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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2017년 12월의 月記

고래의노래 2017. 12. 12. 13:47

2017 한 해가 지나갔다. 여러 모임에서 올 한해를 돌아보며 정리하는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고, 희순언니의 요청으로 학교 소식지에 올 한 해에 대한 글도 썼다. 그래도 블로그에 마지막 월기를 써야 확실하게 마무리가 될 터인데, 다른 데에 온통 정신을 뺏기고 있어서 계속 정리가 늦어지고 있네. ;;; 이 이야기는 2018년 1월 월기에 다시.


1. 여신모임 마무리


 올 한 해 나에게 가장 큰 사건이었고 의미였던 여신모임이 12월 첫째주에 마무리되었다. 기대했던 만큼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게 진행하지 못해서 아쉬움은 남지만, 3개월 간 모임을 이끌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했던 경험은 고스란히 나에게 남아있을 것이기에 든든하기도 하다. 어떻게 이런 모임을 시작하게 됐냐고 많이 질문을 받는데, 모임진행을 결심하기까지의 상황이야 설명하려면 할 수 있겠지만, 비슷한 경험도, 전문지식도 없으면서 어디서 그런 용기와 (어찌보면)무모함이 가능했는지 그건 아직도 미스테리다. 밴드에 썼던 글들도 지금 다시 읽어보면 내가 쓴게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내 손을 통해 쓴 것만 같은 느낌이다. 


 모임관련하여 냇물 밴드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 작은 책으로 만들었다. 손으로 결과물이 만져지니 이 경험이 실재했었다는 느낌이 명확해지면서 참 뿌듯했다. 책이 제작된 것을 냇물밴드와 주변에 알리면서 팔고 있다. 밴드를 통해 모임진행을 지켜보셨던 분들이 책을 사주고 계신다. 


 이 모임을 진행하는 나를 궁금해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아 만난 분들도 있고 현주언니를 통해서 나를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 친구라는 관계로부터의 다가옴이 아니라 내가 한 일에 대한 호기심에서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준다는 게 오랫만이라 떨리고 두근거렸다. 


 3월에 다시 한 번 여신모임을 꾸리고 한 번 더 진행을 해볼 예정이다. 아마도 전체적인 구성은 비슷하게 갈 것 같고 한 번 모임을 진행하며 경험했던 아쉬움들만 조금 보완하려 한다. 다시 모임이 진행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어쨋든 내년도 화이팅. 



2. 결혼 10주년 이벤트


 결혼 10주년. 원래 결혼기념일은 10월이지만, 그 때에는 남편이 너무 바빴던지라 저녁식사만 간단히 했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가나 하던 차에 남색또한테서 10주년인데 지금 뭔가 안하면 기회놓친다는(ㅎㅎ)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시댁에 맡기고 우리끼리 1박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들의 추억이 대부분 만들어진 신촌과 캠퍼스를 거닐고 밤에는 광화문을 둘러본 뒤 광화문 호텔에서 1박하는 코스를 짰는데, 갑자기 급 98동기 톡이 활성화되고 동기모임이 추진되어서 호텔 1박은 취소. 


 신촌에서 내가 살았던 하숙집과 자취집을 둘러보았다. 하숙집은 그대로이고 자취집은 새 건물로 리모델링되어 있었다. 신촌과 캠퍼스야 말할 것도 없이 많이 바뀌었다. 추억을 소중하게 여기고 어찌보면 연연하기도 하는 나에게 나의 20대를 완전히 공유할 수 있는 남편이 있다는 건 참 행운이다. 

 저녁에는 강남으로 이동해서 98 동기들과 오랫만에 만났다. 모습은 조금 바뀌었지만..ㅎㅎ 캐릭터는 다들 어찌나 그대로인지. ㅋㅋ 술한잔 하고 나의 강력한 권유로 토토가 클럽을 가게 되었는데 나만 신나고 다들 어색해해서 미안했네. -ㅂ- 그래도 남편이랑 같이 클럽가는 소원이뤄서 좋았다. 헤어져서 집으로 와서 아이들 없는 집에서 밤에 둘이 있는데 새로웠다. 호텔 아니어도 낯선 기분이 가능하구나. ^^ 


 10년, 결혼한지 10년이나 되었다. 엄마가 된지도, 일을 그만둔 것도 10년이다.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뱃 속 아기를 보내기도 하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원가족에게서 떠나 나만의 가족을 이룬다는 건, 믿음으로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하고 피를 나눈 관계를 가진다는 건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극단의 경험을 하게 한다. 극도의 사랑, 책임감, 미움, 배신감.. 뭐든 가족이기에 더 깊게 느낀다. 그게 사람을 성장시키는 거겠지.

