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미운 37개월 - 윤우의 성장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미운 37개월 - 윤우의 성장

고래의노래 2011. 11. 16. 00:56
미운 4살이라더니 윤우는 부쩍 얄미워졌다. 정말 딱 '너, 정말 내 타입 아니다.'라며 어이없는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는 순간이 점점 늘어났다.

1. WHY - man
"왜"가 습관처럼 입에 붙은 윤우는 딱히 호기심이 일지도 않으면서 이어달리기처럼 질문을 해대고는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 가방은 왜 파란색이야?"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었나봐."
"왜 파란색으로 칠하고 싶어?"
"그게 예뻐보였나봐."
"왜 그게 예뻐보여?"
"사람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 다 달라."
"왜 사람마다 예쁘다고 생각하는 색이 달라?"
-_-+ 이 쯤 되면 이마에 빠직!하며 힘줄이 하나 잡힌다. 이건 궁금한 게 아니다. 그저 끝말잇기일 뿐.

심지어 자신이 이유를 말해놓고도 '왜?'를 붙일 때도 있다.
"위험하니까 왜 초록불에 건너야 돼?" (위험하니까!!!!!!!!!!!!!!!!!!!!!!!!!)
'왜?'를 붙일 수 없는 문장에도 떡하니 붙인다.
(병원에서 줬던 과자를 집에서 다시 먹으며) "이거 왜 병원에서 먹던 거야?" (그럼, 어디서 먹던 건데!!!!!!!!!!!!!!!!!!!!!!)
"왜 이건 책이야?"라는 근원적 질문을 할 때는 의도가 궁금하다. 정말 어원을 알려달라는 이야기일까? 그럴 때는 "그럼 윤우는 왜 윤우니?"라고 질문으로 넘기고는 한다.  

게다가 윤우는 내가 싫어하는 대화 3종 세트를 모두 소화하고 있다. 의미없는 '왜?'질문, 들어놓고 "응?"이라며 한 번 더 말하게 하기. 했던 말 계속 또 하기. -_-;; 써 놓고 보니 술취한 사람 상대하는 것 같다. 윤우 아기 때도 어린 아이 키우는 일을 술주정뱅이 보살피는 거랑 비교한 적이 있는데, 도대체 저 술은 언제 깨는 걸까나.

2. 딴청 대마왕
무언가 시킬 때마다 '무조건' 일단 못한다고 버티고 본다. 100%다. 반응의 종류는 4가지 중 하나이다. 

1) **하느라 못 해
급하게 핑계거리 만들며 못한단다. 진짜로 무언가 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주변에 있는 물건 중 아무거나 집고서는 어이없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다. ex) 책 보느라 못해. 자동차 노느라 못해.

2) 힘들어서 못 해
현재 아이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해 줄 때, "너는 지금 어려서(힘이 약해서) 안 돼."라는 말 보다는 "좀 더 크면 할 수 있을 꺼야."라고 앞으로의 가능성에 집중해서 이야기해 주고자 노력했었다. 그런데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며 '약한 아기 입장'을 내세우는 저런 못된 버릇은 어디서 배운거냐! 평소에는 "이건 아기들은 못해?"라며 자기는 작은 형아라고 한껏 으쓰대놓고서는 말이다.

3) 못 들은 척 하기
아예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린다. 돌린 화제거리에 내가 말려들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화제로 넘어가는데 3~4번쯤 넘어가면 질질 끌려가는 결론이 나는 것이 뻔한데도 계속 시도를 한다. -_- 

4) 못해! 못해!
앞의 3가지 경우는 해야하는 걸 이해는 하고 있어서 자신도 자신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이건 그냥 심통이 난거다. 이유도, 핑계도, 빠져나가려는 노력도 없다. 난 몰라, 배째고 누운 꼴. 열 불 난다.

3. 짜증 대마왕
영어 구문 중에 'Push one's button' 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 꼭지 돌도록 화나게 한다는 뜻인데, 특히나 개개인별로 민감한 상황이 다른데, 딱 그 상황을 찾아 건드렸을 때를 뜻하는 것 같다.

