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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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민감한 아이 키우기

고래의노래 2012. 8. 4. 22:00

속이 텅 빈 '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짜증과 불만과 온갖 떼부림을 담아내지 않고 그저 흘러보낼 수 있도록.

 

윤우는 요즈음 들어 모든 것에 예민하다.

원래부터 무던한 성격의 아이는 아니었지만 요즈음에는 이상스럽게 생각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해졌다.

 

일단 짜증이 엄청 늘었다.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섞인 괴성을 토해낸다. 윤우가 옷을 벗거나 입기 시작하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질 지경이다. 옷 벗다가 걸려도 짜증, 신발이 안 신겨져도 짜증, 장난감이 망가져도 짜증이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스케치북도 "너무 멀리 있따구!!!!"라고 소리를 지르며 가져다 달라고 한다.

 

감각이 엄청 예민해졌다.

입맛이 민감해서 왠만한 새로운 음식은 시도조차 안하는 것은 기본이고, 몰래 먹이려고 같은 모양의 오메가 3 약이랑 비타민 약을 섞어서 통에 넣은 뒤 하나씩 주었는데 냄새로 오메가 3를 구분하고 골라냈다. 우리 코에는 그저 다 똑같은 달달 젤리향이구만...-_-

빛에도 예민해서 햇빛이 강한 날은 힘들어하고 깜깜한 방에서 갑자기 환한 곳으로 나올 때도 무언가에 찔린 듯한 소리를 지른다.

촉각 예민한 건 오래된 이야기. 신발 속에 모래가 들어가는 걸 참지 못하고, 목욕탕 바닥 물기가 발에 닿는 것조차 거부한다. 쉬하다가 조금이라도 쉬가 팬티에 튀면 바로 새 팬티로 갈아입는다. 하루에 갈아입는 팬티만 3장 정도.

청각도 마찬가지. 시끌벅쩍한 곳은 일단 무조건 피한다. 제주도에서는 파도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며 바다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기도 했다.

 

참을성은 제로이다. 차례를 기다려서 그네를 탄다는 게 윤우에게 가장 힘든 고행이다. 먼저 그네를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든지간에 상관없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야!!!! 나뻐!!!!"를 연발한다. 무언가를 요구해놓고서는 내가 준비를 하러 가는 그 순간 "오래 걸려!!!!"라며 째지는 소리를 낸다. 버스를 기다려야 할 때에는 버스가 올 때까지 "버스 언제 와!!!!!"라는 말을 100번은 반복한다.

 

체력이 약하다.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며 짜증을 내고 안아달라고 한다. 힘들면 앉아서 쉬었다 가자고 하면 더러운 곳에는 앉을 수 없다며 째지는 소리를 낸다.

게다가 떼부림은 늘었고, 행동은 제지되지 않는다.

 

"키우기 힘든 아이이긴 해요. 힘드시죠."

지난 번 정신과 진료 때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어느 정도 말이 통하기 시작하니 친구같이 느껴져서 이제 아이 키우는 맛이 느껴진다는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가....정말 다른 세상 이야기같다. 나에게 아직 윤우와의 시간은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다... 언제쯤이면 내 마음이 평화로워질까. 다시 오지 않을 윤우의 유년기를 함께 즐기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내 감정이 아직 너무 버겁다. 윤우가 쏟아내는 오만가지 감정의 쓰레기들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는 느낌이다.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간절하다.

 

거대한..관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