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80)
고래가 부르는 노래
2004년쯤부터 소화장애가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명치 끝이 답답하고 묵직한 느낌에다가 뒷목이 당기고 머리가 아팠다. 이 증상이 한 번 나타나면 하루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는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굶고 나면 손 하나 까닥할 기력조차 없어지는데 그제서야 답답함은 가라앉고는 했다. 몇번의 내시경 검사에도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하고 끙끙거리고만 있었는데 남편이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담적병'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적은 소화기능 부족으로 위장 내에 잔류한 음식이 부폐하면서 세포 사이사이에 들어가 굳어지고 이것이 위장운동을 방해해서 소화장애가 더 심해진다는 병이다. 지난 해 11월 관련 한방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고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약은 ..
여느 날과 다름없이 정신없는 아침식사 시간이 지나고 게으름뱅이 윤우를 꾸역꾸역 먹이고 있는데 식탁 바로 옆 달력을 보니 오늘이 2월 14일이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멋적게 말했다. - 발렌타인데이네. ㅎㅎㅎ 사랑해. " 뭘 주고 그런 말 해라. -ㅁ-+" - 여직원들한테 받아요. ㅋ " -0- ..." 민망한 빈손을 흔들며 남편을 보내고 식탁으로 돌아오니 윤우가 물었다. "엄마 뭘 받아?" - 아, 오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주는 날이야. "엄마 윤우 사랑해?" - 그럼 사랑하지. "그럼 오늘 내가 아빠랑 가서 경찰차 사줄께." - (받는 사람이 내가 맞나? ;;;) ㅎㅎ 오늘은 주로 먹을 걸 선물로 줘. 직접 한 음식이라든지...초콜렛이라든지. " 그럼 내가 엄마한테 초콜렛 줄께." - ㅎㅎㅎ 고마워...
아이를 재우다 눈을 뜨고 문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시간은 11시이다. 하마터면 2012년에 깨어날 뻔했다. -0- 윤우아빠가 윤우와 함께 새우깡을 먹다가 '안주의 유혹'에 맥주 한 캔을 흡입하더니 곯아떨어져 버려 나를 깨울 수가 없었던 거다. 그저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하루가 오는 것 뿐인데 해넘이라는 건 사람 마음을 참 다르게 만든다. 부랴부랴 샤워을 하고 깨끗한 몸(!ㅋㅋ)으로 새해를 기다렸다. 2011년을 돌아보니 '결국엔 좋았던 일들'만 떠오른다. 힘들고 지치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좋은 결과를 위한 과정이었을 뿐 아픔으로만 남은 상처는 없었다. 내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숙제로 여기는 것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랑 안에서 그들이 나로..
12월은 온전히 크리스마스를 위한 한 달이다. 밤하늘의 별이 모두 땅 위에 내려 앉은듯 온 세상이 반짝이 전구로 빛나는 시기. 연말연시의 분위기라는 건 이제 크리스마스와 한묶음으로 녹아버려서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집안에 트리 하나쯤은 장식하게 된다. ^^ 12월의 1일,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으로 우리집의 '크리스마스 시즌'을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매우 좋아하는 나는 혼자 자취를 할 때도 12월이 되면 반짝이 전구로 원룸을 장식하곤 했다. 그 때 사두었던 반짝이 꼬마전구들이 매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집이 좁아 크리스마스 트리를 놓을 공간이 없어서 고민을 하다가 진한 와인색 에어컨에 꼬마전구들로 트리 모양을 만들었다. 에어컨의 특성상 집 안쪽으로 몸을 틀고 있기 때문에 저 곳에 장식을..
11월의 마지막 주말, 청주의 엄마, 아빠가 우리 집에 올라오셨다. 3주 간격으로 있는 엄마, 아빠의 생신을 한꺼번에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생신 때가 되면 우리가 청주로 내려가곤 했는데 생각해보면 정작 생일 당사자의 집에 내려가 우리가 배불리 얻어먹고 오는 식이니 어딘가 어긋난 느낌이 진작에 있었더랬다. 생일 파티는 외식으로 한다쳐도 그 외의 아침, 저녁 등 남은 끼니들은 고스란히 부모님의 책임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게다가 아빠는 예전부터 청계천이 보고 싶다며 엄마에게 노래를 부르셨단다. 딸네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사위랑 편하게 술잔도 기울이고 마음껏 서울 나들이도 해보는 아빠의 꿈을 "늙어서 애들 성가시게 하면 안되는겨!"라며 엄마가 내내 꺾어오셨던 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말마다 가는 나의 병..
