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공감이 아니라 맞장구~ 액션까지 있어야 진짜다!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공감이 아니라 맞장구~ 액션까지 있어야 진짜다!

고래의노래 2012. 1. 22. 02:10

에너지로 넘치는 5살 배기 아이의 신진대사는 30대 엄마의 그것과는 질이 다르다. 더운 피가 온 몸을 거침없이 내달린다. 열이 넘치는 아이는 "엄마도 시원한 바람을 좀 쐬어야지."라며 베란다 문을 열어 젖히기 일쑤다. 물론 나는 그 때마다 진저리를 치며 문을 닫기 바쁘다. 추위에 약한 엄마때문에 윤우는 겨우내 방콕 신세다. 특별히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순전히 놀이를 위한 나들이를 한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반짝 초봄같은 날씨가 이어졌다. 살짝 비를 뿌린 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고 오히려 공기가 상쾌해서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마음까지 새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번만큼은 윤우가 가자는 곳으로 머물고 싶어하는 만큼 머물자 작정하고 나들이를 나섰다.

도서관 올라가는 길. 남들에게는 5~10분이면 가는 길이지만 우리에게 30~40분은 기본이다. 윤우는 숨어있는 무당벌레도 찾아야 하고 도서관 버스의 타이어 휠 구멍도 살펴보아야 한다. 구멍의 갯수를 세고 앞, 뒷바퀴의 모양이 다르다는 걸 다시 한번 엄마에게 알려준 뒤 과속방지턱을 오가는 차들의 쿵쿵거림에 맞춰 점프도 해야 한다. 
길 가의 풀섭에 오래 전 내린 눈이 비에도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윤우는 이 적은 눈을 가지고 눈사람, 눈개미를 만들며 놀다가 온갖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을 꽂기 시작했다. 이렇게 눈은 아이들을 홀리는데 올해는 아쉽게도 제대로 된 눈 한 번 내리지 않는다. 이 겨울이 지나기 전에 그림책에서만 보던 눈싸움과 커다란 눈사람 만들기를 윤우와 꼭 해보았으면 좋겠는데.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를 뚫고 팝콘을 가러 영화관에 갔었다. 우리에게 영화관은 아직까지 '팝콘파는 가게'이다. 언제쯤이면 이 곳에서 아들이랑 영화를 볼 수 있을까. 
팝콘을 들고 백화점 로비에 앉아 먹다가 밖으로 나와보니 어느 새 비가 그쳐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놀이터를 보더니 들어가서 놀겠단다. "놀이기구 다 비에 젖었을텐데..."하고 말을 조금 흐렸지만 그네와 시소의 물기를 닦아주었다. 비오는 날은 이래서 손수건이 필수다.
그렇게 놀이기구를 한 바퀴 순례한 뒤 장갑을 벗더니 이번에는 모래놀이를 하잖다. "비가 와서 젖었잖아!"라는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애써 눌러 담고 "그래, 그러자!" 라고 같이 장갑을 벗었다. 비온 뒤의 모래는 힘이 있어서 오히려 모래성을 쌓기가 더 좋았다. 쌓은 모래성을 낙엽으로 덥고 모래로 다시 한 번 뿌려준 다음, 놀이터 바닥에서 뒹굴던 철제 파이프를 굴뚜처럼 꽂았다. 비때문에 단단해진 모래 바닥에 우산으로 그림도 그렸다. 슈퍼 박테리아가 있다는 도시의 놀이터 모래이지만, 이럴 때는 모래 놀이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아이들은 모래의 무한 재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이 날 우리는 집게차가 재활용 종이를 트럭에 꾹꾹 눌러담는 모습도 지켜보고 지하 주차장의 경보알람이 언제 켜지나 한참이나 기다려보기도 하다가 날이 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어왔다. 집에서는 심심하다 노래를 부르는 윤우도 밖에 나오면 이리저리 놀 꺼리를 잘도 찾아낸다. 게다가 허용과 공감의 범위를 조금 넓혀주면 그 '꺼리'들은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것이다.
이 날은 마음잡고 윤우쪽으로 하루를 온전히 기울였지만, 평소에는 윤우가 무언가를 하자고 할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귀찮아서 이리저리 핑계를 댈 경우가 많다. 몸을 조금 움직이면 못할 것도 없는데 왜 이리 엉덩이가 무거운지. 매번 자신의 제안을 거절당하는 윤우의 심정 또한 답답할 것이다. 아직도 나에게 윤우랑 노는 것은 '함께 노는 것'이 아니라 '놀아주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노는 것이 '희생'의 다른 이름이니 엄마나 아이나 놀이의 재미에 푹 빠질 수가 없다.

아이의 감정과 욕구에 함께 공감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여러 육아서에서 신물나게 다루는 주제이다.


사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요구한 것을 (먼저 부정하고 뒤늦게나마) 거의 다 들어주는 편입니다. 대부분 처음은 부정하고 뒤늦게 들어주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다 해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늘 처음엔 거부당했기 때문에 '우리 엄마 아빠는 늘 안 된대'라고 생각하고 해준 게 없다고 기억합니다.
...아이가 '엄마, 아이스크림 사 줘'라고 요구할 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긍정의 대답은 무엇일까요?
"아이스크림? 좋았어! 엄마도 먹고 싶은걸? 그런데 지금 막 백화점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먹지?"
이 한마디에 많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우선 엄마는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했고, 아이와 뜻이 같다는 사실과 함께 현재의 상황도 설명했으며 아이에게 스스로 판단해 보라고 질문까지 되던졌죠.
공을 아이에게 넘겨주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아이에게 주세요.
(<3세와 7세 사이> 리뷰 : http://whalesong.tistory.com/378)