나한테는 아이의 짜증이 그렇다. 윤우가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 내 마음 속에 '딱'하고 '화내기 버튼'이 켜지는 소리가 들린다. 굉장히 민감하고 수위가 높아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건지 곰곰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친정 엄마가 화를 엄청 잘 내셔서 내가 항상 엄마 눈치를 보며 주눅들어 있었는데 그거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짜증이 잘 나는 것도 성격의 일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만난 엄마가 짜증이 '화내기 버튼'인 사람이니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나도 커 가는 거겠지.'라고 좋게 생각하려 애쓰고 있다.

윤우는 뭐든 하려다 안되면 벌컥 짜증섞인 소리를 낸다. 아이가 자신의 능력보다 수준이 높은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면 또 짜증섞인 소리를 듣게 될까봐 마음이 벌써 급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그 소리를 안들어보고자 내가 할 일이 뭔가 허둥지둥 찾아보는 거다. 아이가 미리 요구하기 전에 도와주는 것은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야기가 많아서 뺏아서 척척 해주지도 못하고 주위만 맴돌며 조급해지는 것이다. 에구야...

요즈음 윤우는 짜증이 난다는 걸 "자꾸 그래...계속 그래..."라고 표현한다. 불편하고 싫은 감정이 계속되니 어떻게 좀 해달라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은데 엄마도 아직 그 수준이 안 되니 답답하구나.

4. 능청 대마왕
밖에 나갔다 와서 손을 씻으라고 하면 "손은~ 안 씻어도~ 됩니다!"라며 괜한 능청을 떤다. 정리를 하라고 하면 "정리는~ 안 해도~ 되요!"라고 하고, 이 닦자고 하면 "이는~ 안 닦아도~ 되지요!"라고 한다. 이 문장을 위한 리듬도 따로 존재한다.
때로는 이렇게 변형되기도 한다. "손 씻는 건 절대로 안 되~ 그런 건 절~대! 안 되는 거야!"

입으로만 하는 반항이라 애교로 봐주고 있지만, 이제 아기의 단계를 넘어 '남자 어린이'로 가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ㅂ-

5. 촐싹 대마왕
빙의된 듯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몸을 흐느적거리고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 까불기 시작한 건 사실 꽤 되었는데, 요즈음 부쩍 심해졌다. 그런데 앞으로 이게 점점 더 심해질꺼라 생각하니 우울하다. ㅠ.ㅜ 버스 안에서 조용히 창 밖을 바라보던 그 'sentimental boy'가 진짜 저 아이가 맞나 싶다.
남자아이들의 전매특허인 '촐싹 까불'은 사실 내가 아이들을 대할 때 가장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웃음도 안 나오는 녀석들의 '방의 상태'에 가히 동참하여 나도 혼을 잠시 빼 놓는 것이 정답일 것이나, 이건 내 인생 통 틀어 해보지도, 해볼 생각도,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남자아이 엄마'로 내가 빙의되길 바래본다. T-T

6. 삐짐 대마왕
이제 삐지기도 한다. 내가 훈계를 시작하려 하면 저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난 아무 얘기도 안 할꺼야!"라며 샐쭉해진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나에게 '네'라는 고분고분한 대답은 기대하지 마세요. 내 기분이 지금 무지 나쁘거든요.' 라는 표시인거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도 저게 딱 내 모습이어서 기운이 쭈욱 빠진다. 윤우에게 화가 났을 때 "지금은 너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엄마가 화가 많이 났어."라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배운건지 아니면 현수에게 삐져 있는 걸 보고 배운건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들이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유치하게 귀를 막고 "아아아아아아~"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무슨 말을 하든 흘려들으며 무시하는 경우는 많았다. 반성한다. ㅠ.ㅜ

그래도 희망적인건 저렇게 말을 해도 계속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 얼굴로 바라보니 조금 있다가 "네~"라고 작은 소리로 대답을 했다는 거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돌리는 건 '바람'이 아니라 '해님'인 모양이다.

7. 사교성 제로
윤우에게 또래 친구란 아직 '같이 놀 상대'가 아닌 것 같다. 내 놀이를 방해하는 훼방꾼이나 지도, 교정이 필요한 어리숙한 아이들 정도?
만나는 또래에게 윤우가 하는 말이라고는 "그게 아니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하는 거야." "그건 너무 많잖아!" "뛰어가면 안 돼."등등 잔소리뿐이다. 결국 다 엄마 말투이니 나한테 매운 거다 싶다가도, 그럼 다른 아이들은 엄마한테 저런 얘기 평생 안 듣고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자신도 잘하지 못하면서 남의 허점에만 주목하는 겐지. 당신 먼저 잘하세요!

