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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여신의 스틸레토

고래의노래 2018. 2. 12. 13:35

 무엇이든간에 갇혀있던 틀을 깨는 건 해방감을 준다. 깨진 그 틀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면 더욱.


 며칠 전 하이힐을 샀다. 나는 일년도 전부터 더 늦기 전에 하이힐을 신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하고 있었다. 내 안의 불덩이를 느끼던 그 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하이힐 리스트만 보고 결정하지 못한 채 1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런데 이번 생일에는 꼭 사야겠다 마음먹고 백화점을 돌다가 전격 결정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는 말은 진실이다. 나는 '지금' 이 신발이 필요했다.

나는 내가 중독되어 있던 틀이 어떤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는데 내가 나의 여성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남자와 여자라는 이분법의 틀 안에서 나를 잘 포개어 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20대에 나는 하이힐을 한번도 신지 못했다. 키가 너무 커져서 남자들이 나를 연애의 대상으로 보지 않을 것을 염려한 것이다.

 하이힐은 일반적으로 예쁜 모습을 위해서 내 몸의 자연스러움을 거부한다는 의미이거나, 보수적인 회사 내에서 여사원 복장 규정에 포함되어 사회가 바라는 여성성이라는 것을 억압적으로 보여주는 상징같은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하이힐은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그것은 '여자는 남자보다 작아야한다.'는 내 안의 틀을 깨고 스스로의 욕구에 충실하겠다는 뜻인 것이다. 하이힐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내 욕구를 가두었던 억압의 상징이었다.  

 여걸모임의 한 모임벗이 이야기한 것처럼 저건 그냥 신발이 아니다. 

'여신의 스틸레토'이다.


 언젠가 이 신발을 거부하고 신발장 맨 위에 올려놓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하이힐이 내 삶에서 다른 상징이 되는 순간이겠지.

나의 삶이라는 서사 안에서 나만의 상징을 알아가고 그것을 깨거나 만들어가는 작업을 이제 해나가려 한다.

여신의 스틸레토를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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