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57)
고래가 부르는 노래
보낼까, 말까... 유치원에 대한 우리 부부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어린이집에 적응해야 하는 건 아이뿐 만이 아니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부모 또한 적응이 필요했다. 적응에 한 달 꼬박 걸리지 않을까 각오했던 윤우는 2주 반 만에 적응을 끝내고 어린이집 현관에서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하는데, 정작 윤우 아빠와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기대를 내려놓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공동육아를 공부한 만큼, 공동육아를 기다린 만큼 내 안에 높은 기대치가 존재했던 것 같다. 등원을 시작한 바로 다음 주부터 현실과 기대의 극심한 괴리감에 지극히 혼란스러웠으니 말이다. # 터전 안은 마치 야생동물이 버글대는 정글과 같았다. 공동육아에서는 자기보다 어리고 약한 동생들을 돌보면서 서로 배려와 돌봄을 경험하게..
4월에 진눈깨비가 내린다. 기다리는 마음때문에 봄은 항상 더디 오는 것 같다. 밖에는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3월의 마지막날에 봄은 '3, 4, 5월!'이라는 인지적 구별에서 오는 불편함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이의 겨울내복들을 서랍 깊숙히 정리했다. 지난 겨울 입었던 내복은 2년째 입히는 옷이었는데, 무릎으로 기는 아기도 아니면서 무릎이 몹시 헤졌다. 같이 산 3벌의 내복들이 모두 그랬다. 쑥쑥 크는 아이에게 3개월용으로 새 내복을 사줄 수는 없어서 이번 겨울은 버텨보자며 꿋꿋하게 헤진 내복을 입혔다. -_-;; 그런데 계속 보다보니 너무 거슬렸다. ㅠ.ㅜ 헌 옷을 입히더라도 깔끔하게 보이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서툴게 손바느질을 시작했다. 작아서 못입게 된 윤우의 긴팔 옷을 동그랗게 ..
내가 책읽기를 즐기기 시작한 건 얼마되지 않는다. 정규교육 과정 12년 동안 교과서만 죽어라 읽다보니 책을 지루하고 딱딱하게만 여기게 되었고 학문의 날개를 펼쳐야 할 대학시절에는 갑작스레 몰려드는 홉스, 루소, 로크, 맑스같은 대천재들의 지성을 미처 다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허덕거렸다. 아무리 몸에 좋아도 아기가 현미밥을 받아먹을 수 없는 것처럼, 독해능력도 없는 뇌로 쏟아지는 사상(思想)의 폭포수에 나는 항상 소화불량 상태였다. 그러나 그 한껏 체한 시간들 덕분에 난 도서관을 '발견'하게 되었다. 쿤쿤한 옛 냄새가 나는 낡은 책들 사이에 가만히 서서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 넓고 다양한데 전율했고 그 모두를 한꺼번에 다 빨아들이고 싶은 욕심에 애가 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서관과 멀어졌다가 윤우를 임..
폭풍같은 2주일이었다. 10년 넘은 장롱면허의 먼지를 털고 운전대를 잡은데다가, 예상은 했지만 유난히 적응에 힘들어하는 윤우를 안쓰런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했고, 그런 아이를 도와주고자 시작한 터전 생활 속에서 혼란스러운 고민에 휩싸이기도 했다. 지금 중간 점검을 해 보면, 자동차는 2주만에 차 문 한 번 긁고 범퍼 한 번 찌그러뜨렸고..ㅜ.ㅠ 윤우는 헤어질 때 울지만 다시 만날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리고 조합원 전체모임 후 뿌옇게 흐려졌던 나의 마음이 맑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부터 윤우가 어린이집에 쉽게 적응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윤우는 낯선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유난히 힘들어하는 성격인데다가 또래 친구들을 '장난감 뺏는 아이들'로 규정하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새로 어린이집에 ..
겨울이 끝나간다. 가을 끝에 맺은 뼈아픈 다짐과 함께 시작했던 겨울. 유난히 추웠지만 눈은 적어서 방콕생활이 예상보다 길었던 겨울이었다. 항상 철저하게 준비만 하다가 지쳐서 정작 행동은 뜻뜨미지근해지는 나는 겨울이 시작되기 전 엄마표 미술놀이책을 한권 독파하고 놀이 커리큘럼을 짠 후, 미술놀이 재료 사이트(www.momart.co.kr)에서 기본재료로 불려지는 것들을 대거 구매했었다. 폼폼(폭신한 구슬공), 모루(털달린 철사), 무빙아이(인형눈) 등 유아교육 분야의 또 다른 신세계 용어를 익히게 됐다. ^^;; 결과적으로 말하면 다부진 각오로 구매한 미술재료들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만 3세가 조금 넘는 아이에게 의도대로 자르고 붙이고 그리는 일은 버거웠다. 윤우가 한 건 '재료탐색' ..
