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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43개월 윤우의 변화들

고래의노래 2012. 5. 11. 11:05

'유아'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있는 윤우. 순간 순간이 아쉬운 나날들이다.

1. 협상의 달인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 중 많은 부분이 조건문이다. "이거 한 입만 먹으면 간식 먹자." "정리 안 할꺼면 엄마는 들어갈꺼야." 등등 "~하면 ~한다."는, 우리가 영어수업 시간에나 의식했던 가정법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좋게 말해 가정법이지 흔히 협박으로 활용되는 이 문법을 아이가 부모에게 고스란히 쓰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엄마, 아빠는 아차! 하며 다시 한 번 육아서를 뒤적여 대화법을 탐색한다.

그래서 다음 번에 등장하는 것이 협상문. 아이가 적절하지 않은 요구를 하면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문법이다. 원래는 이 대안에 혹해서 갈등 상황이 종결되는 것이 부모들이 기대하는 바지만 아이들은 부모에게 차선책을 제시하는 법만 배우는 것 같다. ㅜ.ㅠ

윤우는 요즈음 대안에 쉽게 걸려드는 적이 없다. 매번 시장에서 에누리하듯 일단 깎고 들어가 본다.

"아까 사탕 먹었으니까 그건 내려놓자."
- 들고만 있는건 어때? (속셈 다 보인다..-_-;;)

"10분 뒤에 정리하자~!"
- 너무 짧다! 3분뒤는 어때? (오냐. ㅋㅋ)

매번 이런 식.


2. 합리화
일단 벌어진 상황을 자기 입장에 우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인 '자기 합리화'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근본 해결책은 아니지만 스트레스를 경감시키는데는 효과적이라고 한다. 일단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기본 가정이니 당연히 마음은 편할 수 밖에. ㅋㅋㅋ 겉으로 속이 드러나보이는 '참으로 정직한 자기합리화'를 요즈음 윤우는 자주 한다.

(빨갛게 칠해야 되는데 자기도 모르게 까맣게 칠하고는) "빨간색 진하게 하려고 그랬어"
(미로찾기 하다가 중간에 길 잃고) "여기 잠깐 들러 본거야"
(자전거 페달 너무 빨리 밟다가 발 헛디뎌 멈춘거면서) "빨간불이라 멈춘거야."

너무나 뻔뻔한 자기합리화라서 들으면 큭! 하고 웃음이 터진다.


3. 원근법을 쓸 줄 안다.
멀리 있는 것은 가까이에 있는 것보다 작고, 뒤에 있는 것은 앞에 있는 것에 가려진다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사실이 그림 위에 적용되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동양보다는 훨씬 일찍 입체적인 화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서양에서도 초기의 종교화 대부분에서 이런 원근법이 살아있지 않다. 우리가 아는 소실점이 '발견되었다'고 이야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윤우가 이 그림을 그리면서 "저 트럭은 이 트럭보다 뒤에 있어서 가려진거야."라고 했을 때 어찌나 놀랍던지!!! 인류의 지능이 세대를 통해 '다행히도'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냥 나 도치맘인가? ㅋㅋㅋ


4. 연필잡기
38개월 즈음까지는 필기도구를 잡고 주먹을 쥔 채로 그림을 그렸다.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니 자연히 세밀한 묘사는 어렵고, 손에 힘에 많이 안 들어가서 조금만 필기구가 뻑뻑해도 그림 그리기를 거부했다. 안되겠다 싶어 연필 쥐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처음에는 물론 완강한 거부. 하지만 그렇게 집는 법을 바꾸면 작은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더 진하게 색칠도 할 수 있다고 설득하자 슬그머니 넘어들어갔다. 두 달 정도 연습한 끝에 따로 지적하지 않아도 될만큼 연필잡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연필잡는 법은 36개월 즈음해서 가르쳐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 시기가 지시를 스스로 따를 수 있으면서도 저항이 적은 틈새시기인 듯. 지금 만약 고치려고 했다면 나와 윤우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있었을 것 같다. -_-;;; 물론 처음부터 잡는 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제일 좋겠지.


5. 버스의 세계
윤우가 요즈음 관심있어 하는 것은 버스와 차도, 신호등 등 온통 교통체계와 관련되어 있는 것들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버스, 버스 오로지 버스!!!!!!!!!! 터전에 등원할 때도 버스타고 가는 걸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꼭 버스를 타고 간다.


