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노래책]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 - 참으로 솔직한 아이들의 노래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과 책읽기

[노래책]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 - 참으로 솔직한 아이들의 노래

고래의노래 2012. 5. 27. 17:38

원래는 내 어린 시절 동요를 윤우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동요 씨디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펄~펄~ 눈이 옵니다' '동구 밖 과수원 길~' '기찻길 옆 오막살이~' 요런 노래들을 윤우에게 들려주고 싶은데 전자악기음 배경이 아닌, 소박한 반주에 이렇게 옛 노래들을 담아놓은 씨디를 찾기가 진짜 어려웠다. ㅠ.ㅜ 뾰로롱 거리는 전자음이 난무하는 동요도 싫고 '우유송' '숫자송' 같이 인터넷 플래시 애니로 먼저 제작되어서 퍼진 노래(목소리는 귀엽게 한다고 일부러 변조시키고...어후...)도 싫은데 동요 씨디라고 검색하면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온통 이런 노래들 일색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찾다가 지쳐 포기하고 있을 즈음 이 노래책+CD 세트를 만난 거다! '소박하게 연주하겠다'고 다짐하고 만든 동요집이다. 심지어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같은 서양 악기들도 '뭔가 어른스러운 듯해서'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 목소리가 악기 소리에 묻히지 않고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 (책 + CD) - 10점
백창우 작곡, 아람유치원어린이들 글, 설은영 그림/보리

 

새댁 언니한테 한번 이야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직접 상품평을 보고 노래 목록을 보니 듣기도 전에 '큭'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곡은 유치원 아이들이 엄마와 나눈 '마주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어 백창우가 노래를 지은 것이다. 백창우 아저씨의 노래가 참으로 정겨운 건 알지만 왠지 우울해서 나는 듣기가 좀 거북했는데, 이 노래 씨디에는 우울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 엉뚱발랄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담아내다보니 '단조'음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나 보다. ^^ ㅎㅎ

 

아이들의 생생한 마주이야기인지라 가사 내용이 정말 적나라하다. 아이들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어떨 때는 어른인 우리가 조금 찔리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너무 솔직해서 조금 겁나기도 한다.^^;; 고지식한 우리 남편은 '이거 지금 들려줘도 되는 노래냐'며 걱정하기도 했다. ㅎㅎㅎ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 애기 땜에 못살겠어. 애기 땜에 못살겠어. 애기만 이 집에 놔두고 우리 딴 집으로 이사가자.

이 집에 있는 짐 다가지고 우리 딴 집으로 이사가자. 엄마, 으응? 애기만 이 집에 놔두고 이사가자.

그냥 이 빈 집에 혼자 살라고 해. 애기가 나를 귀찮게 하잖아. 할퀴고 차고, 할퀴고 차고, 애기땜에 못살겠어.

 

내가 놀기만 하면 방해하고 그래서 밀치면 어른들 불호령이 떨어지니 아이들은 답답도 할꺼다. 그런데 아기를 버리고 가자니 어찌 들으면 어른들은 떼끼!할 내용인 거다.

 

뒷목 당기는 엄마의 심정이 너무나 절절히 공감되는 노래도 있다. ( )괄호 안이 엄마 부분.

♬ 엄마, 나 이 바지 입기 싫어. (예쁘잖아 그냥 그거 입어.)

싫어 안 입을래. (왜?) 뚱뚱해보이잖아.

엄마 나 치마 입을꺼야. (무슨 치마를 입어. 오늘 추워서 안 돼.)

싫어. 소현이도 치마 입었어. (안 돼. 추워서. 너무 추워서 안돼.)

싫어. 싫어. 치마 입을 꺼야. (그래, 입어라. 입어 입고 얼어죽어.) 

싫어. 싫어. 안 죽을꺼야.

(이제 치마 입었으니까 밖에 나가 놀아.) 싫어. 싫어. 싫어. 집 안에서 놀꺼야.

 

마지막에 집에서 놀겠다는 아이 얘기에 눈 커지고 맥박이 빨라지며 뒷목잡는 엄마가 그려진다. ㅋㅋㅋㅋ

 

그리고 정말 찔리는 노래도 있다.

♬ 흐~응, 엄마 아빠 왜 안 자. 맨날 맨날 우리만 자래.

우리 자면 엄마, 아빠 비디오 보고 늦게 잘 꺼지.

흐~응 흐~응 우리 모두 같이 자자 ♬

 

아웅~ 비디오 보고 놀다 자는 거 어찌 알았지. ㅎㅎㅎ 저렇게 얘기하니까 억울한 심정이 공감이 된다. ^^

 

엄마가 들으면 조금 서글퍼지는 노래도 있긴 하다.

♬ (너 놀기만 하고 공부 안하면 소 돼.) 잠만 자면 소 되지.

(공무 안 하고 놀기만 해도 소 돼.) 외할아버지네 소도 공부 안 해서 소 된거야?

(그래, 외할아버지네도 어린애가 한 명 있었는데, 놀고 자고 놀고 자고 그래서 소가 됐어.)

그럼 놀지 않고 공부만 하면 뭐가 돼?

 

(성수야~ 받아쓰기 하자.) 싫어. 싫어. 하기 싫어

(이제 학교 갈텐데 공부해야지.) 학교가도 받아쓰기 해?

(그럼~ 하지.) 그럼 엄마가 좋아하는 하바다 대학가도 거기서도 해?

(그럼, 하바드 대학가면 더 어려운 공부하지.) 받아쓰기보다 더 어려운 공부가 있어?

(성수야, 너 그렇게 공부 못하면 커서 아무것도 못해.) 엄마는 어릴 떄 공부 잘 했어?

(그럼~ 잘 했지.) 그런데 엄마는 왜 박사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안 됐어?

 

'엄마'가 된다는게, 더군다나 '제대로 된 엄마'가 된다는게 박사나 선생님 되는 것도다 만배, 천배 힘들다는 걸 아이들이 지금 알아줄 리가 없다. 이걸 제대로 알아주는 어른들도 흔치 않으니 말이다.

 

윤우가 저 노래를 부르며 "놀지 않고 공부만 하면 뭐가 돼?" 라고 묻기에 (노래에서도 이에 대한 대답이 없어서 궁금했나보다.) 살짝 고민하다가.... "심심한 사람 돼."라고 대답해줬다. -ㅂ-;;; 뭐..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니까..흠흠

 

자기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아이들은 정말 열광한다. 그래도 너무나 적나라한 내용이 조금 거슬린다면 같은 시리즈 중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를 추천한다.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책 + CD) - 10점
마암 분교 아이들 시, 백창우 작곡, 김유대 그림/보리

 

이것은 아이들의 시에 백창우가 노래를 붙인 것으로 작정하고 '시'를 쓴 것이기에 내용은 보다 유순하다. ^^ ㅎㅎ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이지만 전자음이 난무하는 동요씨디에서 아이들 귀를 해방시켜 주고 싶다면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아이들 생각과 마음이 잘 드러나도록 반주 악기를 되도록 적게 쓰고 소박하게 연주했다'는 설명에 아이를 생각하는 따뜻함이 전해져서 믿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