월요일, 윤우가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했다. 몇 주 전부터 3월에는 어린이집에 갈꺼라고, 아주 재미있는 일이 많은 곳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어린이집 가는 것 자체로 실갱이를 벌이지는 않았다. 윤우가 가는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대안 유치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부모들이 출자금을 모아서 직접 어린이집 터전을 마련하고 선생님과 영양교사를 채용해서 운영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어린이집'이다. 부모들이 공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유치원, 어린이집의 대표이며 소유권자인 '원장'이라는 개념이 없다. '공동육아(共同育兒)'라는 뜻 그대로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동체'인 것이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 어디로 보낼까 고민하고 정보를 찾으면서도 정작 '공동육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아이와 말을 나눈다는 건 에너지 소모가 크다. 아이의 말을 이해하는 것도, 아이에게 내 말을 이해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다. 이해와 지각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철저하게 상대방에게 맞추어야 한다. '나'를 놓고 '너'를 받아들이는 연습이 반복된다. 부모가 되야 어른이 된다는 말은 이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은 하루하루가 그 '연습'의 나날들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이 누구나 그렇겠지만 윤우도 쉴 새없이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고 대답을 요구한다. 제일 힘든 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반응을 요구하는 것. 한 번 꽂히면 같은 말을 기본 5번 반복한다. 그것도 완결형의 평서문이 아니라 항상 의문문이다. "타이니가 화가 나서 이렇게 발을 굴렀데?" 이런 질문 아닌 질문을 연속으로 5번 반복하고 계속 나의 대답을 요구한다고..
미운 4살의 고개를 넘어 윤우는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5살로 가고 있다. -ㅂ- 조금만 크게 이름을 불러도 놀랬다면서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민감하고 여리기만 했는데, 이제 목청이 떨어져라 크게 소리치며 혼을 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너,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라며 점잖게(!!!) 훈계를 해서 속을 한 번 더 뒤집어 놓을 뿐이다. 하지 말라고 도끼눈을 뜨면 일부러 더 하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사달라는 것도 많아지고 요구도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간다. 아무것도 모르던 천둥 벌거숭이 시절의 말썽과는 차원이 다르다. 갈등은 깊어지는데 훈육은 어려워지기만 했다. * 평화로운 쇼핑을 위한 규칙 윤우가 요즈음 빠져든 아이템은 스티커북이다. 1,000원짜리 스티커도 아니고 단행본 가격에 버금가..
에너지로 넘치는 5살 배기 아이의 신진대사는 30대 엄마의 그것과는 질이 다르다. 더운 피가 온 몸을 거침없이 내달린다. 열이 넘치는 아이는 "엄마도 시원한 바람을 좀 쐬어야지."라며 베란다 문을 열어 젖히기 일쑤다. 물론 나는 그 때마다 진저리를 치며 문을 닫기 바쁘다. 추위에 약한 엄마때문에 윤우는 겨우내 방콕 신세다. 특별히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순전히 놀이를 위한 나들이를 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반짝 초봄같은 날씨가 이어졌다. 살짝 비를 뿌린 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공기가 상쾌해서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마음까지 새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번만큼은 윤우가 가자는 곳으로 머물고 싶어하는 만큼 머물자 작정하고 나들이를 나섰다. 도서관 올라가는 길...
배경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내 한복판. 키 작은 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다가 엄마의 손을 찾아 더듬거리며 나아간다. 드이어 엄마 손을 잡았는데, "아유, 귀찮아!" 엄마가 내 손을 냉정하게 뿌리친다. 놀랐고 슬펐지만 슬픔 속에 멍하니 남겨질 여유가 없었다. 내 감정에 솔직해질 그 찰라 속에 엄마가 저 군중 속으로 사라져 나는 고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 컸기 때문이다. 한, 6살이나 7살쯤 되었을까? 나에게는 이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처절하게 거부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끔 나는 이 기억을 꺼내 엄마의 죄책감을 자극하고는 했다. 어떻게 자기 자식 손을 저렇게 '팩'하니 내팽게칠 수가 있었을까. 아무리 되돌아감아 재생을 해보아도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곰곰히 생각..