 올해를 기점으로 내 인생에서 남편을 모르던 날들과 남편을 알게 된 이후의 시간이 같아졌고, 이제부터 점점 더 늘어가게 된다. 20년동안 서로에게 주었던 상처와 사랑, 그리고 둘이 함께 또는 따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들까지..그 모든 것들이 모여 앞으로의 날들엔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이 되어가겠지. 20주년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내가 그리는 그 때의 우리 모습을 위해서 지금 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해보아야지.



3. 윤우와 이솔이 성장기록


 이제 만 5살이 된 이솔이는 윤우의 5살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숫자를 전혀 모르고, 글씨도 전혀 모른다. 그리고 모르는 것에 당당하다. 숫자 조금 알려주려고 하니 따라 쓰다가 잘 안되자., "이런거 몰라도 되!"라며 쿨하게 포기를. -ㅂ-;;; 눈치는 엄청 빠르고 새로운 말을 익히는 속도가 빨라서, 어떤 맥락 안에서 이 단어를 써야할지 정확히 캐치해서 똑같이 적용한다. 몸은 많은 단단해져서 높은 데서 점프를 시도하거나 사다리를 혼자 오르며 자랑스러워 하고, 조금 먼 거리도 함들다 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서운 것이 많다. 


 윤우는 여전히 성격 급하고 자동차 좋아하고 착하고 여리고 나를 좋아한다. 이제 4학년이 될 윤우. 이제 점점 나에게서 멀어지게 될테고 나를 절실히 원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지금 이 때가 윤우에게 내가 사랑을 퍼부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걸 잊지 말자.


 윤우와 이솔이가 보여주는 삐걱거리는 관계는 항상 나를 자극하는데, 형제자매 관계라는 건 원래 이렇게 매일 싸우는 거라며 위로하는 분들도 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형재자매도 있기에 답답하고 불안하다. 이대로 저 아이들의 관계가 고착화되는 건 아닐까. 관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분명 나를 통해서 배우고 있을텐데, 내가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넓고 깊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포용하는 것만이 방법인 것은 사실. 


작은 다짐부터 하나씩 해보자. 사랑하자. 화내지 말자. 라는 애매한 다짐말고. 

- 자기 전에는 무조건 웃어주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기. 

- 같이 잘 때는 한번씩 꼭 안아주기.

- 아침에 일어나면 껴안고 축복해주기.

- 뭔가 하라고 시키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기. 

- 이야기할 때 눈을 마주치기.



4. 교육위, 성당, 학교 등 봉사가 필요한 공동체에서의 부담감


 대가없는 봉사로 이루어지는 그룹에 많이 속해있다. 대안교육이라는 것이 늘 그렇고 성당에도 소속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안 바쁜 사람 없고 사정없는 사람이 없다. 선뜻 나서서 일할 사람이 없으니 일할 사람 뽑는 연말에는 매번 눈치보이는 모임이 이어진다. 나의 '사정'이라는 것은 아직 둘째가 어리고 내 허리 상태가 너무 안좋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주부라는 상황때문에 시간적 여유는 넉넉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고 그래서 스스로 괜한 눈치를 보게된다. 또한 내가 보여준 몇가지 모습과 역할들 때문에 주변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존재하는데, 그 기대에 비해 내가 바라보는 나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기에 그 사이의 괴리감에 불편한 것도 있다. 


