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2019년 한 해 돌아보기 본문
2019년을 시작하며 내가 한 다짐의 큰 주제는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기'였다. 책을 더 이상 사지 않고, 모임도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더랬다. 그런데 이런 다짐은 한 달을 겨우 채우고 무너졌다. 2020년이면 둘째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그러면 다시 내 시간은 턱없이 줄어들 거라는 초조함이 새해 다짐과 무색하게 2019년을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_-;;;
상반기에는 여러 개의 책모임과 학교 일을 함께 하며 정말 바쁜 날을 보냈는데, 그러다가 결국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끙끙 앓아누웠다. 그래서 하반기에는 책모임에만 집중하고 학교 일은 잠시 손을 놓았다. 모임준비와 모임 모임후기 작성을 중심으로 내 일과를 계획했고 일정한 리듬 안에서 생활하고자 노력했다. 외부일정이 없이 집에 있는 날이더라도 그 날이 모임을 위한 준비나 후기작성을 위한 시간으로 비워둔 날이라면 다른 일정을 만들지 않았다. '나는 평일 4시까지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 스스로 하려했다.
1. 모임 기획하고 진행
무려 8개의 모임을 기획하거나 진행했는데, 이 모두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1) [존재를 향한 태도] 모임
"모두가 존중받는 정의사회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기획된 모임.
아이들은 학대당하고, 청년들은 위험한 일터로 내몰리며, 여성들은 언제 어디서든 성적 대상화되고, 소수자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지내는 지금 이 시대에, 그렇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얻은 키워드는 '틈을 허락하는 느슨한 연대'
이상과 현실 사이의 비통함이라는 긴장을 끌어안고 적당한 거리감을 지키며 서로를 경험하는 과정과 그렇게 서로를 겪으며 건강한 경계를 만드는 경험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2) [페미니즘 만나기 + 더하기] 모임
비통함이라는 큰 간극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 직시하고 있는 것들이다. 궁금하긴 한데 왠지 주저된다면 함께 가만히, 차근차근 다가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모임이 [페미니즘 만나기]였다.
모임에서 얻은 키워드는 '내 삶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스스로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존중하기'
문제를 알아채는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나만의 길을 찾는 모호함을 견디는 것, 여성들 사이에서 공감의 연대를 이루며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길이라는 것이었다.
[페미니즘 더하기]는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여러 전문 분야에 페미니즘이라는 안경이 씌워진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모임이었다.
모임에서 얻은 키워드들 : '직관을 믿어라', '스스로 권위를 부여하라',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힘에 의지하라'
진화적으로 종교적 근간으로 신화적 원형으로 살펴보았을 때 '너는 원래 강인했다'는 메세지의 폭격이 주는 뜨거운 위로와 응원을 느꼈다.
3) [꿈의 속삭임] 모임
어떻게 나를 믿을 수 있을까? 의식을 깨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의식이 이미 가부장제 질서 안에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의 지혜를 빌려서 우리가 변화해야 할 지점을 알아본다면 어떨까? 꿈을 무의식이 전하는 메세지로 바라보며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에서 찾은 키워드는 '우리 안에 묵직한 방향추가 있다는 든든한 믿음'
우리 안에 균형에 이르고자 하는 힘이 있고 꿈은 이런 균형을 위해 우리가 의식으로 끌어올려야 할 것들을 극적인 영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경험했던 모임.
4)[내 안의 여신찾기] 4기 모임
나를 제대로 세우고 중심을 잡고 나아가라는 것이 꿈의 메세지라면 지금의 나를 알고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난 무엇을 해야할까?
몸과 질병을 대했던 태도를 돌아보며 우리 인생 중 치유하고 보듬어야 할 부분을 생각해보고 우리 내면의 여신을 원형을 살펴보고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분명히 알고 받아들이는 작업을 했다.
모임에서 찾은 키워드는 '하강을 통한 상승'. 흘려보내야 할 것을 벗고 내가 원하는 내가 되는 길의 쓸쓸한 아픔이 새로웠다.
5)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
밸류가든 신은희 대표님께서 서초구에서 지원받아 진행하는 '여성주의 문화예술 아카데미'를 기획하시며 '책읽기'모임의 기획과 진행을 맡겨주셨다. 매번 내가 혼자 모임을 기획하고 꾸려왔는데,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역할을 맡고 보수까지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매우 의미있었던 경험이었다.
▶ [글로 만나는 여성의 삶, 나의 삶] 모임후기 보기
6) [젠더 이슈 오픈테이블]
밴류가든의 '여성주의문화예술아카데미'의 한 꼭지. 기획에 일부 참여하고 진행을 맡았다. 이제까지 내가 꾸렸던 모임은 30~40대 기혼여성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번 모임에서는 다양한 세대를 만나서 '여성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모임내용을 녹음해서 나중에 정리하는 과정이 주는 깨달음도 있었다. 내가 이런 단어를 많이 쓰는구나, 모임진행을 이렇게 하는구나, 하는 걸 객곽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귀한 기회였다.
