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40개월 남자아이 훈육하기 - 훈육의 비법을 찾아서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40개월 남자아이 훈육하기 - 훈육의 비법을 찾아서

고래의노래 2012. 2. 13. 23:39
미운 4살의 고개를 넘어 윤우는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5살로 가고 있다. -ㅂ- 
조금만 크게 이름을 불러도 놀랬다면서 눈물을 글썽일 정도로 민감하고 여리기만 했는데, 이제 목청이 떨어져라 크게 소리치며 혼을 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에게 "너,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라며 점잖게(!!!) 훈계를 해서 속을 한 번 더 뒤집어 놓을 뿐이다.
하지 말라고 도끼눈을 뜨면 일부러 더 하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사달라는 것도 많아지고 요구도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간다. 아무것도 모르던 천둥 벌거숭이 시절의 말썽과는 차원이 다르다. 갈등은 깊어지는데 훈육은 어려워지기만 했다.


* 평화로운 쇼핑을 위한 규칙

윤우가 요즈음 빠져든 아이템은 스티커북이다. 1,000원짜리 스티커도 아니고 단행본 가격에 버금가는 1회용 스티커북! 사줄 때마다 아까워 피눈물나는 이 소모적 아이템을 매번 사줄 수는 없어서 일주일에 한 번 월요일에 교보문고로 가서 하나씩 사주고 있다. 월요일이 되면 아이는 새벽부터 교보문고 문 여는 시간만 기다리고 화요일부터는 다음 주 월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애처로운 마음에 일요일에 한 번 미리 사주었었는데 월요일이 되자 월요일이니까 사자며 어찌나 억지를 부리던지, 참다참다 진짜 큰소리로 꽥! 소리 지르고 말았다.
아이에게 규칙을 조금 비트는 융통성이라는 건 규칙에 대한 이해를 흐려놓는 요소일 뿐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진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함부로  '꼼수'를 부려서는 안된다. '내일 먹을 사탕 대신 오늘 먹는 도너츠'라는 건 없다. 아이에겐 애초에 '오늘'만 존재하니까! 

나는 윤우에게 장난감을 거의 사주지 않는다. 부족함에서 오는 상상력이야말로 최고의 놀이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주와 잠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이미 충분히 장난감을 선물받고 있고, 장난감은 특별한 날 사는 것이라는 기준을 세워두고 있기도 하다. 장난감 구매에 대해 이렇게 확실한 규칙을 세워두지 않으면 장난감 사달라는 아이의 요구에 대응할 논리가 빈약해진다. 부모가 기분 내키는대로 사주었다 거절했다가를 반복하다보면 아이는 자신의 요구가 규칙이 아니라 부모의 힘에 의해 휘둘린다는 억울함을 품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마트에서 드러눕게 되는 것이다. -_-  

얼마 전부터 윤우는 토마스 기차 레일에 새삼 빠져들어서 이리저리 기차 레일 형태를 바꿔보며 꽤나 재미있어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남편이 윤우에게 기차 레일 확장팩을 사주자고 했다. 지금 관심있어 할 때 적절한 자극을 제공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지만 장난감 구매에 대한 규칙에 어긋하는 것이라 고민이 되었다. 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그럴 듯한 이유가 필요했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칭찬 스티커'를 도입해보기로 결정했는데 때마침 이 결정을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사건이 터졌다.

며칠 뒤에 시누이 아기의 백일이라 백일 선물로 아기 장난감을 사가지고 들어왔는데 윤우가 쇼핑백을 보더니 
 "아기 것만 있어? 윤우 거는 없어?"
이러면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왜 내 껀 없어? 내 건 안 사오고 아기 것만 사와서 나 화가 났어. 나도 장난감 사줘."
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나는 이 때다 싶어서,
 "효주가 태어난지 백일이 되었기 때문에 축하해주려고 선물을 준비한거야. 선물은 기념할만한 특별한 날에 사는 건데 오늘은 어린이날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도 아니고 윤우 생일도 아닌데 어쩌면 좋을까. 우리가 오늘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볼까? 윤우가 혼자서 밥을 먹거나 신발을 신거나 쉬를 하거나 무언가 혼자서 하나 해보는거야. 우리 그럼 그걸 기념하면서 장난감을 하자 사자."
라며 지금 생각해도 정말 교과서적인 아름다운 대사를 날렸다. TㅂT 처음에 윤우의 반응은 뜻뜨미지근했다. 장난감의 유혹과 귀찮은 시도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내가 조금 뒤에 점심시간이니 그럼 혼자 밥을 먹어보라고 하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장난감의 힘으로 먹기 독립의 단계로 뛰어오르는 걸까 싶어 밥을 차리면서 어찌나 기대가 되던지...
그런데 이 녀석 밥상을 앞에 놓고
 "윤우는 아직 혼자 못 먹어. 좀 더 크면 혼자 할래."
이렇게 배신을 때렸다. -ㅁ-+ 그러면 장난감은 없겠네? 라고 살살 자극해도 끄덕없다. 헉, 귀차니즘이 장난감을 이겼다!!! 도대체 네 손은 언제 움직이는 거니.