윤우가 그린 '버스 대작' 울퉁불퉁한 과속방지턱과 구불구불한 차도, 커다란 버서같은 차도 옆 가로수들, 하늘을 떠다니는 시계와 반짝이는 별들까지...여기는 거대한 버스 나라다. ^^

버스가 윤우에게 알려주는 것들도 많다.
9000번이나 9401을 타고 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서울에는 파란 타요가 많은데 우리 동네에는 없다는 거다. (맞다, 성남시는 시내버스가 모두 '로기'이다 ㅋㅋㅋ)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 에버랜드로 가는 버스,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 아빠 회사로 가는 버스 등...버스와 목적지를 모두 연결지으며 익히려고 열심이다. 좁은 아파트에 마음까지 좁게 매이지 말고 자신의 활동공간으로 생각하는 영역을 버스 목적지들만큼이나 넓게 잡았으면 좋겠다. ^^;;

버스 번호를 읽다보니 백단위나 천단위의 숫자를 읽기 시작했다. 물론 체계가 아직 잡힌 것은 아니고 익숙한 버스 번호 외에 다른 백단위, 천단위 숫자를 읽을 때면 실수가 잦긴 하지만 말이다. '수'라는 게 어렵고 딱딱한 게 아니라 재밌고 신기한 분야라는 걸 엄마는 몰랐지만 윤우는 알아주길. ^^ ㅎㅎㅎ 남편은 윤우보고 수리능력이 약하다며 문과일 것 같다고 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모르겠는걸?


6. 혼자 할 줄 아는 게 많아졌다.
화장실 벽면에서 자꾸만 떨어지는 남자아이 소변기를 치우고 그냥 변기에 쉬를 하도록 시켰다. 변기 입구가 넓으니까 조준에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서 혼자 해보라고 했더니 왠걸, 잘 한다! ㅋㅋㅋ 근데 쉬하고 나서 고추는 왜 꼭 나한테 털어달라고 하는거지..-_-;;;
혼자 밥먹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시키면 한다. 하지만 능력은 있으되 아직 할 마음은 없는 듯. 자꾸 밥을 먹여 달라고 해서 몇 번 강요를 하다가 사소한 문제에 얽매여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말라는 주변 엄마들의 조언을 듣고 '그래, 언젠가는 먹여준데도 도리질을 치겠지..'하며 느긋하게 마음먹고 그냥 먹여주고 있다.


7. 자전거를 타요!
드.디.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타보지 않았으니 그야말로 생초보! ㅋㅋㅋ
산책갈 때 매번 유모차만 끌려고 하기에 자전거를 일년정도 끈덕지게 권했는데, 윤우가 해보지도 않고 "나는 못 해!"하며 끈덕지게 거부했었다. 이 녀석 아무래도 완벽주의가 있는 듯..아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주말에 날을 잡고 남편이 아이를 '억지로' 자전거에 태웠다. 그 첫 경험뒤로 윤우는 자전거 홀릭. ㅎㅎㅎ

하원 후 자전거 라이딩이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이 경험으로 '일단 해보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라는 교훈을 스스로 얻은 듯 하다. 안 먹는 반찬도 자전거 경험 들먹이며 먹어보라고 하니 입을 벌린다. ㅎㅎㅎ

아버님이 동네에서 주워오신 자전거를 태우고 있는데 지금 윤우 수준에서 타기에는 딱 적절하다. '클래식' 스타일이라(ㅋㅋ;;) 뒤에 어른용 손잡이가 없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내년 즈음에는 네 발 자전거로 갈아탈 듯 하여 이걸로 버티기로 했다. 삐걱 소리가 크게 나서 민망했는데 페달에 식용유를 투하하자 간단히 해결. ㅎㅎㅎ 
나는 자전거 뒤에 왜! 손잡이가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었다. 자전거 탈 때 도와줄 것도 아니고, 자전거 태우고 재울 것도 아닌데 저것은 뭐에 쓰는 물건이냐는 생각이었는데, 윤우가 힘들다며 자전거에서 내리니까 바로 아쉬워짐. 허리 숙여 자전거 끌려니 너무 힘들었다. -_-;;;


9. 건강하다.
작년 겨울 이후 6개월만에 다니던 소아과에 갔었다. 접수대의 간호사가 바뀐 것 같아서 '그새 사람이 바뀌었네.'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가 길어진 것이었음!!! -ㅁ- 단발이었던 간호사 머리가 긴 생머리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윤우는 병원을 가지 않았었다. 겨울 내내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가벼운 기침과 콧물은 있었지만 며칠 두면 사라지곤 했다.

치과 영유아검진을 위해 치과에 갔는데, 충치도 없고 깨끗한 상태라고 한다. 다른 병원에서는 아이 치아색이 어쩜 이리 예쁘냐며 칭찬을 듣기도 했다. 바락바락 닦인 효과가 다행히도 있나 보다. -ㅂ-;;

이렇게 윤우는 건강하다. 이것만큼 복되고 기쁜 일이 있을까. 세상 모든 일들이 건강한 몸 하나에서부터 시작하니 말이다.



펄떡이는 생명력으로 존재하는 윤우. 그 모습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