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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사랑해. 나의 티모시 그린

고래의노래 2013. 1. 12. 19:56

2012년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직접 경험했던 한 해였다.

 

윤우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공동육아 공동체 생활에 대한 기대도 컸고, 3년 반만에 처음 가져보는 자유시간에 대한 계획도 빽빽했다. 처음에는 공동육아의 모습이 기대와 달라 실망하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갈등을 푸는 방식이 체계적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느끼기도 했었는데,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에게서 이렇게 많은 사랑을 아이가 받을 수 있는 환경에 감동하고 감사하게 되었다. 사회활동도 나름 열심히 했다. 마을 공동체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으로 관련 사회적 기업에서 함께 토론하고 자료 수집하며 연구집을 발행하기도 했고 락앤락 주부품질개선단 활동은 현재까지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한다면, 윤우가 조금 특별한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놀라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우울증 약을 먹었고 친정 부모님과의 연락도 잠시 끊었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보여준 남편의 노력은 정말 감동적이었다.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스스로 바꾸었다.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내가 어찌 이 상황을 견뎠을까 싶을 만큼 남편은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우리 가족을 감싸주었다. 정말 고맙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런 생각도 했었다. 왜 나일까...참으로 이기적이지만 그랬다.

남들과 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사실에 대해서 상상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관련서적 근처에 가는 것까지 피하던 나였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 역량으로는 그런 사실을 감당할 수 없다는...

 

그런데 생각해보니, 윤우는 딱 내가 바라던 아이였다.

윤우가 뱃 속에 있을 때 나는 정직하고, 남을 해치지 않고, 되바라지지 않으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규칙을 잘 지키는, 융통성 없어도 강직하고 순진한 아이를 원했다.

윤우는...절대로 남을 먼저 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줍음이 많아 어른들 앞에 먼저 나서서 종알종알 거리는 일은 없다.

그리고 규칙에 대해서만큼 철저하다. 윤우같은 특별한 아이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디 오드 라이프 오브 티모시 그린

The Odd Life of Timothy Green 
7.7
감독
피터 헤지스
출연
제니퍼 가너, 조엘 에저튼, 론 리빙스턴, 로즈마리 드윗, 다이앤 위스트
정보
판타지 | 미국 | -
글쓴이 평점  

몇주전에 <티모시 그린의 이상한 삶>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간략한 줄거리는 이렇다. 아이를 갖지 못해 좌절한 부부는 의사로부터 마지막 통첩을 들은 밤, 자신들이 바라던 아이의 모습을 하나하나씩 종이에 적고 이를 땅에 묻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그 땅에서 아이가 나와 그들에게 온다. 자신이 '티모시 그린'이라면서...

발목 근처에 잎사귀를 달고 있는 이 신기한 아이는 놀랍게도 부부가 원하던 위시리스트의 모습들을 하나씩 하나씩 보여준다. 티모시 그린은 아이에 대한 부부의 소망을 하나둘 이뤄주며 잎사귀를 하나씩 잃고 마침내 떠나간다. 그리고 '부모 연습'을 통해 진정한 부모가 된 이들은 이제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 입양심사 기관에서 심사관들에게 부부가 하는 이야기들이 참 마음을 울린다.

 

"저희가 실수를 했어요. 실수를 고쳐보려고 또 실수를 하고...그렇게 부모가 되어가잖아요."

 

맞다. 계속되는 실수. 그에 따른 죄책감...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방학을 맞아 온종일 아이와 붙어있으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란 것이 딱 저 모양이다. 욱!하고 실수, 죄책감. 그리고 죄책감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이어지는 또 다른 실수.

 

엄마 배 속에 동생이 생겼다고 윤우에게 말하자, 윤우는 박수를 쳤다. "아빠도 박수 쳐!"라고 하면서.

그리고 동생에게 '예쁜이'라는 태명을 지어주었다. 보기도 전에 일단 '예쁘다.'고 생각해주는 그 마음이 더 예뻤다.

 

둘째를 임신한 이후로 몸이 많이 좋지 않았다.

아이와 온전히 함께 있는 방학기간 임에도 나는 아이에게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낮 시간의 대부분을 누워있었다.

윤우가 거실에서 놀고 있을 때 아예 안방에 들어가 누운 적도 많다.

 

동생이 생긴 걸 안 순간부터 첫째들은 민감해지기 시작한다던데, 아직 배가 불러오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지 윤우는 이런 나의 상황을 아이답지 않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엄마, 엄마가 도와줘야 하는 레고 부품들 한 쪽에 모아뒀어. 그것만 도와주고 다시 자."

이렇게 말하기도 하고,

 

하루는 침대에서 축 늘어져있는 내 옆에 누워 이러는 거다.

"엄마, 내가 뭐 해줄까?"

- 음....노래 불러줘.

"엄마가~~섬그늘에~~~♬"

윤우는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렀다. 아들의 노래를 듣다가 살짝 잠이 들었는데, 다시 눈을 떠보니 아직 내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아들이 불러주는 달콤한 자장가...

 

어렵게 내놓은 협상안을 내가 매몰차게 거절해도 이럴다할 짜증을 내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잠이 안와서 거실에서 놀아야 되는데 무서우니 엄마가 소파에 누워서 같이 있어달라는 것. 소파가 불편해서 싫다며 나는 완강히 버텼다. 결국 설득에 실패한 채 윤우가 거실로 갔는데 거절을 해놓고도 너무 마음이 안 좋아서 몸을 질질 끌며 거실로 나갔다. 어른 같았으면 단단히 삐져서 소파는 불편하다면서 왜 나왔느냐고 한마디 톡 쏘아붙일만도 한데 윤우는 마냥 웃는다. 그저 엄마가 나온 게 좋다. 혼자서 놀라고 놔 두었을 때는 조용했는데 이제서야 이것저것 꺼내고 나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부산해진다.

 

요즈음 윤우는 참 밝다. 많이 웃고 많이 즐겁다.

그 장단에 맞춰주기는 커녕 때로는 분위기에 찬물까지 끼얹는 내가 너무 미안하다.

 

"엄마,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다른 엄마, 아빠랑 만나는거야?"

- 음, 그렇게 되겠지.

"안 돼! 그건 싫어! 지금 엄마, 아빠여야 해! 알았지?"

- 알았어. ^^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딱 이맘때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다.

어떤 날은 부모의 짜증을 작은 몸으로 온통 받아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부모의 미소 한 번에 기분이 하늘을 날아오르기도 하겠지. 단지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른들의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그 믿음과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민망할만큼.

 

영화에 나오는 대사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완벽한 아이를 바랬던 게 아니예요. 다만 아이에게 완벽한 어린 시절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 부모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건 딱 저만큼일꺼다.

 

둘째를 낳으면 첫째처럼 사랑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몇 번 들었었다.

그 때는 그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둘째는 무조건 이쁘다던데, 아니, 왜 그런 걱정을? 이러면서.

지금도 그런 걱정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 걱정이 어떤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둘째때문에 기쁜 마음보다 둘째때문에 겪을 녀석의 맘고생에 미리부터 안쓰러운 마음이 더 강하다.

내 첫 아이, 내 첫 사랑, 나를 달콤하게 녹여주는 단 한 명의 남자. 이 세상에서 맺은 첫 '부모-자식의 정'을 어찌 잊을까.

 

 

누가 뭐래도 윤우는 나의 바람을 모두 담고 나온 아이, 나의 첫째, 나의 티모시 그린.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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