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2018년 1월의 月記 본문
1. 저글러스 드라마를 통해 본 나
12월 말부터 저글러스라는 로코 드라마에 빠졌었다. 이러한 감정적 몰입은 응팔이후 근 2년만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일상을 장악하는 이 감정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드라마 내용은 그닥 새로운 것은 없었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은 차가운 남자상사를 따뜻하고 발랄한 여자비서가 보필하면서 치유해주고 결국 사랑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드라마는 여자 비서, 남자 상사라는 구조 안에서 남녀 성역할 구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묘하게 피해간다. 여자주인공을 놓고 벌이는 술내기에서 남자주인공이 "누구와 함께 일할지는 그 여자의 결정이지, 우리가 술자리에서 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는가 하면 여주인공에게 치근덕거리는 남자를 떼어내준 후 혹시 그 남자에게 어떤 여지를 준 것 아니냐고 했던 말에 대해 남자주인공이 "그런 말을 해서 미안했다."며 사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적인 상황에서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난다던가, 불편한 상황을 종결시키는 방법으로 여자의 손을 잡고 강압적으로 끌고 나간다던가 하면서 남자주인공은 전형적인 문제해결사로 그려진다.
이 드라마에 빠져들면서도 내가 불편했던 것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여성이 바라는 온갖 판타지를 드러내놓고 충족시켜주는 드라마의 방정식을 머리로는 인지하면서도 감정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이 계획한 굴레에 빨려들어가 내 일상이 흐트러진다는 것이 불쾌했다. 내가 스스로의 통제 아래 있지 않은 느낌이었다. 강남순 교수님의 강의 때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교수님께서는 그래서 우리가 더 의식적일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나는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고 또 영향을 주기도 하니 사회적 의식의 변화를 위해서 우리가 끊임없이 지적을 하고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면 이런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걸까? 죄책감 속에 무시해야 하는걸까? 드라마라는 한 시간 동안의 환상에 빠지며 행복감을 느끼는게 그렇게 잘못된 일일까? 나는 죄책감에 빠져 나를 채찍질하고 비난하고 싶지 않았다. 안그래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 대신 이런 감정을 옳고그름의 영역에서 건져올려 하나의 신호로 해석해보기로 했다. 융이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감정과 경험이 나를 자기실현의 길로 이끄는 무의식의 인도라면 분명히 무언가 메세지가 있을테니까.
드라마에 빠지는 내 감정에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냉정하고 불친절하지만 능력있는 츤데레 남자 캐릭터에 빠져든다는 것. 특히나 이 드라마에서 최다니엘 캐릭터는 큰 키에 수트, 안경, 차가움 가운데 깊이 자리잡은 인간애 등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의 종합세트같은 역할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서태지를 좋아했었던 것처럼 그 사람과의 사랑을 꿈꾸기보다는 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는 거였다. 내 성정체성의 문제인가도 잠시 생각할만큼 사실 그건 꽤나 평범하지 않은,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감정이었다. 이성에게 느끼는 강렬한 감정이 내 안의 아니무스에 대한 투사라면, 내가 그런 캐릭터에서 '나의 것'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했고 '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자기중심과 흔들림없는 자기신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내가 관계에 취약하고 그래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그래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도 '관계초월'의 상태를 갈구하는 일기들을 써댔으니까. 다만 다시 한번 강렬히 확인했다. 나는 그렇게 내면이 단단한 인간이길 바랐다. 뼈에 사무치게!
2. 여걸모임
여신모임 후속 모임이 동아리 형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1월달 책으로 정한 것은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치유모임에서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와 융의 분석심리학 책을 읽은 후 그 모두가 융합된 이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흥분을 했었던지! 하지만 그 때는 함께 읽지는 못했고, 나중에 혼자서 읽었을 때는 이 책의 은유적 표현들이 너무나 모호하여 저자의 이야기가 저자의 열정만큼 뜨겁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사이 내가 변한건지 아니면 함께 읽기의 힘인지, 모호해서 어려웠던 이 책의 내용을 나 스스로의 언어로 정리할 힘이 생겼고 그렇게 정리를 하자, 많은 것들이 명확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 임신을 원했던 이유, 내면의 불덩이를 어쩌지 못해 허덕댔던 나의 상태와 화산만 보면 뛰었던 내 심장이 모두 설명되는 느낌. 나는 타자, 자연, 우주과의 교감와 일치 안에서 경험하는 충만함을 계속 쫓고 있었다. 그것은 내 안의 야성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기도 했다. 내 안의 야성적 여인, 여걸은 끊임없이 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내면의 여걸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창조적인 시간을 마련하고 이를 꿋꿋히 실천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창조적 실천력인 아니무스를 깨우는 길이라는 것이다. 생각만 많고 실천하지 못했던, 또 마무리짓지 못했던 모든 일들이 내 아니무스가 약해서 그랬던 거라면, 또 츤데레 남자주인공들에 빠지는 나의 감정이 그러한 단단함을 찾고 싶은 내 아니무스의 갈급함이라면 나는 무언가 시작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아래처럼 새로운 시도들을 하게 되었다.
3. 그림스타그램과 기타 시작!
