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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어린이집(유치원) 적응이 힘든 '엄마와 아빠'

고래의노래 2012. 4. 30. 01:20

보낼까, 말까... 유치원에 대한 우리 부부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린이집에 적응해야 하는 건 아이뿐 만이 아니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부모 또한 적응이 필요했다.

적응에 한 달 꼬박 걸리지 않을까 각오했던 윤우는 2주 반 만에 적응을 끝내고 어린이집 현관에서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하는데, 정작 윤우 아빠와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기대를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공동육아를 공부한 만큼, 공동육아를 기다린 만큼 내 안에 높은 기대치가 존재했던 것 같다. 등원을 시작한 바로 다음 주부터 현실과 기대의 극심한 괴리감에 지극히 혼란스러웠으니 말이다.

 

 

# 터전 안은 마치 야생동물이 버글대는 정글과 같았다.

 

공동육아에서는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동생들을 돌보면서 서로 배려와 돌봄을 경험하게 하자는 취지로 연령통합교육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공동육아의 아이들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약자를 위해주고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의젓한 '개념 유아'들을 기대했었다. 착하고 순하고 그러면서도 발랄한 '천사' 어린이들을 꿈꿨던 것이다. 

 

처음 아이들 사이의 몸싸움을 목격하고 이런 내 기대는 보기 좋게 깨져 버렸다. '장난'으로 6, 7세 아이들이 5세 신입 아이를 몸으로 툭툭치며 깔깔거리는데, 나는 꼭지가 돌 듯한 분노를 느꼈다. 그 5세 아이의 눈빛에 공포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주먹이 나갔고, 남녀 성역할과 이미지에 집착하며 여기에 벗어나는 아이를 놀려댔으며 터전 내의 규칙들을 가볍게 무시했다.

 

안그래도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간의 몸싸움 문제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는 상태였다. 원아의 수가 적다보니 문제를 일으키는 몇몇 아이들이 전체 어린이집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신입 아이들이 언어폭력과 몸싸움 문제로 많이 피해를 보고 힘들어하고 있었다.

 

 

# 윤우는 온갖 나쁜 말과 나쁜 행동을 쭉쭉 빨아들였다.

 

어린이집에 다닌 후로 윤우는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안 좋은 말들을 배워 와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종알거렸고, 과격해졌으며 우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엇나가는 일이 많았다.

 

특히나 걱정스러운 건 할퀴고 꼬집고 사람에게 물건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몇 주 전에는 남편 얼굴을 할퀴고 얼굴에 옷을 던지는 행동을 했다. 예전의 윤우라면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남편이 깜짝 놀라 이런 걸 어디서 봤냐고 하니 어린이집 형아들이 하는 행동을 봤다고 했단다. 나보다도 아빠에게 공격 행동을 많이 하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누가 싫을 때 하는 거'라고 한다. 스치듯이 한 대답이었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저녁에는 화장실에 주먹밥을 던져넣고 낄낄거리는 녀석을 보고 분노해서 엉덩이를 몇차례나 세게 때렸다. 윤우가 태어난 이후 가장 세게 체벌을 한 것이다. 때리고 나서 너무나 속상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고 있으니 윤우가 다가와서 울면서 잘못했다고 한다. 둘이 부둥켜 안고 울었다. 아이 엉덩이를 보니 빨갛다. 마음이 찢어졌다.

 

이 시기의 아이에게 필요한 건 또래랑의 상호작용보다 바른 본보기를 보여줄 어른과의 관계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

 

 

# 공동육아의 교육철학은 실행주체 없이 부유하는 허상일까.

 

공동육아의 기본 교육 지침 중 하나는 터전 안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아마들에게 반말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육아를 시작하기 전에는 제일 마음에 걸렸던 문제였지만 나중에는 반말 경험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윤우는 어린이집 다닌 지 한 달만에 집에서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이 곳에서는 터전에서 아이들이 반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아마들에게 이유를 불어보니 아이들에게 반말을 쓰라고 한 적도 존댓말을 쓰라고 한 적도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맡겼다는 것. 그러면서 아이들이 존댓말과 반말을 섞여 쓰고 있다고 했지만 나는 6, 7세 아이들이 우리에게 반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무 것도 모르는 5세 아이들만 주로 반말을 쓰고 있었다. '왜 공동육아의 교육 지침을 지키지 않는가, 만약 이대로 유지하고 싶다면 그 논거가 확실해야 한다.'며 토론의 장을 마련해보려 했지만 아직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

 

공동육아의 맹점은 공동육아의 교육 철학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주체가 없이 항상 운영 당사자들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역사가 오래된 공동육아 집이라도 항상 제자리걸음이기 쉽다. 게다가 구성원들에 따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아이들 몸싸움에 관해서, 반말 문화에 관해서, 조직 운영의 효율성에 관해서 계속 '딴지'를 걸고 있지만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닐까 스스로 걱정이 된다.