10월의 세째주 주말, 당진에 있는 선희네에서 버찌씨가 다들 모였다. 대하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요즈음 버찌씨들과 만나면 헤어지기 전에 꼭 다음 만남 꺼리를 만들곤 했는데, 지난 번 여름에 유진이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다들 전주에 내려갔을 때 "가을이 되면 대하를 먹으러 오라!"던 추기경의 말을 아무도 흘려듣지 않았던 것이다. ㅎㅎ 선희네는 대하철만 되면 지인들을 불러 대하를 사주느라 바빠진다. 딱히 가을이 아니더라도 당진에 놀러 갈 일이 생기면 선희와 추기경(이름이 김수환이어서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은 삽교천 근처 시장에서 싱싱한 회며 꽃게를 한 바구니 사다가 우리를 푸짐하게 대접해 주고는 했다. 게다가 이 날은 선희네가 새 집으로 이사한 지 일주일도 채 안된 때였다. 집들이라는 그럴 듯한 ..
아침부터 분주했다. 보통 주말의 일정은 내가 미리 짜놓고 남편에게 통보하는 편인데, 그 주의 스케줄은 홍대 와우북페스티발에 가는 거였다. 도서관에 책을 가져다 주고 다시 집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서 버스를 타야 하니 시간이 빠듯했다. 물론 빠듯하다는 건 충실한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의 기준에서이다. 누구 하나 기다리는 사람없는 온전히 우리들만의 나들이니 말이다. 내가 운전을 하고 나섰다가 도서관에서 주차를 하는데, 3번 시도를 하다가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급한 마음에 얼른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남편은 삐뚤어진 차를 보고는 "이게 다 댄거야?"라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지금은 시간이 없고 조금 삐뚤어지긴 했지만 양 옆의 차들이 문을 여는 데 지장이 없다며 맞섰다. 그러자 남편은 "이래서 차 끌고 ..
내일은 우리의 4번째 결혼기념일이다. 4년 밖에 안되었다니! 라고 현수가 놀라워 하길래 지겹다는 게야? 하고 눈을 흘겨줬는데, 연애 기간이 9년이나 되었던 우리에게 4년의 시간이 묻혀버릴 만도 하다. 결혼을 하고 3개월만에 계획치않게 윤우를 임신해서 우리는 첫 결혼기념일을 산후조리원에서 맞았다. 첫번째 결혼기념일에 호주를 여행하자던 약속은 이미 가을 바람에 먼지날리듯 사라져버린 뒤였고, 엄마와 현수의 성화로 잠깐의 나들이도 하지 못한 채 집 근처의 교보문고에 가서 책 한권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었다. 나는 그 후로 매년 현수와 나만의 결혼기념일을 꿈꿔왔다. 하지만 어린 윤우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시댁에 윤우를 하룻밤 맡기기로 결정을 했다. 감사하게도 시부모님께서는 흔쾌히 윤우를..
자취할 때 내 자취방은 각종 곰팡이와 벌레들의 천국이었다. 엄마가 고향집에서 주무시다가 내 방을 생각하면 잠이 안오신다고 할 정도. ^^;; 풍수의 기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너지의 흐름'을 믿기 때문에 잘 정돈된 환경 속에서 활기찬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영 몸이 따로 놀았다. 그랬기에 여름에는 항상 초파리들과 함께였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너무 심해서 다용도실 쪽을 살펴보았더니 다용도실 구석구석이 초라피들의 번식장소가 되어 있었다. 비염기가 있어서 코를 훌쩍거리는 아들래미 둔 엄마로서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는 일. 대청소는 물론 앞으로의 생활을 제대로 바꿔보기로 결심하고 하나하나 실천중이다. 우선 초파리들의 신혼집, 다용도실을 청소하고 정돈했다. 락앤락 음식물쓰레기통을 산 뒤로 쓰..
2주 전에 이사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고민을 했다. 남을 것이냐 떠날 것이냐... 결혼을 해서 분당의 이 집에 둥지를 튼 것이 이제 4년이 되어 간다. 2년 전에는 스리슬쩍 재계약 기간이 지나가면서 자동연장이 되었지만, 다시 2년이 지난 지금 펄쩍 뛰어오른 전세값을 보고 집주인이 무심하게 지나칠 리 없었다. 5,000만원 인상을 요구했고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남편의 직장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지금 보다 조금 더 넓은 곳을 바란다면 선택은 한 곳 밖에 없었다. 죽전이다. 이사를 염두해 두고 죽전 지역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신랑이 괜찮은 아파트라며 찍어둔 곳은 뒤 쪽으로는 탄천의 지류가 흐르고 앞으로는 작은 동산이 있었다.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 정류장도 있었고, 탄천 지류를 사이에 두고는 ..
