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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 그렇게 또 하루. 본문

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결혼기념일 - 그렇게 또 하루.

고래의노래 2011. 10. 12. 23:01
내일은 우리의 4번째 결혼기념일이다.
4년 밖에 안되었다니! 라고 현수가 놀라워 하길래 지겹다는 게야? 하고 눈을 흘겨줬는데, 연애 기간이 9년이나 되었던 우리에게 4년의 시간이 묻혀버릴 만도 하다.

결혼을 하고 3개월만에 계획치않게 윤우를 임신해서 우리는 첫 결혼기념일을 산후조리원에서 맞았다.
첫번째 결혼기념일에 호주를 여행하자던 약속은 이미 가을 바람에 먼지날리듯 사라져버린 뒤였고, 엄마와 현수의 성화로 잠깐의 나들이도 하지 못한 채 집 근처의 교보문고에 가서 책 한권을 사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었다.

나는 그 후로 매년 현수와 나만의 결혼기념일을 꿈꿔왔다.
하지만 어린 윤우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시댁에 윤우를 하룻밤 맡기기로 결정을 했다. 감사하게도 시부모님께서는 흔쾌히 윤우를 맡아주신다고 하셨다.
윤우가 엄마없이 다른 집에서 잠을 자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게다가 하루 전부터 윤우는 몸이 아팠다. 열이 많이 나고 입맛이 없는지 점심, 저녁도 먹지 않은 채 투정을 부리다 잠이 들었다. 윤우를 맡기기로 한 토요일 아침에는 차가운 두유를 먹다가 온통 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아과에서 약을 받아온 후 아침밥을 먹고 조금 원기를 차린 아이를 시댁에 맡기러 갔다.;;; 엄마, 아빠는 일이 있어 하룻밤 다른 곳에서 자고 올꺼라고 "윤우, 할머니랑 잘 수 있겠어?"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잠이 덜 깨서 잔뜩 찌뿌둥한 표정을 한 아이를 한 번 껴안아 주고 데이트를 나갔다.

동아리 선배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 우리는 효자동으로 향했다. 나는 종로를 참 좋아한다. 옛 서울이 주는 정취가 좋다.
그래서 부암동, 북촌, 삼청동 등 경복궁을 끼며 있는 산책로들을 거의 돌아보았다. 효자동만이 유일하게 못 가본 곳이어서 이번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경봉궁역에서 나와 경복궁 돌담을 끼고 걸었다. 결혼식 때문에 현수가 양복을 입었는데 사실 이 때문에 결혼기념일 분위기가 더 나더라. ^^ 은행나무가 온통 노랑이 되는 깊은 가을에는 더 정취가 있을 것 같다.

걷다보니 어느 주택 건물 안에 조그마한 벼룩시장이 서 있다. MK2 벼룩시장이라고 써 있는데, 여러가지 핸드메이드 상품들과 중고 물품들을 팔고 있고, 막걸리와 파전도 팔고 있었다. MK2라는 카페가 있다고는 들었는데 카페 위치와는 다르게 여관 옆 건물이다.
'시장'이라고 하기에도 '축제'라 하기에도 규모가 많이 작은데 앉아서 파전과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 모두 진작에 서로를 알고 있는 '동네'사람들인 것만 같았다. 사실 그렇기에 더 축제스러웠지만.
결혼식 부페에서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배가 너무 그득했기에 아쉽게도 파전과 막걸리를 마시며 그들 안에 섞일 기회는 갖지 못했다. 대신 윤우가 좋아할 만한 자동차 모양의 수제비누 하나를 구입했다.

사실 내가 효자동을 가 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곳. <빙그레 식품>때문이다.
몇 주전 현주언니에게서 빌려 읽은 오소희씨의 <사랑바보>라는 책에 이 곳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바보>는 온 세계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색깔의 사랑이야기 모음인데, 유일하게 한국을 배경으로 나온 이야기가 이 곳에 계신 할머니에 대한 것이다.

