도 쉴 새없이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고 대답을 요구한다. 제일 힘든 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반응을 요구하는 것. 한 번 꽂히면 같은 말을 기본 5번 반복한다. 그것도 완결형의 평서문이 아니라 항상 의문문이다. "타이니가 화가 나서 이렇게 발을 굴렀데?"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연속으로 5번 반복하고 계속 나의 대답을 요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