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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나의 2017

고래의노래 2018. 1. 16. 12:50

학교 편집위의 요청으로 학교 소식지에 실릴 나의 한 해 이야기를 썼다. 



* 내 안의 여신을 찾아 헤맸던 2017년


 나의 2017년을 숫자로 표현한다면, ‘10’이다. 결혼 10주년, 엄마 10년차, 전업주부 10년째. 결혼 후 얼마 안 있어 첫째 아이를 임신했고, 임신 후 심한 알러지 증상으로 바로 퇴사를 했으니 저 10년들은 또 하나의 10년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 ‘경력단절 10년’. 능력이나 가능성으로 평가받던 시기를 지나 아내와 엄마라는 ‘관계’ 안에서 나를 정의내리던 시간들. 결혼,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인생 챕터들을 누구나 그렇듯 때로는 힘겹게, 때로는 기쁘게 넘겨왔고 그 과정 속에서 마치 내가 사라져버리는 듯한 불안도 느꼈다. 하지만 그 10년을 후회하지도, 되돌리고 싶지도 않다. 그 때 그 순간의 경험이 없었다면 맞춰지지 않는 퍼즐이 지금의 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되자 나는 변화가 목말라졌다. 누군가의 관계 속에서가 아니라 나 혼자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변화말이다. 그것은 흔히 40 즈음에 발현된다는 중년의 사춘기, 아마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바래왔지만 한번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온갖 꿈과 욕망들이 내 안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식과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직접 그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도 보았지만 계속 확인되는 것은 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내야 한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그 답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해보기로 했다. 관계의 10년이 나에게 건네준 혼돈을 헤집으며 곰곰히 돌아보니 내 삶이 나에게 준 기쁨과 한계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바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의식하든 하지 않았든 이미 세상은 나를 인간 자체보다는 '여성'으로서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의 틀에서 내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 선명하게 인식되자 여성의 삶이라는 필터로 나를 해석해보고 싶어졌다. 또한 디폴트 인간을 암묵적으로 남성으로 세팅한 채 인간의 삶과 심리를 설명한 많은 심리이론과 철학에게서 이미 허망함을 느껴봤기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의 내면에 다가가고 싶기도 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 주어진 상황과 내면의 욕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건 분명 나뿐만은 아닐꺼라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점점이 흩어진 그 고민들이 함께 모인다면 문제가 좀 더 시원하게 풀릴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누구의 판단을 걱정할 필요없이 내 삶을 툭 터놓을 수 있는 안전한 여성들의 모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내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모임을 통과하며 깨닫게 되길 바라며 모임 이름을 <여성의 자아찾기, 내 안의 여신찾기>로 짓고 모임의 방식과 기간, 활동 내용들을 구상하고 점차 구체화시켰다. 


 여성의 삶과 건강, 내면을 다룬 3권의 책을 3달동안 함께 읽고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모임을 기획했다. 장소는 서울 세곡동의 ‘냇물아 흘러흘러’라는 대안문화공간이었다. 모임공지를 올리자 6분이 신청해주셨다. 그렇게 6명의 모임벗들과 함께 3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생각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같이 울고 웃고 깨달아갔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돌아보고,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읽으면서 내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한 나만의 역사를 알아갔으며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로부터 내 안의 여신 원형을 발견하면서 결국 나라는 사람에 대해 12주 동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막상 겁없이 시작하기는 했지만 심리전문가도 아닌 내가 모임지기를 한다는 것의 의미와 역할을 스스로 찾기 위해 모임 내내 매우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주제를 잡고 구성을 기획하고 매주 빠짐없이 나와 원활한 진행을 위한 도움역할을 했지만 나도 여신을 찾아야 하는 (^^;) 구성원 중 한 명이었다. 모임지기로서 내가 갖는 이런 한계에 대해 미리 모임공지에서 이야기하였지만 모임에 참여하는 것과 모임을 꾸리고 진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책임감이었다. 나의 의식은 내내 여신모임을 향해 있었으며 한주간 읽을 분량에 대한 생각거리를 모임벗들과 공유한 후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 나눈 이야기들을 다시 정리하여 후기로 올렸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주 생각거리를 위해 온갖 정보들을 찾고 두뇌를 풀가동시켰다. 


 ‘함께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힘은 그야말로 강렬했다. 책 내용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속에서 책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사고의 방향이 다각도로 전개되는 것을 느꼈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 들으면서 모임벗들과 나는 스스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모임 내내 우리는 삶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중독되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했다. 바깥의 시선과 틀에 우리를 꾸역꾸역 끼워 맞추려다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부정하기까지 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리고 일반 심리 이론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의 모습이 하나의 기질로 설명되지 않아서 문제가 있다고 여겨왔는데, 시기, 상황, 상대방에 따라 달라졌던 그 모습들을 오히려 자연스러운 나 자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렇게 삶을 창조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자각할 수 있었다.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은 어둠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그 어둠의 크기나 깊이를 서로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부질없는 짓이다. 내 손끝의 가시가 나에게는 가장 큰 일이라는 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니까 말이다. 그러한 상처, 후회, 미련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모든 생이 참 아름답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더 반짝이는 건 그 불완전한 삶을 이제 품고 사랑하고 아끼겠다고 다짐하는 모임벗들이었다. 애초에 완벽한 인생은 없고 결핍은 필연이며, 그 결핍이 나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12주간의 모임은 마무리되었고 나는 여전히 모임 전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내 안의 여신을 찾는다’는 거창해 보였던 모임의 목표는 완성되지 않은 채 진행중이다. 그것은 애초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라는 신화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선언이고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겠다는 다짐 안에 있었으리라. 생애 주기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있다. 때로 엄마라는 역할 속에서 나 자신을 내려놓는 선택을 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되었다. 그 혼란스러움마저도 우리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며, 완벽한 당당함이라는 모습 안에 나 자신을 가둘 것이 아니라 두려움마저 껴안는 온전한 배려 속에 나 자신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2017년이라는 내 인생의 퍼즐 한 조각이 또 이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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