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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부릉부릉> 대관령, 강릉, 봉평 여행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과 여행가기

<아이와 부릉부릉> 대관령, 강릉, 봉평 여행

고래의노래 2011. 10. 21. 23:55
어언 두 달이 지나버린 여행인데 이제서야 글을 쓴다.
지난 여름 제주도 3박 4일 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 우리는 바로 강릉으로 출발해서 또 2박 3일 바다여행을 했었다.
남편 휴가 일주일동안 休暇라는 말이 무색하게 '쉴 틈'은 없고 오로지 온 몸 불살라 놀기 바빴다. -ㅂ-;;

일정 : 2011년 8월 19일 ~ 21일
숙소 : KT 대관령 수련원
누구와 : 소영이네 가족과

첫째날 : 하슬라 아트월드(http://www.haslla.kr/
둘째날 : 아기동물목장 - 보헤미안 - 하조대 해수욕장 - 주문진항
셋째날 : 평창 허브나라 농원(http://www.herbnara.com/main.html)

 제주도에서의 여독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강릉으로 출발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우리는 새벽부터 부지런을 떠는데, 일찍 시작해 보다 많이 보고 싶은 '양적 여행'에 대한 촌스러운 집착도 있지만, 무엇보다 막히는 도로에서의 시간 죽이기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첫째날 : 하슬라 아트월드(http://www.haslla.kr/

 이 날도 아침 일찍 하슬라 아트월드로 출발했다. 우연히 VJ 특공대를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바닷가 언덕 위의 야외 미술관이라는 낭만적인 분위기의 이 곳은 기발하고 신기한 구조물과 조각, 체험들로 아이를 둔 가족들에게도 인기 만점인 곳이라고 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나를 미술관에만 데리고 가지 말라."는 남편이 "여기 잘 찾았네. 괜찮네."라는 평을 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두 달이나 지난 여행기를 게으름을 무릅쓰고 꾸역꾸역 포스팅을 하는 이유도 이 곳을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야외 조각 공원 입장료에는 바다 카페에서의 음료수가 포함되어 있는데, 24개월 이상이면 입장료가 필요하다. 이제 어엿하게 '미술을 즐길 줄 아는 나이'로 취급받게 된 윤우. 야심차게 데리고 가는 전시회나 체험전에서 모두 '본전 생각나게 하는' 아들이기에 윤우 입장료를 내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야외이니 조각상 감상할 거 아니면 풀밭이라도 달리게 하자.'라고 위로를 하며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길에 들어서자마자 만난 애벌레. 시작이 좋다. 움직이는 작은 생물이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윤우. 까맣고 동그란 머리에 몸에는 털이 잔뜩 달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류의 애벌레였지만 윤우의 눈을 사로잡았으니 나도 멈춰선다. 제발 엄마에게 만지라고만 하지 말아다오~

 빽빽한 나무 숲길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오르고 오르다 불쑥 보이는 바다에 탄성이 지어질 즈음에 만나게 되는 의자들. 이 의자들 역시 하나의 미술작품이다.  오브제는 그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고 항상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언덕 맨 꼭대기, 시간의 광장에 선 부자. 십이지신 동물 상이 동그란 광장을 따라 늘어서 있다.  하슬라 아트월드가 다른 야외 조각공원과 다른 건, 단순히 야외에 조각을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라 공간에 조각(미술)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또는 공간 자체가 예술이 된다.

 시간의 광장에는 지하로 뚫린 커다란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 곳으로 들어가면 터널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오게 되어있다. 터널을 좋아하는 윤우에게 이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터'가 어디 있겠는가.

하늘 정원 옆의 전망대. 울타리 너머로 거꾸로 붙여진 자전거가 보인다.

 스프링이 매달린 커다란 돌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아보는 남편. 이 곳에서는 예술도 놀이가 된다. 밑의 돌 바닥에 곳곳에는 얼굴을 새겨넣은 돌들이 숨어있다. 모두 몇 개의 얼굴이 있는지 세어보는 재미도 쏠쏠.