*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는 생활습관 훈육

항상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 자기 일은 귀찮기만 하고 남의 일만 재미있어 보이나보다. 집안일을 하면 도와준다고 난리를 부린다. 식탁을 닦을라치면 득달같이 달려와 행주를 빼앗고 요리 준비를 할 때도 한 몫 거들겠다고 부산을 떤다.


이번 설날에 시댁에 갔을 땐 부추 다듬는 것도 거들고 더덕을 다듬을 때는 비닐장갑까지 끼고 당당히 한 몫을 했다. 이러면서 스스로 해야할 일들, 밥먹기, 신발신기, 쉬하기 등은 철저히 엄마 손을 빌린다. 쉬할 때 몇 번 바지 내리는 걸 시켰더니 "아니, 왜 나만 시켜!"라며 역정을(!) 냈다. 네 일을 그럼 네가 해야지 누가 합니까!! 참. -ㅁ-;;

다른 훈육과는 달리 기본 생활을 스스로 하도록 하기 위한 훈육에서는 채찍과 당근을 오가며 매번 오락가락한다. T-T
그 중 가장 으뜸은 이것이다. '밤잠 전 장난감 정리'
밤잠을 자기 전 장난감을 스스로 정리하도록 시킨 것은 꽤 오래 전이다. 두 돌 조금 지나서였던가. 그 이후로 노래하며 정리하기, 호비의 정리모자 쓰고 정리하기, 정리하라고 깜깜한 거실에 혼자 남겨두기, 심지어 벌세우고 호되게 야단치기까지... 참으로 버라이어티하게 시도해 보았지만 어느 것하나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정리하라는 말 세 번 할 때까지 정리 다 하지 않으면 자기 전 책읽기는 없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갑자기 오열을 하면서 "내가 책 읽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러는거다. '오호라~ 이제 이걸 써먹으면 되겠구나!' 싶어서 쾌재를 부르며 몇 번 써먹었더니 며칠 전에는 "책 읽고 싶은데..." 이러더니 순순히 안 읽고 자는 상황에 순응...-_-;;; 이러다 베갯머리 독서까지 방해받겠다 싶어 다음 날엔 내가 거의 다 정리하고 윤우에게는 자신이 선택한 정리꺼리만을 정리하도록 시켰다. 끄응~~~

정리할 시간이 가까워오면 "이제 5분 뒤에 정리할꺼야."라고 미리 얘기해주는데, 이런 예고로 아이들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리를 시키면서 살펴보니 8시가 정리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스케줄대로 칼같이 예고를 하고 정리를 시키는 것 보다 나름의 '타이밍'을 잘 살피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다. 지금 한창 어떤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 놀이의 맥을 끊으면서 정리를 강요한다면 당연히 심통이 나고 하기 싫을 것이다. 그럴 땐 놀이의 클라이막스까지 기다렸다가 조금 시들해지는 때를 놓치지 말고 정리의 타이밍으로 삼으면 훨신 저항이 덜하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한 놀이가 정점을 찍고 가라앉는데는 10~20분이면 충분하다. 딱 그만큼의 시간만 여유롭게 지켜봐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오늘 저녁 '이 때다!'싶은 타이밍에 "이제 5분 뒤에 정리해야겠다."라고 이야기하자 "그래요. 나도 졸리네."라고 말하며(;;;) 장난감들을 순순히 정리했다.


육아서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장난감 정리를 잘 하지 못하면 나중에 되먹지 못한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오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부모들은 사소한 규율과 생활습관의 문제를 아이의 미래와 섣불리 연결하여 심각하게 바라보곤 한다는 것이다. 장난감 정리는 장난감 정리일 뿐 지금 그것을 스스로 못한다고 나중에 인생의 큰 문제를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 오버하지 말자.


* 40개월 아이의 또 다른 변화

말을 안 듣는 것은 여전하지만 스스로 하고자하는 마음이 들면 쿨하게 수긍하는 일도 늘어났다.
식탁에서 밥을 먹는 중에 "내려가서 스티커 놀이 할래."라고 하길래 "밥 다먹고 해야지!"라고 했더니 흔쾌히 "그럴께." 그런다. 한바탕 언쟁을 준비하며 빵빵하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피육~하고 허무하게 바람이 빠진다. 만담하는 것만 같다. ;;;

그리고 짜증도 많이 줄었다. 해보다가 안되면 징징거리는 대신 "잘 안되요."라고 말한다.
설 날때 집안 식구들이 다들 모두 바빠 잠깐 윤우가 혼자 남겨졌었는데, 토마스 기차 레일을 붙잡고
"누구 놀아줄 사람 없어요?" 라고 절규를 해서 웃음바다가 된 적이 있다. ㅎㅎㅎ
나에게 놀아달라고 할 때도 무조건 이리와보라고 하는게 아니라 적당히 설득할 줄도 알게 되었다.
"이리와서 공룡놀이 하지 않을래? 이거 정말 재미있거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ㅋㅋㅋ