우연히 어제 그 기사가 거의 뜨자마자 보게 되었다. 그 기사를 읽고 난 후 조회수 기사 랭킹을 보니 이지아와 정우성의 공개 데이트가 2위인가 3위를 하고 있었다. 정말 충격적인 기사였는데도 어제는 꽤 담담했다. 다만 며칠 전부터 양현석이랑 서태지가 했다는 약속(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결혼'은 하지 말자는...)이 계속 머릿 속을 맴돌던 차여서 '참 신기하네.'라고 오히려 내 '감'을 신통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담담함은 아마 피를 보기 전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았나 보다. 오늘 사실 확인이 되고 게다가 밖에는 비까지 내리니 기분이 땅을 파고 들어갔다. 게다가 '그가 결혼을 하든 말든 그건 그 사람 사정!' 이라는 이성과 '그래도 말해주었으면 했어!' 라는 배신감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
내가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심장이 쿵쾅거렸었다. 유시민이 경기도지사 후보에 나온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런데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가 진행된다고 한다. 선거인단 신청자 중 무작위 추첨을 해서 전화설문을 통해 선호도 조사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미끌어진다면 그를 뽑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게 된다. 인터넷에서 표를 '앵벌이'했던 유시민 후보만큼 나도 절박한 심정이었다. 제발 이번에는 '차선'투표가 아닌 진짜 투표를 해 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그가 지지를 호소하고 다닌 것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좋게 말해서 격이 떨어진다는 건데, 지금 우리가 정치인에게 바라는 덕망이 '고고함'인가? 아니다. '범죄자만 아니길!' 이다. 권위를 내..
깨달음(!)은 순간적으로 찾아왔다. 그건 마치 양파를 춘장에 찍어먹는 '맛'을 알아버렸을 때와 같았다. 먹어보고 싫어한 것도 아니고, 미리 머리 속에서 저 멀리 치워 버렸던 그 맛. 한 입 두 입 먹어보다 익숙해진 게 아니라 번개와도 같이 깨달아버린 것이다. 아! 이런 맛도 맛있구나!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오후였고, 나는 건조대에서 양말을 한무더기 가져와 개고 있었다. 그 날따라 참 예쁘게 잘 개어지는 양말들. 차곡차곡 예쁘게 갠 양말로 높은 탑을 만들어 쳐다보니, 정말 "보기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잘 개어진 양말을 서랍장에 넣으려 서랍을 여니, 여기저기 흐트러진 속옷과 양말들이 "보기에 안 좋았다." '예쁘게 정돈해서 넣어 놓으면 기분이 좋겠다.'는 생각에 마트에서 서랍 정리용 수납함을 사서 깔끔..
마트에 갔다. 오랫동안 물고기를 못먹었다 싶어서 생선코너에서 현수와 어슬렁거리고 있다가 청어를 발견하고 두마리를 사왔다. 청어를 구어서 한 입 먹을 때까지도 나는 청어를 "삼치"로 생각하고 있었다. 삼치와는 전혀 다른 기름진 맛! 아무 양념없이 굽기만 했는데도 기름이 자글자글한게 정말 맛있다. (나는 삼겹살도 비계있는 부분을 좋아한다.) 특히나 배부분에서 불룩하게 튀어나와있는 "이리"라는 부분이 맛있는데 알인가? 내장인가? 모르고 얌얌 맛있게 먹었는데 찾아보니 "이리"란 어류의 정자란다. ^^;; 뭐 이랫거나 저랬거나 워낙 맛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은 없다. 돌고래들이 청어떼를 유인해서 공무리처럼 만든 다음 몇 마리씩 꿀떡꿀떡 삼킬 때의 기분이 이런 걸까. 으아~ 맛있어~
사촌동생을 만나러 나가는데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다. 임부복은 다 짧은 것밖에 없고, 그나마 하나 있는 긴 바지는 분홍색. ^^;; 임부복 사이트에서 눈에 띄길래 충동구매한 것이었는데 배 쪽 고무줄이 불량이서 한 번 교환했는데, 그래도 고무줄이 조금 모자라 이래저래 안 입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날씨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어버렸다. 임산부가 아니라면 쉽게 용기를 낼 수 없는 고운 분홍색~~-ㅂ-/ 옷장 속에 고이 모셔 두었다가 다음번에 임신하면(!) 재도전을~~~ 오늘 먹은 인도 요리. 그런데 인도 요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고급음식이 되버린걸까. 저 정도 양의 가격이 5만원정도. -_- 기념일에 먹어야 할 음식이 되어가고 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