 소똥갤러리. 위에 매달린 오브제들이 모두 소똥으로 만든 것이다. 이 곳과 바로 옆의 돌갤러리에서는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전도 자주 열리는 모양이다.

 사방이 풀숲인 이 곳은 방아깨비와 메뚜기의 천국이다. 방아깨비의 입이 저렇게 생겼다는 건 처음 알았다. 마치 고물상에서 쓰는 집게발처럼 사방으로 입이 동그랗게 열린다. 잡혀서 처음엔 긴장하더니 풀을 주니 얌전히 씹어먹는 방아깨비.

 누구의 발바닥일까. 길에 신발들을 심어 놓았다. 자기 발과 크기 비교를 하며 흠뻑 빠져든 윤우.

 야외 조각공원의 관람을 다 마치고 음료수를 먹기 위해 들른 바다 카페. 어둑어둑 해가 지고 조명이 커지면 더 멋질 것 같다. 아이 쿠폰과 어른 쿠폰을 합쳐서 야심차게 팥빙수를 받았는데, 윤우는 한 입 먹더니 주스 내놓으라고 성화다. 성곡미술관에서도 빙수 안 먹던 아이인데, 어쩌자고 내가 저 아이에게 빙수를 다시 들이밀었을까...;;;

 입장권으로 한 곳의 실내 미술관을 더 볼 수 있다. 벽에 쏘여진 레이저 불빛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이 곳에서 윤우도 덩달아 댄스! 이 곳은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미술관의 경계가 모호하다.  

 마지막으로 좁다란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어두운 방에 이렇게 비밀스러운 통로가 있다. 이 통로는 밖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의외성이 주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윤우는 어두워서 싫다고 계속 입장을 거부했는데, 현수가 앞서가는 시범을 보여주고 나서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돌에 그림 나비가 앉았다. 곳곳에서 이런 바위들을 볼 수가 있다. 이것처럼 하슬라 아트월드는 자연을 캔버스 삼아 예술을 펼쳐보이려 하고 있다. 물론 이 곳을 만들기 위해 멀쩡했던 산이 깎이고 잘 자라던 나무가 잘려나갔으리라. 하지만 적어도 그렇게 다시 만든 자연 속에 잘 섞이고자 했음을, 그대로 자연이 되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푸른 언덕이라는 천혜의 절경속에서 조각들과 설치미술들이 '경계 허물기, 통념깨기, 재미전달'이라는, 예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덕목들을 모두 제공한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참고로 '하슬라'는 강릉의 옛 지명이라고 한다! 참 곱다.

 이 곳에서만 몇 시간을 소요해서 주변의 관광지인 정동진과 통일공원의 함선박물관 등은 들러보지도 못했다.
 그 날 저녁 숙소로 돌아가 소영이네 가족과 만났다. 밤에는 숙소 뒷마당에 펼쳐진 천막식당에서 맥주와 파전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

:: 둘째날 : 아기동물목장 - 보헤미안 - 하조대 해수욕장 - 주문진항

 다음 날 아침 출발한 곳은 아기동물목장. 네비에 잘 안나온다며 투덜거렸는데 알고보니 숙소에서 차로 1분. -_-;;
대관령 목장도 물론 좋지만, 이전에 갔었기 때문에(양떼목장은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직접 동물들에게 먹이도 주고 만져볼 수도 있다는 아기동물목장으로 향했다.

 부화하는 병아리들. 옆 칸에는 오리들이 그리고 저 대각선 쪽에는 메추리들이 깨어나고 있다.
어른들이 더 신기해서 난리였다. 아이들은 덤덤.;;;

 위험한 동물들을 제외하면 (큰 말과 양 등) 대부분의 동물들을 마음껏 만질 수 있는데, 사실 동물들한테는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박고 곤히 자는 고슴도치를 깨우면서도 마음이 좋지가 않았다. 심지어 토끼장에 들어가서 토끼몰이도 할 수 있는데, 동물들의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동물을 가까이 보여주는 체험과 동물들의 행복권을 둘 다 추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자연에 대한 삐뚫어진 짝사랑이 끝나는 날, 인간도 자연도 편안해지리라.