한 달 내내 나는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마치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감정으로 돌아간 듯 했다. 그 때 내가 좋아했던 그림그리기에 다시 몰입했고 그 당시 내가 상처주었던 사람들, 그 때의 내 어이없던 행동들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유의 발라드를 새벽까지 몇시간동안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직업을 갖지 못할 것이 확실해졌던 2004년 이후 나는 그림을 거의 그리지 못했다. 백지 앞에서도 무엇을 그릴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사이 마치 토해내듯 그림을 그려댔다. 처음에는 드라마와 관련된 그림들을 그렸다. 그걸 저글러스 갤러리에 올려보니 반응이 좋았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게 주는 칭찬과 긍정적인 반응들에 힘을 얻었다. 나를 인정해줄 사람들을 곁에 두라는 <늑대~>책에 나온 말은 그 힘으로 끈기있게 무언가를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그림들을 다시 인스타에 올리면서 아예 인스타를 기존 사진들을 모두 지우고 그림들만 올리는 그림스타그램으로 만들기로 했다. 모르는 사람들의 좋아요를 받을 때마다 힘이 생긴다. 올 한 해 꾸준히 올려보자. 꾸준함 속에서 나의 그림 안에서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상들이 명확히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드디어 기타를 시도해본다! 희수아버님의 재능기부로 시작되는 기타수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모두 아버님들인데 나만 여자라서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기타라는 악기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4. 윤우랑의 수요일 데이트
2학기때는 하지 못했던 윤우와의 데이트를 방학 기간동안 다시 해보려한다. 스크랩해두었던 '아이랑 갈만한 나들이 장소' 목록을 참고해서 여기저기 나들이를 다니고 있다. 12월 마지막주에 시작했는데 그 때는 전쟁기념관의 다빈치전시를 보고 왔고, 두번째로는 하남 스타필드에서 점심먹고 여러 자동차 전시장을 구경한 후에 양평의 구하우스라는 갤러리 구경을 다녀왔다. 세번째 데이트 때는 이솔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부려서 이솔이까지 합류하여 광화문 나들이를 했다. 점심 때 도착해서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대림미술관 전시를 관람하고 컴백. 항상 무언가 이벤트성 나들이를 계획하는 것이 부담되기도 하지만, 윤우가 그러한 이벤트가 없으면 지루해하기도 하고 나도 그런 나들이를 좋아하니 상부상조인듯 하다.
아직도 엄마랑 자고 싶어하고 사랑한다 고백을 쏟아놓는 11살. 자기를 약올리고 놀리는 동생이 밉고 근데 동생을 구슬려서 잘 다룰 요령은 부족하니 요즈음 윤우 마음은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듯 급하고 억울하다. 누구 하나 이 악순환의 구조를 깼으면 하는 바람으로 자꾸 윤우를 다그쳐 보지만 말이 먹힐 리가 없고.
퍼부어주는 사랑에 흠뻑 젖은 후에야 사랑을 주는 것도 가능해지겠지. 그래서 만든 데이트 시간이지만, '사랑의 시간'이 되고 이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이 사랑을 줄 마지막 시기인 것 같긴 한데.. 데이트는 윤우가 몇살 때까지 가능하려나?
5. 이솔이에게 쏟아지는 화! 까칠해진 이솔이
이리 오라고 했을 때 둘째는 한 번에 오는 적이 없다.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핑계거리를 만드는데 나는 점점 경직되다 결국은 폭발하고 만다. 폭발하면 울면서 쭈뼛거리지만, '잘못했어요, 안그럴께요.'가 아니라 그냥 자기 욕구를 뱉어내며 우는 것이다. 이것까지도 나를 건드린다. 밤에 잘 때 아직까지 나를 찾으며 깨서 우는 것도 이제 지겹고 지친다. 언제까지 1분 대기조가 되어 저녁에 샤워조차 마음껏 못하는 생활을 해야만 하는건지!
소연언니는 남편과 사이가 좋아지니 이제 아이들에게 감정이 흘러서 그런 것 같다는데, 글쎄 모르겠다. 수련의 영향일까? 내 안의 무언가를 배출할 필요가 있어서? 어쨋든 둘째는 또 다른 방면으로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
얄밉고 예쁜 녀석.
2. 남색또와의 여행
둘째주에는 성훈네, 우혁이네, 효우네랑 2박 3일로 원주여행을 다녀왔다. 독채를 빌려서 마트 음식들로 먹고 마시고 아이들은 이리저리 뛰놀고. 둘째들 특히 이솔이 때문에 이리저리 불리는 건 여전하긴 했지만, 좋은 사람들과의 힐링 여행~ 방학때마다 오기로 약속했다. 출렁다리 건너러 갔다가 다리 아직 개장 안했다고 해서 실망했는데, 눈썰매 탈 수 있는 언덕길을 발견해서 신나게 눈썰매타고 꽁꽁 언 강가로 내려다 다시 한 번 썰매타고.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즐거운 여행이었을듯 하다. 남색또라는 인연 핑계로 만남지 2년째인건가. 이 사람들 없었으면 학교 생활 내내 외로워서 어찌했을까.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나도 그렇게 그들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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