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윤우의 반짝이는 말들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윤우의 반짝이는 말들

고래의노래 2012. 10. 11. 17:52

# 아들의 프로포즈

<흰 토끼와 검은 토끼>를 읽어주고 있었다. <흰 토끼와 검은 토끼>는 엄마와 아빠의 결혼을 아이들 관점으로 이야기해주는 아주 사랑스러운 책이다.

 

하루종일 시무룩해하는 검은 토끼에게 흰 토끼가 묻는다.

- 왜 그러니?

* 무슨 생각을 좀 하느라고 그래

-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 내 소원을 생각하는 중이야.

- 소원이 뭔데 그러니?

* 언제까지나 늘 너와 함께 지내고 싶어.

갑작스런 '프로포즈'에 눈이 똥그래지는 흰토끼의 클로즈업된 얼굴이 이 책의 하이라이트.

 

이 책을 읽더니 윤우가 갑자기 나를 보며 얘기했다.

- 엄마, 나 무슨 생각하는지 물어봐

나는 벌써 윤우가 무슨 말할지 예상이 되어서 큭큭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 무슨 생각하는데?

- 언제까지나, 엄마와 함께 지내고 싶어. 죽을 때까지 엄마랑 함께 있을래.

 

단지 책 속의 대사를 따라한 것 뿐이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감동이었다.

남편에게도 못들어본 정식 프로포즈. 이래서 엄마에게 아들은 마지막 연인인건가...아..녹는다.

 

 

# 아들와 엄마만의 비밀

한밤중에 이불에 지도를 그려서 일어난 윤우. 왠일로 징징거리지도 않고 점잖게 얼른 옷을 갈아입혀달라고 해서 일으켜 세워서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아랫도리를 벗겨 씻겨주는데 윤우가 작게 이야기한다.

 

- 엄마, 이거 아빠한테 얘기하지마. 아빠한텐 비밀이야.

* 뭐? 윤우 쉬한거?

- 응.

 

속으로 또 큭큭 웃음이 나왔지만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 알았어. 걱정마.

 

며칠 전 계속 쉬를 하라는데도 윤우가 쉬를 참다가 변기 앞에서 실례를 해버린 적이 있었다. 남편은 억지로 참았기 때문에 실수라고 여기지 않았고 윤우를 따끔하게 혼을 냈었다. 아무래도 그 기억이 남아 지도를 그린 걸 어빠에게 절대 들키지 않아야겠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들과 엄마의 첫번째 비밀 탄생. ^^

 

 

# 마음을 움직이는 법

너무 졸려서 침대에 잠깐 누웠다. 자기랑 놀아주지 않아도 엄마가 눈에 안보이는 걸 못참는 윤우는 안방까지 쫓아와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 엄마, 일어나~~~~

* 아...엄마 너무 졸려. 조금만 누워있을께

- 밖에 소파에서 누워있어~~~~

* 아...잠깐만...

- 엄마, 일어나. 부.탁.이야.

 

'부탁'이라니....ㅋㅋㅋ 저 말에는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폭퐁이 아니라 햇빛이라는 걸 알아가나보다.

 

 

# 애어른

윤우는 자주 어른 말투를 쓴다.

포도를 두고 싸우는 친구과 친구 동생을 보더니

 

- 포도를 서로 먹겠다고 싸우고 있네. 아이고 참.

이라며 '뒷짐을 지고!!!!' 말을 한다. ㅋㅋㅋㅋ

 

일찍 퇴근한 남편의 저녁상을 따로 차려주는데

- 엄마, 아빠 저녁밥 차려줘?

* 응. 아빠 저녁 안드셨데.

- 엄만 참 힘들겠다. 나랑 엄마 밥도 차리고 또 아빠 밥도 차리고.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게다. 아..정말 아들 밖에 없다!!!!!

 

내가 '고마워'라고 이야기를 하면

- 고맙다고 해줘서 고마워.

라고 이야기를 한다.

 

 

하루하루가 반짝인다. 우리 아들로 와줘서 고맙다. 윤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