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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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최소한의 부모 자격

고래의노래 2012. 10. 28. 22:51

너그럽고 관대한 육아의 기본은 사랑보다는 사실, 측은지심이다.

아직 미성숙한 너를 내가 봐준다는 심정. 언뜻 오만해보이지만 꽤나 중요한 마인드이다. 미성숙하기에 무시해도 된다는 식으로 방향을 잘못 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무시하지 않으면서 가엷게 여기는 마음'은 진정 어른의 너른 품성에서만 가능하다.

 

 

내가 화가 나서 윤우에게 소리를 지르면 윤우는 "소리질러서 미안하다고 말해!"라고 한다.

일단 네가 잘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라고 하면 (굳이 먼저 사과를 받겠다는 유치뽕 마인드..ㅠ.ㅜ) 사과를 하는데, 그 후 내가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안긴다.

그토록 매살찼던 엄마가 여전히 내 편임을 확인한 안도감의 눈물일 것이다.

 

나는 그 순간 매번 어린 시절의 나를 안는 느낌이었다.

냉랭한 시선과 차가운 말들에 상처받고 오그라든 어린 나.

저 사람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나인데, 그 유일한 희망이 나를 거부한다는 두려움에 오들오들 떠는 가엷은 아이.

황량하고 외로운 벌판에서 홀로 울고 있는 나의 어린시절이 점점 녹아든다.

 

힘든 상황에서 아이를 따뜻하게 대하면 자신의 어린시절이 치유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육아서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이를 어른으로 대하고 있지 못하다. 마치 장난감을 바꿔노는 아이들의 거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때로는 내가 아이 앞에서 떼쟁이가 되고는 한다.

 

 

며칠 전 잠들기 전 장난감을 정리하라고 하는데 늦장을 부려서 나는 화가 있는 대로 났다.

거칠게 이를 닦이고, 물을 많이 묻혀서 세수를 시키면 윤우가 힘들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맘껏 세수를 시켰다.

발도 거칠게 대충 닦이고 이제 책을 가져오라고 하니까

"화난 목소리로 빨리 읽어주지마.."이런다.

 

- 몰라! 그건 엄마 마음이야! 그게 싫으면 그냥 자던지!

 

"...어떻게 하면 엄마 화 풀려? 뽀뽀하면 돼?"

 

- 아니, 화 안풀려!"

 

윤우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보더니

"우리 다같이 미안하다고 하자.

내가 정리 안했어...그리고 엄마가 소리질렀어.

......미안해"

라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는 머쓱해져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 ".........미안해."

 

"뽀뽀하자."

윤우가 나에게 다가와 뽀뽀를 한다.

 

"우리 이제 사이좋게 지내는 거야"

 

윤우의 눈은 빨개지고 눈물이 고여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윤우는 울지 않았다.

 

나는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놀이치료를 다니는 윤우와 어른인 나 둘 중 도대체 누가 사회성이 부족한건지....

 

책을 읽어주고 잠들기 전 윤우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해..그리고 고마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먼저 뽀뽀해줘서 고마워.

먼저 사이좋게 지내자고 해줘서 고마워.

고마워..."

 

윤우는 그저 씨익 웃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그러니까 딱 하나만이라도 지키자. 어른이 아니면서 어른인 척 자존심 부리지 말기.

창피하고 부끄러우면 그렇다고 말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이것만이라도 지키는 부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