 입장료를 내면 저렇게 플라스틱 통에 동물별로 분류된 먹이를 준다. 생각보다 윤우가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지나자 이제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곤충도 막상 곤충 전시회에 가면 휭~하니 돌아보다 시큰둥해하며 가자고 한다. 그런데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치는 노린재나 길가에서 만나는 애벌레는 손으로 이리 굴려보고 저리 굴려보고 지치지도 않고 논다. 울타리 속의 동물들이, 아크릴 벽 너머의 곤충들이 무언가 억지스럽다는 걸 윤우도 느끼는 걸까.

 두둥~ 드디어 등장한 소영이네 가족. ㅎㅎㅎ 올해 들어 벌써 두번째 함께 한 여행이다. 몇 번 못 봤는데도 평소 윤우가 하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재진이가 곧잘 나온다. 지난 번 여행 때 재진이가 윤우의 경찰차를 망가뜨린 게 꽤 강하게 기억에 남았는지, 재진이 이야기만 하면 그 사건부터 읊조린다. 쓰라린 첫인상이다. ㅋㅋ  
 재진이 아빠가 커피 매니아여서 우리나라 바리스타 1호가 운영한다는 <보헤미안>에 들렀다. 무언가 마셨지만, 커피는 단지 '많이 쓴가 많이 안 쓴가'로만 가늠하는 나로써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토스트와 계란이 더 환영받은 곳. ^^;;

 동해는 깨끗하고 차가운 대신에 수심히 깊고 파도가 높다. 아이들이 놀기에 적당한 해변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예전에 갔던 아야진 해수욕장은 조금 거리가 멀어서 검색해서 간 곳이 하조대. 물론 제주도 같지는 않지만 (^^) 파도가 그다지 높지 않다. 모래 놀이에 빠진 아이들. 어른들은 일찌감치 치킨과 맥주에 빠졌다. ㅎㅎ

 소영 가족의 즐거운 한 때. 소영은 둘째를 임신하고 있다. 맞벌이로 아이 둘을 키우는 일을 해내게 될 소영. 나라면 가능했을까? 소영이와는 중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고등학교 때는 쭈욱 같은 반이었다. (외고였기 때문에 삼년 내내 한 반이다.) 그녀는 마치 '고운 채'같다. 큰 걱정이나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세상 모든 걱정들이 그녀를 통과하면 평화로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예전부터 우울한 일이 있을 때 '소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면 걱정이 가벼워지고는 했다. 
 물론 그녀라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30년 조금 넘은 인생 경험으로 보았을 때 겉으로라도 웃어넘기는 '그나마 대범해 보이는' 사람들 인생은 그들의 말 그대로 쉽고 잔잔하게 흘러갔다. 그래서 그녀를 닮고 싶다. 뻑뻑한 내 인생의 엔진에 기름칠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거다. "괜찮아~"라는 그녀의 말버릇 그대로 두 엄마의 인생을 살게 될 그녀의 미래도 내 걱정과는 달리 괜찮을 것이다.

 오래오래 바닷가에 머문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주문진항에 들러 생선구이와 회를 조금 먹었다. 맛집을 믿지 않는 나이기에 음식점 얘기는 여기서도 패스~

:: 셋째날 : 평창 허브나라 농원(http://www.herbnara.com/main.html)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서울 쪽으로 가는 길에 돌아볼 곳이 어딘가 검색하다가 찾은 곳이 허브나라농원. 그렇고 그런 수목원과 농장에 조금 질린 우리였기에 별 기대는 없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감탄했다.

