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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담적치료 이후 내가 얻은 것들

고래의노래 2012. 4. 1. 22:41


2004년쯤부터 소화장애가 빈번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명치 끝이 답답하고 묵직한 느낌에다가 뒷목이 당기고 머리가 아팠다. 이 증상이 한 번 나타나면 하루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는 수 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굶고 나면 손 하나 까닥할 기력조차 없어지는데 그제서야 답답함은 가라앉고는 했다. 

 

몇번의 내시경 검사에도 별다른 원인을 찾지 못하고 끙끙거리고만 있었는데 남편이 인터넷을 검색하더니 '담적병'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담적은 소화기능 부족으로 위장 내에 잔류한 음식이 부폐하면서 세포 사이사이에 들어가 굳어지고 이것이 위장운동을 방해해서 소화장애가 더 심해진다는 병이다.

 

지난 해 11월 관련 한방병원을 찾아가 진단을 받고 진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약은 물론이고 물리치료가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온 주말을 치료에 쏟아야 했다. 전류 치료, 초음파 치료, 뜸이랑 침 치료를 함께 진행했다. 보통 3개월이면 진료가 완료되는 경우가 많다던데, 내 경우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4개월이 되었을 때 스스로 그만두었다.(내가 그만두지 않았으면 얼마나 끌고 갔을런지...-_-;;) 경제적으로도 부담이었고, 안그래도 주말아침에 병원에 갈 때마다 아이의 슬픈 눈을 바라봐야 했는데, 3월에 새롭게 어린이집에 적응하면서 힘들어할 윤우에게 주말까지 반쪽엄마일 수는 없었다.

 

치료를 하는 사이 몇 번 체기가 있었지만 치료의 효과인지 가볍게 지나가는 정도였다. 완치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치료가 되었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은 바로 오늘 예전처럼 체해 버렸다. -0-;;; 두통이 조금 덜했을 뿐 나는 이번에도 침대에 누워 계속 끙끙거리며 꽉 막힌 명치를 두드려야 했다. 어제 과식이 주요인이었다. 치료가 끝나고나서 금지음식 목록이었던 빵과 커피, 떡을 간간히 섭취한데다가 어제는 한정식을 흡입한 후 바로 생크림빵으로 달달함을 채우고 윤우가 먹다남긴 딸기머핀도 한 개 후다닥 먹어치워 버렸다. 반성한다. ㅠ.ㅜ

 

예전처럼 잔뜩 체하고 나니 담적치료한다고 쏟아부은 기백만원이 눈 앞에서 아른거렸다. 으으으으... 그런데 완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음식에 대해, 식습관에 대해 '깨달은 점'은 분명히 있었다. 담적치료 후기라고 적으려고 했던 것도 그런 점들이었다.

병원에서 해주는 치료야 내 손 밖의, 일상 외의 일이니 차치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식습관을 바꾸면서 얻게 된 깨달음들이다. 치료를 하는 중에 반드시 지키라고 병원에서 당부한 몇 가지 금지음식들과 생활습관들이 있었다. 사실 새로울 것은 없고 건강한 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신문이나 방송에서 여러 번 들었던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내 돈 수백만원이 이미 들어갔기 때문에..ㅠ.ㅜ 이건 마치 '학원의 효과' '헬쓰장의 효과'와 다르지 않았다. 집에서 실천하려면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다. 근데 어딘가에 등록을 하면 더 잘 실천하게 된다. 돈의 마법이다. 내 돈 아깝게 버렸다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1. 4달 동안 고기, 밀가루 없이 생활했다.