8. 한글 & 그리기 & 가위질
그림책을 보며 글자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은 한 두달 쯤 전부터였던 것 같다. 물어볼 때마다 대답해주는 것으로 끝내고 별다른 한글 교육은 시키지 않고 있었는데, 펜으로 선 따라 그리기를 참 좋아하길래 마카펜으로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한글책을 사주었다. 몇 주 동안 여기에 꽂혀서 열심히 하더니 첫 글자를 썼다.

요즈음 아이들은 예전처럼 자기 이름 석자로 출발하지 않는다. 지금은 아이돌 시대~~~ -ㅂ-/ 다른 글자들은 좌우반전이 진하게 되었지만, '타요'만은 또렷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자기주도학습의 힘!

그림의 주된 소재는 여전히 자동차이다. 예전보다 디테일이 살아난 윤우의 자동차들.

가장 밑의 3-1번 버스는 도서관으로 갈 때마다 타는 노란색 마을 버스이다. 지금처럼만 계속 도서관을 좋아해주면 좋겠다.

윤우가 처음 자동차 바퀴를 제대로 그렸을 때의 그림이다. 이 그림 뒤에는 자동차 바퀴들이 다시 위의 그림처럼 동그라미로 돌아갔는데, 이 때는 타이어와 휠을 일부러 구분하여 그렸었다. 휠의 모양이 자동차마다 다르다는 걸 꽤 재미있어 했는데 이걸 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유일한 초상화의 영예를 안은 미피. 미피를 보면 항상 입은 어디갔냐고 이야기한다. 토끼의 코와 입을 함께 단축시켜 그려놓은 브루너님의 깊은 뜻도 모르고. ㅋㅋ X자를 가르키며 "이게 입이야." 했더니 그럼 코가 없는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눈 사이에 점 하나로 코를 찍어 놓았다.

뭔가 그리고 벽에 붙여 놓겠다며 메모장에 열심히 그린 그림. 정작 화가는 별 생각이 없었을 것 같긴 한데, 그린 것을 보니 바다 위에 배 한 척이 떠 있는 것 같다. 꿈보다 해몽. ^^

가위질에도 재미를 붙였다.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되지 않아 짜증을 부릴 때가 많다. 유아용 안전가위는 제대로 잘리지도 않고 계속 종이가 씹히기만 해서 마트에서 다시 유아, 어린이용으로 가위를 2개나 더 사왔는데, 정말 잘 사용하는건 윤우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어른용 안전가위. -ㅂ-  유아용 핑킹가위는 다행히도 제법 잘 든다. 지그재그 잘리는 맛을 살려 뾰족한 이빨이 있는 공룡을 오려 주었더니 한참을 가지고 놀았다.

9. 이불에 오줌을 싸다.
10월 26일 오후! 낮잠을 자던 윤우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헐레벌떡 방에서 뛰쳐나왔다. 마치 못 볼 걸 본 것 같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도 놀랐는데 바지를 만져보니 축축했다. 처음으로 이부자리에 실례를 한 것이다!
이제까지 오줌을 참다가 싼 적은 몇 번 있지만 자다가 싼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의 첫 경험은 그게 무엇이든 엄마에게는 추억이다. 그래서 찰칵! ^^



처음에는 씩씩거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자식이지만 밉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내 속에 화가 잔뜩 쌓여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뒤로 가면서 윤우의 일상을 돌이켜보니 다시 마음이 녹는다. 그래, 부처같은 엄마일 수 없다면 언젠가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오는 파도타기 엄마라도 되어보자.

며칠 전 살림언니가 시어머님와 아이아빠와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국 내가 지금 아이에게 느끼는 속타는 감정이 지금 어머님 심정일 것 같다.'라고 했다. 부모 말 안 듣는 자식 바라보는 심정이, 그 정도야 다를 수 있어도 어짜피 같은 뿌리라는 것이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윤우와 나의 갈등은. 길고 길 앞으로의 여정에서 마음 속에 '그 버튼'이 켜지더라도 이 아이가 내게 준 행복을 떠올리며 파도를 타 보자. 그렇게 나도 크고 윤우도 크다 보면 파도가 잔잔해지는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