 학교에서의 부담감은 그래도 덜한데, 성당에서의 불편함은 꽤나 심하다. 성당의 일원으로 들어와 따뜻하게 환영받을 새도 없이 일하는 것이 '의무'로 강요되고, 더 갑갑한 건 그 의무를 '은총'으로 받아들이라는 압력이다. 지금 성당에서 봉사하고 계신 분들이 이미 업무가 과중한 상태여서 새로운 사람을 환영할 여유가 없는 것도 이해되는 터라 답답하다. 하지만 '성당에 일할 사람이 없다'고 고민하면서 '의무'과 '은총'만을 강요하는 것은 분명 방법이 아니다. 그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부족한 듯 해도 주변의 상황과 나의 가능성을 믿고 역할을 받아들이면 그 경험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성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음에 어떤 역할을 맡게 된다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보자. 하지만 아직 성당에서는 가벼운 마음까지도 되지가 않음. -_-



5. 반모임, 아기돼지 삼형제


 마지막 연말 반모임에서 작은 공연들을 준비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나는 몹시 의욕에 차 있었다. 그런데 내가 참여하지 못한 11월 반모임에서 공연이 의무가 아니라 원하는 사람들의 선택으로 바뀌면서 뭔가 동력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되겠구나 하고 있었는데, 우혁애미가 반모임을 일주일 앞두고 뒷풀이 때 이야기가 나왔던 아기돼지 연극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내가 하면 자기도 하겠다며. ㅎ


 그렇게 번갯불에 콩볶듯 시작된 '아기돼지 삼형제' 연극은 시나리오 작성, 배역섭외, 리허설이 며칠 안에 순식간에 진행되었고 어설픈 모습으로 반모임에서 공연되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내가 원하던 것을 속으로만 품지 않고 풀어낼 수 있어서 좋았다. 


 모든 상황이 완벽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와 달리, 시작하면 어떻게든 될꺼야라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진숙이 덕분에 가능했던 일. 같이 하자 손내밀어준 진숙이에게 무한 감사를! '무엇이든 시도하라. 나쁜 일이라도 하라!'



6. 페미니즘


 페미니즘은 여신모임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올해 내 안에 깊게 자리잡은 키워드이다. 특히나 나의 종교와 페미니즘과의 마찰이 빚어질 때면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나 내내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도중 강남순 교수님의 <페미니즘과 기독교>라는 책을 알게 되었고, 교수님께서 방학을 맞아 한국에서 강연을 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리저리 강연참석의 기회를 엿보다가 담당자에게 연락을 하면서까지 마감된 강연에 비집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특히나 페미니즘을 우리 삶으로 융통성없이 가져올 경우 주변과의 관계가 삐걱거리고 일상이 파괴될 수 있다는 말이 깊이 와 닿았다. 페미니즘 의식을 갖게 되는 초기에 남편과 시댁에 전투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강요하거나 생활 속에서 빈번하게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또는 그렇게 흔들릴까봐 불안해하며 답답해하는 경험을 많이 하게 되는데 여신 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종교, 그리고 삶에서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이 절실했고, 그 방법을 교수님의 책을 통해서 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읽고싶은 페미니즘 책만 알라딘 보관함에 가득~ 내년에는 페미니즘의 한 해로!



7. 엄마, 아빠 칠순 파티


 칠순인데도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엄마. 이래저래 설득해서 결국 한정식집에서 한끼를 먹고 생일파티를 하긴했지만,  엄마의 마음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다른 생일 때는 별 말이 없었는데 다른 생일보다 특별한 칠순 생일을 챙기고 싶지 않다는 건 뭔가 자신의 70평생 인생을 돌아보고 싶지도 축하받고 싶지도 않다는 것만 같아서. 엄마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을까. 후회뿐인 인생이고, 기대할 것 없는 나날들 뿐이라는 생각이라면 엄마는 지금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고 있는걸까. 여신모임이 제일 필요한건 어쩜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곁에 있었으면 무언가라도 해줄 수 있었을까. 만나면 만날수록 엄마와 나는 20년을 어찌 붙어살았나 싶을 만큼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만 명확해질 뿐인데. 누군가가 나쁘고 아니고를 떠나 그저 합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인 것 같다. 가족이 아니었으면 절대 교류하지 않았을 관계. 내가 어찌 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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