아이와 나에게 빙그레 식품은 일종의 중간 충전소다. 우리는 이 곳에 들러 각자 우유와 물을 마시고 힘을 추슬러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어느 날 아이가 우유를 사자 할머니가 빨대의 껍질을 벗겨 내미셨다.
 "저 빨대 필요 없어요!"
 "아이구, 이제 다 컸다고 빨대는 필요 없구나! 몇 살이야?"
 "여덟살, 학교 다녀요!"
 "아이구, 학교 다니는 형하로구나. 그러니 빨대는 필요 없지!"
아이는 보란 듯이 우유를 열어서 단 몇 모금 만에 꿀꺽 비워버렸다. 마시고 나서는 가파르게 숨을 쉬며 할머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이구, 이렇게 잘 마시네! 정말 형아로구나! 이런 형아한테 내가 빨대를 주었구나!"
할머니는 언제나 '아이구'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알다시피, 아이구는 감탄사이다. 고맙고 놀랍고 기쁘고 슬프고, 아름다운 것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 때, 닫혀 있던 것이 '끼이익' 가식없이 열리는 소리와 같다. 할머니에게는 감탄할 것이 많았다....
첫 대화를 나눴던 저녁, 할머니는 우리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슈퍼 밖에 서 계셨다.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아이구, 먼 데까지 또 왔구나!"
할머니는 장바구니를 내려놓으시고 아이의 머리부터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내게 오렌지 주스를 내놓으셨다. 우리는 한동안 난로 곁에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밤이 되었다. 나는 일어서면서 약간 망설이다가 주스 값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가 내 손을 꼬옥 잡았다. 안경 너머로 주름이 깊고 다정한 눈을 빛내며 말씀하셨다.
 "나 그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
순간, 무언가 뜨뜻한 것이 확 끼쳤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들만이 원할 법한 값싼 물건들 사이에서, 한평생 아등바등 살지 않은 이가 머물며 덥히고 퍼뜨린 체온. 마음이 절로 중얼거렸다. 체온은 무지개빛이로구나.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한다. 하지만 쉬이 닿지 못해 좌절하고...
이미 내가 원하는 모습인 그 분을 멀리서나마 뵙고 싶었다.
현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물을 하나 사자고 들어갔다. 할머니가 나오신다. 우리가 활짝 웃지,도 비싼 물건을 사지도, 재밌는 이야기를 건넨 것도 아닌데 이미 할머니는 웃고 계신다.
현수가 생수 값을 계산하고 나는 한 발짝 뒤에 물러서서 소심하게 현수의 어깨 너머로 할머니를 살펴 보았다.
인사를 하고 다시 나오는데, 알았다는 듯이 현수가 말을 한다.
 "할머니가, 눈을 맞추시네."
건네받는 돈이 아니라 사람의 눈을 맞추는 사람.
할머니는 이미 알고 계신 걸꺼다. 돈보다 사람이 훨씬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길을 걷다보니 어느 새 청와대 근처까지 와버렸다.
기암괴석을 두르고 있는 북악산을 보고 있으면 왜 이곳을 등에 지고 경복궁을 지었는지 알 것 같다. 그냥 보기에도 참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산이다.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 머물고 있는데 중국인 관광객 한무리가 옆 길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에 따라가보니, 경복궁 뒷문이 나오고 그 앞 길건너에 파란 청와대가 정면으로 보인다.
경복궁은 다섯번도 넘게 들어가 보았는데 이렇게 후문에 청와대가 이어져 있는지 몰랐다. 후문까지는 와보지도 않았던 게다. 항상 뭐가 그리 급했을까.

효자동을 산책하려고 여기저기를 검색하면서 찾았지만 제대로 된 지도 하나 건질 수 없었다.
효자동 길을 걷다보면 길가에 지도 팻말이 있고 추천 경로도 나와있는데, 어디에서도 이 지도를 파일째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겨우 발견한 지도 두 장을 가지고 걷다가(지도는 블로그 마지막에 첨부) 지도 한 번, 길 한 번 보느라 호젓한 산책을 놓치게 되는 것 같아서 지도를 내려놓고 현수 팔짱을 낀 채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그러다가 청와대까지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결혼식 복장이던 우리의 신발은 오래 걷는 데는 쥐약이었다. 욱씬거리는 발을 쉬게 하러 근처에 있다는 <마르코의 다락방>을 찾았다. 가수 윤건이 하는 카페라는데 커피 맛은 그저 그랬지만, 허니 바나나 크레이프는 감동의 맛!!!!
재료의 맛을 살리는 절제의 요리를 한다고 메뉴에 써 있었는데 달콤함은 절제를 넘어 버렸지만 건강한 맛의 크레이프와 통통한 바나나가 요리의 법칙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효자동을 빠져나와 명동 롯데에서 오랫만에 옷 쇼핑을 한 후 어디로 갈까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북악 스카이웨이>를 검색해보니 야경이 남산에 비할 바가 아닌데다가 럭셔리한 레스토랑도 있다는 것이다. 호텔급 레스토랑을 상상하며 너무 큰 지출이 아닌가 생각하다가 '특별한 날'임을 생각하며 택시를 탔다. 이 곳은 버스가 가지 않아 대부분 자가용으로 들어오거나, 택시를 타고 갔다가 다시 나오려면 콜택시를 불러야 한단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이면 택시들도 가끔 오겠지 싶어 용기있게 택시타고 출발했다.