 

아이가 "책 읽어줘"하면 "이따가 읽어줄께"라고 하는 일 다 마치고 가보면 아이는 이미 다른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아이가 과자를 사달라고 하면 안된다고 하고,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만 먹으라고 하고 늘 영양식, 좋은 책, 좋은 학원, 좋은 유치원 등 좋은 것만 아이에게 주려고 합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늘 자기 입장만 주장하고 강요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자녀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느끼질 않습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들어준다면
자녀는 우리 부모가 '내 마음을 잘 이해하니까 나를 지극히 사랑하는구나'라고 여기게 됩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늘 다 들어주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므로 그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간에 서로 통하는 일치된 감정을 많이 느낄수록 서로 사랑한다고 느낍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서 다 해준다면 아이는 그걸 당연하게 여길 뿐 고맙게 받지는 못합니다.
필요성을 느끼는 그 순간에 서로 마음이 맞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공감이 생겨날 때 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화내지 않고 내 아이 키우기> 리뷰 : http://whalesong.tistory.com/377)


중요한 것은 이 시기의 아이들이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거부'라는 사실이다. 곧 있으면 손님이 오시니 빨리 설거지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거나 합성첨가물이 뒤범벅된 음식이기 때문에 사 줄 수 없다는 이유들은 거부당한 결과 앞에 괄호쳐져 무시된다. 부모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사랑을 경험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니 이해는 하지만 실천은 안되고 100% 용납도 사실 안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 나에게 요즈음 새로운 엄마 멘토가 생겼다.

바로 이 분, 미피 엄마이다. 미피와 비슷하지만 입모양이 조금 다르고 덩치도 더 크다. (밑의 사진에서 비교 가능 ^^)
쿡TV에서 윤우에게 보여줄 애니메이션을 찾다가 우연히 같이 보게 되었는데 예상과 달리 윤우가 아주 좋아한다. (윤우는 미피엄마의 이름이 안나오는 게 영 마음에 걸리는지 "미피엄마는 그냥 미피엄마야? 이름은 안 나왔어?"라며 종종 묻곤 한다. 그래, 엄마들도 이름이 있다는 걸 꼭 기억해두렴.) 엄마가 되다보니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엄마 역할에 자연스레 주목을 하게 된다. 

미피엄마는 이제까지 내가 본 어느 엄마들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 아이의 현재 욕구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좋아할 만한 것을 살짝 더 얹어놓는다. 미피가 마당에 텐트를 치고 놀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그러라고 뚝딱 텐트를 쳐주더니 미피가 텐트 안에서 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이 옆에 물놀이 튜브를 설치해놓는 식이다. 미피가 어떤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일단 "이야~ 그거 좋은 생각인데!" "어머 재미있겠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맞장구가 어찌나 듣기에 좋은지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질 정도였다. 내가 이 정도인데 이 말을 듣는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영상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수많은 육아서를 보아도 태도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았는데 요즈음에는 윤우의 요구에 뜻뜨미지근한 얼굴로 거절할 대사를 궁리하다가도 '미피 엄마라면...'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ㅂ-;;;;

나는 어렸을 때 흰 우유를 먹지 못했다. 흰 우유만 마시면 속이 메슥거렸다. 그런데 딸기나 초코 우유는 정말 좋아했다. 엄마는 물론 몸에 안 좋다며 자주 사 주지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도로변 어느 허름한 슈퍼에 들어가 엄마가 딸기우유를 사줬던 때를 기억한다. 굉장히 황량한 도로변이었는데 왜 그곳으로 엄마와 함께 갔는지 그 앞 뒤 기억은 물론 없다. 딸기우유에 빨대를 꽂아 슈퍼의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나오는 굉장히 사소한 장면만이 선명하다. 내 마음이 받아들여졌다는 기쁨의 크기만큼 내 속에 박혀있던 것이리라.

이 때를 떠올리며 나도 유우에게 도서관에 갈 때마다 초코우유나 사탕을 하나씩 사주고는 한다. 하지만 5살 남자아이에게 공감이란 함께 느낀다기보다 자주 '이성을 놓는다' 속된 말로 '정신줄 놓는다'(-_-;;)라는 의미일 때가 많다. 의미없이 쏟아지는 요상한 말들을 따라해야 하고, 괜히 빙빙 돌면서 춤을 추어야 하고(이제 조금만 돌아도 너무 어지럽다..ㅜ.ㅠ) 멀쩡히 잘 가던 자동차 장난감들끼리 부딪혀서 사고가 나야하며 손이며 얼굴에 밀가루와 물감을 범벅으로 칠해야 한다.
공감이란 말은 이런 상황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윤우가 원하는 것은 그저 감정을 읽어주고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다. 욕구를 읽고 액션까지 취할 것! 이것이 윤우가 바라는 바다.

웃는 듯, 노래하는 듯 보이지만 제목은 '하품하는 모자'이다. ㅎㅎ 하품도 웃음도 그리고 노래도 전염성이 있다.
이건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는 너와 비슷한, 너의 편이라는 걸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행동이라고 한다.  
내가 윤우에게 심어주고 싶은 마음도 사실 이거다. '엄마는 온전히 너의 편'이라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을 때까지.
그러기 위해서 나는 잠시 5살 사내아이로 빙의되어 같이 북치고 장구치고 피리불고 상모돌려야겠지. ;;;;

근데 너는 나 언제 공감해줄 껀데..ㅠ.ㅜ 딸래미는 결혼하면 엄마 편 된다지만 아들래미는 포기해야 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