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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18년 : 존재로서의 독립, 그 여정에서

고래의노래 2019. 1. 12. 23:41

존재로서의 독립, 그 여정에서

 

윤주애 : 여성, 영성, 꿈, 자기실현을 키워드로 품고, 읽고 쓰고 그리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하는 대안문화공간인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2017년부터 여성들의 내면여행 모임인 <내 안의 여신찾기>를 진행중입니다. http://whalesong.tistory.com/

 

 2018년은 나에게 새로운 시도가 봇물처럼 넘쳐흐르던 한 해였다. 서울시 성평등정책제안 활동가로 일했고 신입 NGO 여성활동가 리더십 프로그램을 수료했으며 마을에서 여인극단 활동을 통해 연극을 올리기도 했다. 심지어 임신한 길냥이를 구조해서 기르게 된 것도 2018년이다. 이 활동들과 변화가 모두 아주 큰 의미였지만 이렇게 많은 시도를 해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결국 하나의 시도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하나의 시도’가 나에게 주었던 힘과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을 시작하기까지

 

 흔히 ‘경력단절’이라고 이야기하는 ‘공식적인 돈벌이 없는 엄마, 아내’로서의 10년을 통과하며 누군가와의 관계로부터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 자체로 스스로를 확인하고픈 욕구가 내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즈음 개인적으로 큰 사건이 닥쳤고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었다고 할 수 있을 시간들을 지나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해져서 휘청거리고 있을 때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읽는 책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모임을 통해 매우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저 개인사라고만 생각했던 아픔이 단지 나만의 경험이 아닌 이 세상 여성들의 경험이라는 것과 그것이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함께 읽고 이야기하고 쓰며 나의 삶을 설명하는 나만의 언어를 갖는 것은 뿌리가 다시 세워지는 듯한 근원적인 힘이었다. 이렇게 페미니즘을 알아가면서 인생의 늪을 헤쳐나갈 힘을 얻게 되었다.
 나는 이 치유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강한 욕구가 생겼다. 특히나 그것이 여성들의 모임이어서 내가 받은 위로와 힘이 컸기에 여성들이 모여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존재의 힘을 다져가는 모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세울 것 하나 없이 뜨겁고 극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하나로 판을 벌이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내 이야기를 들은 ‘냇물아 흘러흘러’의 공간지기님이 ‘무엇이든 이 곳에서 원하는 것을 해보라’며 적극 지원해주셔서 <내 안의 여신찾기> 라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여성의 삶과 건강, 내면을 다룬 몇 권의 여성주의 책을 3달 동안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기대보다 더 짜릿하고 뜨거운 경험이었다. 12주간 매주 한번씩 만나며 여성의 인생주기에 따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나누었는데, 따뜻한 위안, 새로운 깨달음 그리고 변화로의 용기까지 얻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현재 3기까지 모임이 진행되었다. 2017년이 새롭게 일을 시작하며 뿌리내리는 시간이었다면 2018년은 가지들이 뻗어나간 시간이었다. 그리고 뿌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와 일’에 대한 새로운 고민과 생각거리가 생긴 것이다.

 

 

일과 나, 그 사이의 고민들

 