 

 

#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 사이에서

 

우연히 어느 모임에서 만난 미술강사 분에게 발도르프 유치원에 대한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분당에 있는 발도르프 유치원에 수업을 나가는데, 아이들이 어른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예의 바른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귀가 번쩍 뜨였다. 원래 공동육아가 아니라면 발도르프를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발도르프는 자연에서 뛰어놀고 인지학습을 지양하는 등 공동육아와 방향이 비슷한데 공동육아보다 조금은 차분한 분위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윤우에게는 오히려 이 곳이 맞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발도르프 유치원에 모두 상담을 다녀본 후 공동육아를 선택한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 낮잠 시간에 면담을 갔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부작거리는 아이에게 교사가 "OO야, 눈 감어! 누워!"라면서 매우 엄하게 대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 보이는 '평화'는 결국 어른들이 보기에 만족스러운 모습일 뿐이지 않을까. 그 모습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다그침을 받았을까.

 

지난 주에 터전 아이들은 경찰서 견학을 했다. 이 때 아이들 견학을 맡았던 여경은 아이들이 다른 유치원 아이들과 너무나 다르다며 놀라워 했다고 한다. 즉 너무나 무질서한 것에 놀라고(;;;) 거침없이 질문을 쏟아내는 것에 놀랐단다.

강한 통제와 규율없이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기르고자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엉망진창인 상황'만을 만들고 있는 것만 같다. 자연주의는 자유방임일까. 과연 아이들에게 허용할 수 있는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걸까.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인걸까!

 

발도르프는 특정한 교육철학을 내 건 유치원인 만큼 원장과 교사들이 자신들이 전문가라는 생각이 강해서 부모들이 여기에 개입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한다. 유연성이 없는 가치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하지만 왔다갔다 하는 아마들에 의해 흔들리는 공동육아의 철학은 누가 중심을 잡아줄 수 있을까.

 

질서와 자유, 억압과 방임, 견고한 가치와 완고한 가치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싶은데 흔들린다. 계속 흔들린다.

 

 

# 고통없는 성장은 없다.

 

머리 아프게 고민하고 한숨도 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고자 선택한 곳이었다. 고민하고 있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아이들을 키우려고 했으면 공동육아를 선택하지도 않았다.'

평화로워 보이는 일반 유치원의 '줄맞춤' 속에 내가 윤우를 보내지 않은 건 그게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러한 '어수선함'을 기꺼이 감내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쉽게 그저 유치원 담장 안에 아이를 들여보내고 그 속에서의 일상을 남의 손에 맡기고 두 손 놓고 있는 게 싫어서, 이렇게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짜피 공동육아를 시작하기 전 내가 제일 원했던 것은 '공동체'였다. 공동체의 기본은 얼핏 무질서해보이는 '구심점이 없는' 상태이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들기 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이 문제에 대해 스캇 펙 박사는 잘 지적하고 있다. (스캇 펙 박사의 평화만들기 : http://whalesong.tistory.com/318) 내가 힘든 건 지금 이 지점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고민 모두가 윤우 아빠와 내가 아이에게 턱없이 놓은 행동기준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윤우가 너무 FM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행동이 경직되어 있다는 거였다.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해 보니 밥먹기, 쉬하기, 잠자기 등 일상생활 속에서 내가 윤우에게 너무 규칙을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짜 중요한 몇가지 규칙(남을 때리지 않기, 차도를 함부로 건너지 않기 등)만 제외하면 어느 정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을 들었다.

 

주먹이 난무하는 터전인데도 윤우에게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지, 좋은지 물으면 좋다고 이야기한다. 질문을 조금씩 바꿔서 몇 번을 물어도 똑같은 대답이다. 개구쟁이 형아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조금씩 자기의 틀도 깨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 단지 애어른이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 과정, 그것일지도...

 

어쩌면 이 모두가 우리 부부가 철저히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래, 깨지고 부딪혀보자. 이 진통 뒤에 올 변화가 무엇일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분위기를 바꿔서~~~ 요즈음 윤우의 행태는 딱 이 사진의 느낌 그대로이다. 망나니 5세 남자아이의 재탄생.

까불과 촐싹 레벨이 연일 상승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