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평온님네 나들이 - 딸몸살이 걸리다. 본문

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과 여행가기

평온님네 나들이 - 딸몸살이 걸리다.

고래의노래 2011. 7. 23. 18:59
때는 7월 6일 수요일. 지리하던 장마기간 중 해가 잠깐 얼굴을 비친 행운의 날에 우리는 네이버 파워 블로거인 평온님 댁에 놀러 가게 되었다. 난 현주언니 꼽사리. ㅎㅎㅎ
현주언니랑 알게되고 나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알아가게 된다. 나에게 언니는 정말 귀중한 인연이다.

산본 근처 대야미, 마당넓은 집에서 세 아이와 함께 살고 계신 평온님.
속깊게 아이를 키워내고 계신 하루하루 이야기를 블로그에 맛있게 풀어놓고 계신다.

우리가 갔을 때가 딱 점심 때. 세 아이 키우며 밥해먹는다는 건 요리혐오증인 나에겐 생각만으로도 멀미나는 일이다. ㅜ.ㅠ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바쁘실 평온님한테서 우리는 죄송하게도 밥을 얻어먹었다.
메뉴는 비빔밥. 각종 야채, 나물 볶음과 양파간장을 섞어 비벼먹는 그 맛이란!!!!! 어찌나 맛있던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잠때를 놓친 윤우는 계속 칭얼거렸다. 집에 가겠다고 하기에 평온님 집 마당에 풀어놓았더니 윤우 뒤로 아이들이 모두 주루루~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뒷마당에는 평온님네집 시골냄새(!ㅎㅎ)를 책임지는 닭장이 있었다. 닭똥에 질렸다는 평온님이지만 이제는 참을만 하실 듯. 며칠 전에 올란 온 글을 보니 닭들이 이제 따끈한 알들을 내놓으며 냄새값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평온님네 둘째인 윤정이는 뒷마당과 앞마당 사이에서 레몬맛이 나는 풀을 찾아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내 생각에는 '레몬밤'이라는 허브의 한 종류가 아닐까 싶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
풀잎을 뜯어 오물거리며 나에게도 권하기에 나도 씹어보았다. 정말 새콤한 향기가 난다.
엄마가 길가의 풀을 뜯어먹으니 윤우도 자기도 먹어보겠다고 나섰다. 잎이 하트모양이어서 즉흥적으로 '하트풀'이라고 이름붙이고 먹어보라고 했다. 나물은 주먹밥에 섞어줘야 먹는데 길가의 풀은 신기한지 꼭꼭 씹으며 잘 넘겼다.
이 곳에 다녀온 후 윤우는 아직도 풀밭만 보면 새콤한 맛이 나는 '하트풀'을 찾는다. 자연과 아이는 쉽게 친구가 되었다.

집 마당에는 커다란 개, 해치가 있다. 큰 몸집과 다르게 너무나 순하다. 아이들과 동물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언제봐도 포근하고 정겹다. 자기 몸보다 자그마한 아이들의 말을 순하게 잘 따르며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던 해치.
아이들이 닭에게 풀을 먹여보더니 해치에게도 풀을 먹여보겠다고 나섰다. 냉큼 잘 받아먹는 해치덕에 아이들이 더 신이 났다. ㅎㅎㅎ

동네 친구 상윤이말고는 다른 또래들과 말도 잘 섞지 않는 윤우가 아이들 틈에 섞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수도 호스를 가져와서 차에 기름을 넣는 주유소 아저씨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ㅋㅋㅋ

학교에 간다며 자기 몸만한 가방을 팔에 매고 마당으로 나간 평온님네 막내 이룸이가 보인다.
이 날 나는 사랑 받는 법을 아는 애교쟁이 이룸이에게 완전히 녹아버렸다. 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한 아이스크림이 된 기분이었다. 이보다 더 달콤할 수 있을까!!! 자기 옆으로 오라며 마루를 손으로 팡팡 내려치던 모습과 옆에 앉은 내 팔을 슬며시 만지다가 내가 돌아보자 꽃웃음을 날리던 모습, 기저귀로 뚱뚱해진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걷던 모습까지...
이 날 이후 나는 '딸몸살'이 걸려 버렸다. 워낙에 딸이 갖고 싶던 나였는데, 이룸이가 기름을 끼얹고 윤정이는 바람을 부쳤다. ㅜ.ㅠ

파워블로그이신 평온님을 만난다는 생각에 연예인 만나는 것처럼 설레였는데, 사실 그보다 더 보고 싶었던 건. 이룸이와 윤정, 필규였다. 집에 들어서는 우리를 창문에 딱 달라붙어 반갑게 맞이해준 윤정과 이룸.
젤 처음 사진에서 긴 머리가 예쁜, 분홍치마 아가씨가 윤정이다. 오빠의 물건을 똑 부러지게 사수하고(필규는 좋겠다~ ^^)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야무지다.
자기가 젤 좋아한다는 변신소녀 만화책도 윤우에게 선뜻 빌려주고, 윤우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자 스케치북도 얼른 찾아주었다. 스케치북에 예쁘게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이룸이가 다가와 낙서를 하며 그림을 망쳤는데, 혼자 속상한 마음을 삼키던 모습이 대견하고도 안쓰러웠다. 아마 첫째에 치이고 막내에게 양보하는 둘째의 자리가 윤정이의 마음을 이렇게 키워놓았을 것이다.

평온님댁 윤정이와 이룸이를 보고 둘째 생각이, 특히나 딸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다들 이제 정말 둘째 가질 '때'가 되었나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 두렵다. 난 지금도 윤우에게 100% 햇살같은 엄마가 아니다. 때로는 사자보다 무섭고 때로는 눈보라보다 차가운 그런 엄마...게다가 몸도 자주 고장이 난다. 그럴 때면 더욱더 윤우에게 날카로워지곤 한다. 내 사랑은 퍼내다 보면 바닥을 드러내는 웅덩이같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

독립된 영혼이지만 또한 자매처럼 가까운, 그런 모녀 사이를 항상 꿈꿔왔다.
난 엄마가 나에게 그런 엄마이길 바랬다. 그럼 넌 그런 딸이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걸까.
딸을 낳고 그 딸과 살가운 정을 나누어야만 마음 속의 이 답답한 앙금 덩어리가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마치 내 업보가 그로 인해서만 풀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찌해야 하나..어찌해야 하나.. 생각이 많은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