산길을 올라가다가 조명에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낸 서울성곽이 보이자 탄성이 나왔다. 진정 저 꼭대기의 야경은 어떨지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배고픈 우리를 맞은 건 호텔 레스토랑이 아니라 '휴게소 식당'이었다. 그것도 80년대의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
게다가 식당 밖 야경은 여의도 불꽃놀이를 보려고 식당 밖 울타리를 둘러싼 사람들로 이미 차단된 상태.
이게 뭔일인가! 하고 검색했던 블로그 살펴보니 2007년. -_-;;;
당장 식당을 나와 '휴게소'급 카페테리아에서 떡볶이로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택시 타러 주차장 쪽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택시는 없었다. 콜택시를 불러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현수가 히치를 해보잖다.
'젊은 연인이 탄 경차'를 공략해야 한다며 나름 전략까지 세워놓았다.
용기있는 현수의 시도로 우린 '젊은 연인의 마티즈'에 얻어타고 겨우 부암동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 다짐했다. 내 생에 두번 다시 여기 올 일이 없으리. ;;;;

다행히도 우리가 내린 부암동 또한 맛집과 분위기 있는 카페가 즐비한 곳이다. 위에서 언급한 오소희 작가가 과천으로 내려가기 전에 어린 중빈과 살았던 곳이 이 동네이다. 작년에 유진과 이 곳을 산책하면서 산을 끼고 늘어선 고급 주택들을 부럽게 바라보았었다. 도시에서는 자연을 품는 것 또한 경쟁이다.
차도 옆 도로를 따라 주욱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가게로 무작정 들어갔다. 이름은 <mama's kitchen>.
매콤한 스파케티와 달콤한 고구마 피자를 시켰는데 궁함이 최고였다. 특히나 고구마피자는 고구마, 아몬드, 피자치즈를 피자 도우 위에 얹고 한 겹 덮은 빵 형태라서 색달랐는데 맛 또한 좋았다.

기념일의 데이트를 마치고 깜깜한 밤에 윤우가 없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께 전화해보니 엄마, 아빠는 어디갔냐고 몇 번 불어보더니 더 이상 많이 찾지도 않고 잘 놀고 잘 잠이 들었다고 했다.
윤우가 없는 안방에서 오랫만에 둘이 잠들고 둘이 깨어났다.

사실 윤우가 없는 공간이 '조금' 허전하긴 했지만, 많이 어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많이 즐겁지도 않았다.
너무나 덤.덤.했다.
나는 많이 즐거울 거라고, 그리고 또한 많이 아쉬울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윤우가 없는 둘만의 데이트로 뛸 듯이 즐겁다가도 윤우가 없는 빈 자리가 맘에 걸려서 계속 윤우가 아른거리고 결국엔 '그래, 우리는 역시 셋이어야 해!' 라고 깨닫는, 아름답고 훈훈한 결말을 예상했던 거다.

낙엽 지는 가을길을 산책하면서 이제까지 우리가 함께 해 온 날들을 반추해보고, 서로에게 감사하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따스하게 함께 그려보는 결혼기념일을 생각했지만, 우리가 그린 미래는 '어느 지역 전세가 얼마라더라.'라는 지극히 '아등바등한' 현실이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예상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앞으로 맞이할 우리 가족의 미래도 또한 그럴 것이다. 때로는 기대 이상, 때로는 기대 이하, 그리고 대부분 덤.덤.하게.
그래도 알고는 있다. 평온한 하루하루를 덤덤하게 맞이하고 또한 보낼 수 있는 것만큼의 행복도 없으리란 것을. ^^

:: 효자동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