 대략의 농장 이미지. 간판 하나만으로도 이 곳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 농장에 사용된 일러스트를 모두 통일해서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일러스트가 정말 아기자기하고 예쁜데 이 곳을 설명하는 한 마디 형용사가 있다면 바로 '아기자기'일 것이다. 작은 정원과 조형물들이 모두 포토죤을 이루고 있을 만큼 정말 예뻤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유치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만들었다. 디자인 컨셉을 정말 잘 잡은 곳이다.  
 하나의 길을 따라가다보면 모두 돌아볼 수 있어서 지도를 이리봤다 저리 봤다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것 또한 커다란 장점이다.

 왠 일로 친한 척을 하는 두 남자. ㅋㅋ

엄마 나비와 아기 나비. 윤우가 이렇게 협조를 잘 해줄 줄이야. ㅎㅎ 이런 거 하는 날이 우리에게도 오는구나! ㅋ

 숲 속 놀이터. 어디를 가든 일단 놀이터를 찾고 보는 윤우에게 이 곳은 최고의 장소였다. 다른 모든 곳보다 이 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이 뒤에는 기차 모양의 놀이터도 있다.
 덕분에 어른들은 이 앞 등나무 벤치 아래에서 오래오래 앉아 쉴 수 있었다. 바로 옆 매장에서는 허브빵과 허브김밥, 허브 아이스크림 등 각종 허브 요리들을 파는데, 꽤 맛이 있다.

 아빠 동반 여행의 가장 큰 장점. 아빠들한테 아이 맡기기. ㅎㅎㅎ
 재진이 아빠를 보면 '끼리끼리 만나 결혼한다'는 말이 무언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소영이와 너무 닮은 재진이 아버님. ㅎㅎㅎ 소영이처럼 겉으로는 스트레스 제로에 뭐든 '괜찮아'맨이다. 둘의 상황판단을 보고 있으면 현수와 나는 기겁할 정도. ㅋㅋ '아니, 저러면 애가 워험하잖아!!!!'싶은 상황에서도 "다치면서 크는 거지. 뭐~"라며 제지도 없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인 재진이를 제지하는 건 오히려 윤우이다. 우리에게 배운 잔소리를 그대로 재진이에게 쏟아붓고 있는 윤우 모습을 보자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ㅂ-;;;

 농원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흥정계곡>으로 이어지는데, 얼음처럼 차갑고 깨끗하다. 엄청 더운 날이었는데도 물이 너무 차가워서 수영을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울 정도로 차갑다. 이 곳에서 오래오래 머무른 아이들. 아무리 깨끗하다 해도 먹지는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 먹어댄다. 윤우가 먹으니 재진이도 한 입.
 흥정계속 옆으로 민박집들이 이어져 있는데, 다음 여름에는 이 곳으로 꼭 오자고 다짐을 했다. 허브농원에서도 숙박이 가능하다니 한 번 고려해 봐야겠다. ^^

 <빨간머리 앤> 생각에 허브농장에서 사 온 허브 초코렛 캔디.^0^ 얇고 바삭한 캔디안에 초코렛이 가득 들어있다.
가끔 알싸한 맛이 나는 캔디가 있어서 윤우가 먹고 울상을 짓긴 했는데, 그 이후로도 계속 '매운 캔디'를 찾는 걸 보니 은근 중독성이 있는 듯.

 재진이 아빠가 말하길, 사실 휴가를 낼 상황이 아니었는데 올 여름 제대로 된 여름 휴가 한 번 못 간 소영이를 위해서 어렵게 휴가를 냈다고 했다. 우리랑 술을 마시고 놀던 중에도 때때로 혼자 자리를 피해 회사로 전화를 걸고는 하셨다. 그만큼 소영이 가족에게는 소중한 시간이었을 이번 휴가다. 우리가 즐거웠던 그만큼 소영이네도 즐겼길 바란다. 
 소영이가 둘째를 낳게 되면 이런 여행이 당분간은 힘들어질테지만, 그 '당분간' 이후에는 쭈욱~ 가족여행을 함께 하면 좋겠다.
 그리고 재진아, 윤우아. 너희들도 점점 친해지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