7) [삶의 무늬들] 모임
내가 꿈꾸고 그려왔던 모임. 임신중절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을 시작했다. 임신중절이라고 하면 선택이기에 아픔,고통, 치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각각의 사연들 속에 소리쳐울지도 슬퍼하지도 못하는 아픔들이 있다. 그 일이, 그 생명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남긴 삶의 무늬들에 대해 안전하게 이야기하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려고 한다.
이런 모임들은 나의 욕구와 현실의 삶과의 간극에서 오는 긴장을 풀기 위한 노력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질문을 품고 함께 읽고 머물면서 깨닫고 다시 새로 솟아나는 질문들과 마주했다. 질문하는 인간을 넘어 행동하는 인간으로 나아가보자.
2. 블로그 게시물 검열 사건
[내 안의 여신찾기] 후기를 쓰는 과정에서 삽입한 그림이 다음카카오로부터 청소년유해물로 검열당해 게시물이 비공개처리되는 일을 겪었다. 페미니즘 모임을 하면서 말로만 나누던 그런 상황을 직접 겪게 된 것. 이를 해결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노력을 했고 이것은 나에게 또 다른 귀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3. 발도르프에 대해 달라진 나의 태도
첫째 학교에서 교육위로 일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발도르프 교육 철학에 대한 애매모호함을 조금은 덜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한 취지에서 [일상에서 만나는 발도르프]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주 1회씩 모여 한가지 색을 정해서 이야기나누고 습식수채화로 그려보는 작업이 생각보다 울림이 커서 놀라웠다. 역시 몸으로의 경험을 따라갈 수 있는 건 없나보다.
그런데 하반기에는 내 모임 위주로 스케줄을 짜면서 교육위의 모임에는 참여하지를 못했다. 게다가 점점 발도르프 철학이 나와는 거리가 있다고 여겨져서 교육위를 나와 내 성향과 맞는 다른 소위에 들어가는게 좋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화두를 잡고 있던 나에게 데부스 선생님의 강연록이 벼락같은 충격을 주었고 이후 선생님의 강연록을 추가로 찾아보고 기록을 뒤져보면서 점점 발도르프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2020년은 좀 더 발도르프에게 다가가게 될 듯 하다.
4. 영성과 서클
박성용 목사님이 진행하시는 요한복음 영성 워크샵에 참석했다. 나에게 맞는 종교공동체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했는데, 다른 곳에서 정보가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질문해서 찾아낸 과정이었다는 게 의미는 것 같다. 게다가 그 모임 안에서 내가 발견한 건 내가 놓으려 애써온 그것이 사실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중심에너지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걸 쉽게 놓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변화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고 아주 오래 걸릴 꺼라는 이야기. 이런 한계를 알게 된 게 슬프기도 하지만 나를 더 보듬게 된 기회가 되기도 했다.
2019년에는 회복적 서클 워크샵과 연습모임에도 계속 참여해왔는데, 2020년에는 학교 평화위 모임에 소속되어서 관련 일을 해나갈 것 같다. 서클과의 연결은 놓치지 말아야지.
5. 아이들은 자란다
순간이 귀하다는 걸 매번 깨닫는 나날들.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점점 시간이 아까워진다. 2019년에 아이들과 나만의 여행을 두 번 갔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모두 속초였다.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얼마남지 않은 아이들의 유년 시간을 정말 소중하게 느끼고 살아야겠다. 이솔이 생일책을 만들어주며 이솔이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존재인지 오래오래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를 기쁨으로 물들이는 아이. 이솔이의 말 한마디, 행동, 미소 하나하나가 나에게 기쁨이다. 윤우는 항상 우리를 성장시킨다. 윤우를 보며 많이 배운다. 평범함의 행복, 그리고 그 평범함도 사실 평범함이 아님을, 모두가 다 다르게 반짝이는 삶임을. 아이들이 건강하고 우리 옆에서 웃는다. 그걸로 완벽하다.
6. 귀한 인연들과의 만남
박정은 수녀님 강연을 들었을 때 만난 가톨릭 페미니스트들과의 만남을 가늘고 길게 그리고 기쁘게 이어오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만난 타라님과도 만남을 가졌다.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손잡고 기쁘고 충만할 수 있는 2020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깨달음들과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이 부딪혀 아프면서도 뭔가 점점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2019년이었다. 2020년은 내 한계를 보듬고 위로하고 사이사이 기뻐하는 한 해가 되길.
'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 > 하루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2018년 - 다양한 경험과 만남 그리고 깨달음 (0) | 2019.01.19 |
---|---|
고양이가 우리 집에! 나는 흔들릴 준비를 한다. (2) | 2019.01.15 |
2018년 7월月記 (0) | 2018.08.13 |
2018년 5~6월月記 (2) | 2018.07.11 |
2018년 4월 月記 (0) | 2018.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