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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아이의 바지를 기우며... 원칙 중심의 삶을 기도하다

고래의노래 2012. 4. 3. 12:36

4월에 진눈깨비가 내린다. 기다리는 마음때문에 봄은 항상 더디 오는 것 같다.
밖에는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3월의 마지막날에 봄은 '3, 4, 5월!'이라는 인지적 구별에서 오는 불편함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이의 겨울내복들을 서랍 깊숙히 정리했다.

지난 겨울 입었던 내복은 2년째 입히는 옷이었는데, 무릎으로 기는 아기도 아니면서 무릎이 몹시 헤졌다.
같이 산 3벌의 내복들이 모두 그랬다. 쑥쑥 크는 아이에게 3개월용으로 새 내복을 사줄 수는 없어서 이번 겨울은 버텨보자며 꿋꿋하게 헤진 내복을 입혔다. -_-;;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너무 거슬렸다. ㅠ.ㅜ 헌 옷을 입히더라도 깔끔하게 보이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서툴게 손바느질을 시작했다.


작아서 못입게 된 윤우의 긴팔 옷을 동그랗게 오린 후 주위를 박음질하고 조금 밋밋해 보이는 가운데에 은행잎과 나무, 하트를 홈질로 새겼다. 노란색 별과 하트는 옷에 원래 있던 무늬.


무던한 아이라서 잘 입어줄거라고 믿고 있었지만 혹시 모양이 변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입기 싫어하면 어쩌나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완성품을 보여주니 "은행잎이다!" "이건 나무네~!"하면서 좋아라한다. 시댁에 가서는 할머니에게 자기의 '특별한 내복'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

우리 세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어렸을 때 엄마가 양말을 기워주시던 걸 기억한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자연스럽게 보아왔고 기워진 양말을 아무렇지 않게 신고 다녔던 터라 대학시절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엄마에게 양말 어떻게 깁는 거냐고 물어보고 기워서 신고 다니기도 했었다.
요즈음도 가끔 깁긴 하는데 엄마가 예전에 기워주시던 만큼 오래가질 않는다. 요즈음 양말들이 야물지 못한건지 아니면 내 손끝이 허술한건지...


윤우에게 원칙 중심의 삶, 기본에 충실한 삶을 가르쳐주고 싶다.
거창하게는 삶을 살아가는 자세부터 자잘하게는 자연의 원리와 규칙을 이해하는 것까지.

나는 윤우에게 일부러 버블건을 사주지 않았다.
버블건은 놀이동산에 가면 흔히 파는 총 모양의 비누방울 장난감이다. 손으로 총을 쏘는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비누방울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당연히 아이들은 쉽고 편한데다가 비누방울이 많이 나오니까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버블건 전에 아이들에게 입으로 바람을 불어 비누방울을 만드는 법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모든 정보가 손 안에 들어오는 세상이다. 쉽고 편하고 빠른 만큼 사람들은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어가는 세상. 결과에만 현혹되지 말고 과정을 탐구할 줄 아는 호기심이 유지되었으면 한다.

과일도 제철에 나오는 과일이 아니라면 사주지 않으려고 한다.
제철 과일과 채소 목록을 냉장고에 따로 붙여놓고 선별해서 사야할만큼 요즈음은 언제가 제철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마트에는 4계절의 과일과 채소가 온통 모여있으니 말이다. 윤우는 수박과 포도를 좋아하지만 여름까지 기다리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은 자기만의 시간표가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개척자가 아니라 순종자이길 바란다.

가난하지 않더라도 물건을 함부로 쓰지 않고 귀히 여기는 마음이 윤우 속에 단단히 자리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무릎에 은행잎이 생겼다 좋아하지만 학교에 들어가고 또래에 섞이다 보면 유행 브랜드 옷 사달라 땡깡도 피우고 기워준 양말을 창피해하고 심지어 겨울에 내복도 입지 않겠다며 객기를 부리겠지. 그래도 어린시절 엄마의 모습을 보고 내가 배웠듯이 윤우도 지금의 순간순간을 태도로써 기억해주리라 믿는다. 그러다 철이 든 어느날 문득 구멍 뚫린 양말을 들고 나에게 전화를 할 날이 있을 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