문화센터 수업도, 친구들과의 정기적인 모임도 없는 겨울이 시작되었다. 윤우가 8개월 무렵이었을 때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베이비 마사지 강의를 들은 걸 시작으로 이제까지 항상 일주일에 한 번은 수업을 들었으니까 정해진 스케줄 없는 온전한 자유시간을 윤우는 이제서야 누리는 중이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할 3월까지 남은 몇 개월의 꿀같은 자유시간을 어찌 보내야 할지, 정작 윤우보다도 내가 더 몸이 달았다. 여러 놀이책을 뒤적거리면서 윤우랑 할 수 있는 놀이들을 정리하고 스케줄을 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윤우가 몸을 배배 꼬며 "심심해~~~"를 외칠 때에는 머리 속이 멍해지고 마는 것이다. 결국 '재미있는 걸 달라'는 요구가 몇 번 계속되자 나는 단순무식하게 돗자리를 펴고 밀가루를 뿌려 주었다. '일탈의 허..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기적같은 일보다 더 힘든 일이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일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사랑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뛰어넘는 '의식적인' 표현 방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기본이다. 이 절대적 시간을 바탕으로 주양육자와 아이 사이의 깊은 애정인 '애착'이 생겨난다. 올바른 애착이 형성된 아이는 자신감이 있고 긍정적이며 이를 바탕으로 모험과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창하게는 아이의 앞으로의 인간관계와 세계관을 좌우하는 것이 이 '애착'이다. 윤우가 태어난 순간부터 단 하루도 윤우 곁을 떠난 적 없었던 나는 윤우와의 애착관계에 대해서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의식'없이 행해졌던 내 사랑이 ..
미운 4살이라더니 윤우는 부쩍 얄미워졌다. 정말 딱 '너, 정말 내 타입 아니다.'라며 어이없는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이 점점 늘어났다. 1. WHY - man "왜"가 습관처럼 입에 붙은 윤우는 딱히 호기심이 일지도 않으면서 이어달리기처럼 질문을 해대고는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 가방은 왜 파란색이야?"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었나봐." "왜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어?" "그게 예뻐보였나봐." "왜 그게 예뻐보여?" "사람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 다 달라." "왜 사람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 달라?" -_-+ 이 쯤 되면 이마에 빠직!하며 힘줄이 하나 잡힌다. 이건 궁금한 게 아니다. 그저 끝말잇기일 뿐. 심지어 자신이 이유를 말해놓고도 '왜?'를 붙일 때도 있다. "위험하니까 왜..
아이가 자라고 엄마도 자란다. 하루종일 붙어있는 데다가 이제는 똥냄새까지 똑같아진 만 3년 된 껌딱지 연인인 윤우와 나. 그렇게 서로 섞여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려니 싶었다. 네가 좋아할 만한 것은 내가 알고 있다고, 그게 바로 '우리'가 다 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밑도 끝도 없는 어리석음인지 깨닫는 데는 꼬박 가을 한 달이 걸렸다. 윤우가 먼거리 버스 여행에도 제법 익숙해지자 내 마음은 들뜨기 시작했다. 햇볕 쨍쨍한 여름 날에 일찌감치 아이와 가을에 나들이할 곳의 리스트를 빽빽하게 적어놓고, 날씨가 선선해지기 무섭게 숙제하듯이 이를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기동력이 떨어지는 뚜벅이 나들이였지만, 한 쪽 어깨엔 유모차를 매고 다른 한 팔에는 아이를 안고서 버스를 타는 일도 점점 ..
1. 똥오줌을 가린다! 여름되면 한다한다하던 배변훈련. 날씨가 아직 '충분히' 덥지 않다며 미루고 미루다 7월 7일 첫 시도를 했다. "이제 기저귀 벗고 팬티 입어보자~ 쉬 마려우면 엄마한테 얘기해~"라고 최대한 상냥하게 구슬리니 별 거부감없이 팬티를 입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변기에 쉬하는 연습한다고 해놓고 한 번도 시키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 셈. 결국 이 날 4번 팬티에 쉬함. 그런데 신기하게도 끙아는 한 번에 변기에 퐁당. 이렇게 딱 하루 연습하고 다음날부터 연속되는 이웃집 방문과 전주여행으로 기저귀 신세였다. 그런데 그 다음 주에 바로 쉬를 제대로 가리기 시작했다. '역시 늦게 시작하니(33개월) 빨리 되잖아~' 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