 첫 번째로 내가 고민했던 점은 ‘돈’에 관한 것이었다. <내 안의 여신찾기>는 모임비를 받는 유료 모임이다. 우리는 보통 사회적으로 공인된 어떠한 자격을 믿고 거기에 돈을 지불하고는 한다. 그런데 나는 석사도, 박사도, 상담 전문가도 아니고 단지 먼저 책들을 읽고 모임 안에서 치유를 경험한 사람일 뿐이었다. 개인적 경험도 우리가 돈을 지불할만한 가치인걸까? 돈을 번다는 것은 어떠한 자격이 필요한 것일까? 돈은 우리가 무엇을 대신해 치르는 비용일까? 등등 모임비를 받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서 주어진 자격이 경제적 가치에 대한 유일하고 견고한 기준이라는 틀을 깨는 것이 나 스스로도 큰 숙제였다. 2시간의 모임을 위해 나의 의식은 내내 모임을 향해 있었다. 한주간 읽을 분량에 대한 생각거리를 모임벗들과 공유한 후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여 후기로 올렸다. 그리고 또 다시 다음 주 생각거리를 위해 온갖 정보들을 찾고 두뇌를 풀가동시켰다. 이렇게 일주일 동안 고민하고 생각하며 애쓰지만 거기에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이었다. 전문가는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지, 인생의 경험이란 것은 과연 전문적이지 않은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인정받는 가치의 기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가치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고민은 ‘모임을 열었는데 아무도 신청을 안 하면 어쩌지?’하는 두려움이었다. 모임신청이 더디거나 반응이 없으면 ‘내가 만든 모임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뭐가 문제일까?’하며 조급해졌다. 모임에 대한 반응이 나에 대한 평가인 것처럼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조금 멀리 떨어져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때 그 순간 만나지는 인연이 없다면 모임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것은 쉬어가야 할 시기라거나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의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과가 어떻든 그에 따라 방향을 정해서 나아가면 그 뿐, ‘나쁜’결과라는 판단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모임에 대한 인기가 ‘나’를 판단하는 잣대일 수도 없는 것이다.
 앞서 두 고민이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것이었다면 세 번째는 다른 차원의 깨달음이었다. 모임이 진행되면서 모임벗들의 성장과 변화가 눈에 보였는데 이것이 꼭 ‘나’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인 양 생각되는 것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이 모임이 비록 ‘나’에게서 시작된 시도였지만 모임 안에서 일어나는 모임벗들 사이의 연대감과 모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배려, 존중, 격려, 포용의 힘은 ‘우리’의 힘이었지,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임을 진행하며 느끼게 되는 고양감과 자만심을 가라앉히는 작업이 필요했다. 이렇게 3번의 여신모임을 진행한 1년 반의 시간은 성취감이나 보람같은 긍정적인 자기판단을 넘어 나를 새롭게 바라보고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일을 계속하면서 오히려 일과 나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기는 것을 느꼈다.

 

 

확장의 기쁨과 관계의 함정을 넘어서

 

 세상에 없던 방식으로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다. 기존의 방식이나 틀이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했고 그 일 안에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세워갔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토대로 2018년에 페미니즘 관련 활동과 공부를 연이어 할 수 있었고 이 경험들이 또 다른 가지로 뻗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2018년 연말에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새롭게 자신의 일을 실험한 여성들의 이야기 자리였던 <일 벌인 여자들> 간담회에 참석했다. ‘냇물 모임지기들의 창직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던 이 자리에서 엄마와 아내라는 ‘관계의 터널’을 지나 나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 일을 시작하고 일과 나의 관계를 정의내리는 과정 속에서 공통적으로 이야기되는 몇 가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이기 때문에 경험한 고립, 좌절, 희열 등 모든 것들이 시작점이자 힘이었다는 것, 전문가가 아닌 내가 가진 장점이 있으며, 모임을 준비하는 나의 노력과 그 시간에 같이 희생해준 가족들에게 대한 보상으로라도 돈을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 일을 할수록 고립된 점들과 서로서로 연결되면서 내 세상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느낌이 좋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새로운 도전 앞에서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내딛으면 이렇게 우리는 나 자신이 넓고 크게 확장되는 기쁨을 느끼게 된다.
 2018년에 ‘일과 나의 관계’속에서 나는 그 확장의 기쁨과 함께 ‘관계의 함정’ 또한 느낄 수 있었다. 간담회에서 나온 공통적인 이야기 중에 혼란스러워도 계속 해나가는 꾸준함이 주는 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것은 꾸준히 하면 다른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는 확장의 의미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는 힘과의 연결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요즈음에는 비전문가도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공간과 채널이 많다. 시작을 위해 필요한 것은 틀을 깨는 작은 용기뿐이다. 조심스레 통과해야 하는 난관은 오히려 시작 그 이후일 수 있다. 결국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 절실했던 이유는 관계 속에서 정의되는 나를 벗고‘스스로 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일과의 ‘관계’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는 말아야겠다. 일로 얻어지는 평가과 성취감이 나를 판단내릴 수 없게 말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아갈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그렇게 알아간 나의 욕구대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이다. 그야말로 온전한 존재로서의 독립말이다. 나는 아직 그 여정에 있다. 새해에도 꾸준함과 새로움 속에서 좀 더 성장할 수 있길.

 

<일 벌인 여자들> 간담회에서 발표하는 모습

 

<일벌인 여자들> 간담회에서 박숙영님, 김학민님과 함께

‘냇물 모임지기들의 창직 이야기’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내 안의 여신찾기> 1기, 2기 모임기록집.

모임이 마무리되면 12주간의 모임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 3기 모임집은 제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