고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밀가루 없이 사는 건 정말 힘들었다. 쌀이 주식인 우리나라지만 부침개, 칼국수, 수제비에 모두 밀가루가 들어가는데다가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밀가루 없이 메뉴 정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이 기간 동안 우리의 외식은 항상 '비빔밥'이었다. 밀을 재배한 역사는 오래되었다고 쳐도 밀이 우리 식탁에 빈번히 올려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음식에 밀이 들어가게 된 걸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6.26 이후에 미국으로부터 밀가루 지원을 받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우리가 전통음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근대화 이후의 음식문화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건 케잌과 빵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ㅠ.ㅜ 크림부숭이 케잌에 대한 내 사랑을 접고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입맛만 다시던 쓰린 기억... 마지막 치료 때에 이제 밀가루를 영원히 먹으면 안되냐고 정말 의사를 애처롭게 바라보았는데 밀가루 음식을 먹으려면 우리밀로 만들어 먹으란다. 그 이야기에 우리밀로 빵을 만드는 한살림에서만 빵을 사먹고 있는데 이 역시 과식은 금물.

밀가루와 고기 없이 생활하니 몇 주만에 아토피 증상이 사라졌었다. 그 후 몇달 뒤에는 다시 증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아토피의 원인이 100% 음식때문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진정 효과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2. 약을 먹느라 식사 중간에 간식을 먹지 않게 되었는데(먹을 간식도 마땅치 않고) 끼니 때가 되면 공복감이 들면서 밥맛이 엄청 좋았다.

내가 갓 볶은 나물들이랑 비빔밥을 해서 먹었을 때는 행복이 온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끼니를 챙겨먹는 걸 엄청 귀찮아해서 끼니 대용 알약이 개발되길 빌고 빌었었다. 당연히 먹는 즐거움, 이런 건 없었는데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끼니 외에도 끊임없이 무언가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식을 자주 먹으니 당연히 밥맛은 없고 밥먹기는 귀찮아지기 마련. 비빔밥 한 그릇이 주었던 행복을 기억하면서 위장을 비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야겠다.

3. 소화를 돕기 위해 밥을 오래 씹었는데 이렇게 되니 음식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밥을 먹을 때 밥과 반찬 한가지를 입 속에 넣어 같이 섞은 뒤 대충 씹고 나서 바로 다음 반찬 또는 밥을 습관적으로 우겨넣고는 했다. 그렇게 되니 당연히 음식맛이 모두 섞이고 맛을 음미할 시간은 없었다. 그런데 의식적으로 한가지 반찬을 오래 씹게 되니 맛과 향기를 느끼게 되었다.


4. 이 모든 게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 최고봉으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나를 위해 요리하기'.

주부들은 흔히 '혼자 있으면 대충 먹기'의 늪에 빠지고는 한다. 요리가 빈번한 의무가 되다보니 혼자 있을 때는 그 의무에서 벗어나 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를 위해 요리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최고의 단계인 것 같다. 건강이 최고이고 나는 먹는대로 만들어질지니, 외로운 밥상이라면 반찬으로 더 푸짐하게 하자!!! 스스로를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자.

 

5. 그리고 내가 소중하게 깨달은 또 한가지. 평온한 주말 일상의 소중함.

토요일, 일요일 오전을 모두 병원 치료로 보내니 여유롭고 느긋하게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주말이 없었다. 치료를 그만두고 처음 맞는 주말, 겨울간식으로 사두었던 호떡믹스 봉지를 그제서야 꺼내고 호떡을 부쳐 먹었다. 특별한 일정없이 가족 모두가 서로 배깔고 누워 빈둥거리며 간식해먹는 주말이 얼마만인지...

 

 

'아무 일 없는' 일상이 이리 소중하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시간만 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했고, 주말에는 항상 '비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어했다. 이런 주말이 오래 계속되고 봄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다시 엉덩이가 들썩거리겠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심심한 주말 또한 그리 나쁘지 않다는 걸 꼭 기억해두어야지. 주말의 특별함은 이벤트적인 하루때문이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것들이 내가 비싸게 얻어낸 깨달음들이다. 담적치료로 내 위장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내가 나 스스로를, 내 삶을 돌아보고 귀히 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삶의 태도를 바꾸고 기쁘게 생활하다보면 내 몸도 어느 새 건강해져 있으리라 믿는다.

 

- 밀가루와 고기는 되도록 멀리 하고

 

- 간식을 삼가며

 

- 밥을 오래 음미하면서 씹고

 

- 스스로를 위해 기쁘게 요리하자.

 

- 그리고 평범한 일상 또한 건강한 몸을 바탕으로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