가장 큰 변화는 엄마를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 생겼다는 것이다.
이번 설날에 청주에 내려가서 일주일간 머무는 사이에 친정에서 몸을 풀고 있는 친구 두 명을 만나러 갔었다. 윤우는 새로운 장소에 가면 거의 매번 어색해하면서 나가겠다고 떼를 쓰곤 한다. 윤우는 이걸 '갈래갈래'라고 부른다. 윤우의 이런 점을 알기에 친구네 집에 데려가기 전 조금은 걱정이 되었지만 아직은 어색한 청주 외할머니와 둘만 남겨둘 수도 없었고 윤우가 그것을 원하지도 않았다.
출발하기 전에 친정엄마가 "윤우야, 이모네 집에 놀러가면 오랫만에 이모랑 엄마랑 재밌게 얘기 좀 하게 윤우는 얌전히있어. 알았지? '갈래갈래' 하지 말고."라고 윤우에게 당부를 했다. 그냥 흘려들을 법한 이야기였는데 윤우는 꽤나 진지하게 들으면서 몇 번이나 친정엄마의 말을 반복했다. 그러더니 친구네 집에 가서 정말 오랫동안 심심한 상황을 묵묵히 견뎌주었다. "나 '갈래갈래'도  안 하지?"하며 자기의 노력을 어필하기도 했다. 오직 '엄마의 즐거움과 편안함'이라는 단 하나의 대가를 위해서 노력하는 윤우가 너무 고마웠고 감격스러웠다.

며칠 전에도 윤우가 '상황을 이해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내가 잠깐 시댁에서 시누이 아기인 효주를 돌봐야 했는데 그 사이 윤우는 끊임없이 날 찾았다. 아기를 안고 있으면 "엄마 나도 아기처럼 안아줘."라거나 "엄마, 이리 와서 나랑 놀자. 아기는 저기 내려놔. 자라고 해."라고 말하며 내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애를 썼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윤우를 윽박지르지 않고 계속 대꾸를 해주며 눈을 맞추자 더 이상의 떼부림은 없었다. 몇 번에 걸쳐서 설득을 하면 결국은 내 말대로 따라주었다. 만약에 둘째가 생긴다면 우리의 생활이 어떨지 상상해 볼 수 있는 하루였다.


* 성공적인 훈육의 비법?!


5살 남자아이는 딱 요런 분위기이다. 가끔 보면 여든살은 됨직한 능글맞은 할배가 작은 아이 몸 속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윤우가 말을 안 들어서 내가 파르르 떨며 분을 참지 못하면 '쯧쯔 내가 한 번 져준다'는 식으로 일을 처리한 후 "이제 화 안났어? 기뻐?" 요런다. -ㅁ- 5살 아이 손에서 엄마는 놀아난다.

흔히 훈육을 '당근과 채찍'으로 이야기한다. 이제껏 경험으로 봐서 '채찍'이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당근'은 가끔 성공했다. 100% 성공을 보장하는 훈육의 기술이란 건 없었다.
그런데 성공적인 훈육을 위해 정작 중요한 건 이것이 아닐까. 부모와 아이와의 돈독한 관계. 넘치는 사랑 속에서 엄마, 아빠에게 온 마음을 빼앗긴 아이라면 부모의 기대만큼 커가기 마련이다. 엄마, 아빠의 미소를 위해 아이들은 기꺼이 수고를 감내한다. 물론 사랑에 대한 결핍에서 오는 갈증으로 착한 아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당연한 사랑이 아니라 착한 행동에 대한 조건식 사랑은 아이를 긴장하게 만든다. 계속되는 긴장은 벗어나고 싶은 피곤함이다. 착한 아이를 만들던 '조건'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잔기술을 논하기 전에 넘치는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스스로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 진짜 훈육일 것이다. 

아직도 진행중인 '지지고 볶기'를 통해 내가 터득한 훈육의 원칙은 이렇다.

1. 원칙을 분명하게 세운다.
2. 원칙을 적용할 때는 분별있는 융통성(분명한 이유가 존재할 것)을 발휘한다.
   놀이에 너무 집중하고 있다면 흥미가 꺾일 때까지 조금 기다려주고
   일부러 장난을 건다면 몇 번은 기분좋게 맞장구치며 넘긴다. 오히려 일이 빠르게 끝난다.
3. 이 모든 것은 아이가 '부모는 나를 사랑한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5살 정도 되면 어느 정도의 옳고 그름은 구별해낸다.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의 경계를 가르쳐주는 기본 단계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는 행동의 교정이 아니라 행동하게 하는 마음이다.
어떻게 하면 엄마가 기뻐하는지 어떻게 하면 엄마가 화내는지 아이는 모두 알고 있다. 그러면서 엄마를 약올리기도 하고 엄마를 배려해주기도 한다. 부모를 가지고 논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부모의 마음을 읽고 이해한다는 뜻이다. 바로 거기에서 희망을 찾아야 될 것 같다. 아이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난 아이의 마음을 읽을 준비가 된 걸까?
'훈육 전에 사랑'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