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아이와 뚜벅뚜벅> 시장이 아이를 품다. - 모란시장 본문
교통 : 분당선 모란역까지. 모란역 5번 출구에서 쭉 걸어나오면 모란시장 입구가 보인다.
이동경로 : 모란시장 3바퀴. 길 건너 뉴코아아울렛에서 아이스크림.
장 서는 날 : 4와 9가 있는 날. (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
현주언니 소개로 알게 된 평온님의 블로그에 요즈음 자주 놀러간다. 평온님은 아직 날 모르시니 놀러간다기보다 그냥 기웃거리다 온다는 표현이 맞는데(ㅎㅎ) 아이들과 이 곳 저 곳 놀러다니신 글을 보니 갑자기 나도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윤우는 이제 제법 자라 '견딜 만한' 나들이 동지가 되었다. 하지만 내년에 윤우를 유치원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으니, 내가 윤우와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8개월 정도 뿐이다.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덥다고 둘이 마주보고 혀만 내밀고 있을 시간이 아닌거다! 어디를 갈까 궁리하다가 평온님 블로그에서 모란시장 탐방기를 보고 바로 결정을 했다!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몇 정거장 뿐인데 왜 여기 갈 생각을 안 했지!
결정했으니 끌어들일 동지 찾기! 여기에 딱 맞는 사람은 한 명!!! 현주언니다. ㅎㅎㅎ 모란시장 가자고 하면 "그래, 그래!" 하며 함께 흥분할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래서 원래 '다음 주에 가요~'라고 예약을 걸어놓았는데, 장마비가 그친 후 맑게 개인 날씨가 여름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선선하고 또한 싱싱했다. 게다가 오늘은 장이 서는 4일~ 바로 언니를 불러들였다. ^^
모란시장 입구의 맨 오른쪽 길에서는 개와 닭, 오리 등을 판다. 개는 개고기용 개들로, 개고기에 대해 반대의 입장이 분명한 분들이라면 이 골목은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다. 찜통 더위에 철장에 갇혀서 운명을 기다리는 개들을 바라보는 것도 고욕일 것이고 어쩌다가 죽어서 고기가 되어버린 개의 모습을 본다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나는 개를 키웠던 사람으로서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입장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잔인한 방식으로' 동물들을 죽이는 것 또한 반대이다. 점차 채식으로 옮겨가려 하지만 아직도 기회가 되면 고기를 먹는다. 결국 '아직 애매모호한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윤우는 커다란 개들이 무서운지 가까이 가지 말라면서도 "강아지 집이네. 여긴 닭집인가봐~"하며 열심히 구경했다.
시장 구경의 가장 큰 즐거움은 먹거리이다. 모란시장 중앙에는 이런 먹거리 상점들이 모여 있다.
만난 시간이 12시. 30분쯤 구경을 하고 허기를 달래려 한 곳을 골라 앉았다. 윤우는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시장 풍경. 알록달록한 생생함. 시장의 활력은 색감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우리는 양념 순두부탕과 부침개를 시켰다. 제법 매운 순두부인데도 요즈음 자칭 '형아'가 되어버린 희범이는 어찌나 잘 먹던지!!! 음식점 아주머니들도 그런 희범이가 대견하고 이쁘신지 계속 쳐다보며 미소를 지으셨다.
이거 저거 먹겠냐고 물어도 아니라고 세차게 도리도리를 하길래 한 바퀴 더 돌기로 했다. 그러다가 찰옥수수를 팔길래 간식으로 사주었다.
아기들에게 줄꺼냐고 물으시더니 아저씨께서 옥수수를 반으로 뚝뚝 자르신다. '아~ 아기들 먹기 편하게 작게 잘라주시나보다.' 했는데, 반으로 자른 옥수수에 능숙하게 젓가락을 하나씩 꽂으신다! 순식간에 막대 옥수수 완성~~!! 우와~~~~~~~~~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라고 옆의 청년이 아저씨에게 묻는다. 아, 머리 노란 이 청년이 아들인가 보다.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는 것 같다. 아저씨가 아들 일당 벌려면 십만원 이상은 팔아야 하는데 큰 일이라며 웃으신다. 아들도 웃는다. 너무 보기 좋다. 이렇게 아버지가 시장에서 일을 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은 자랐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건실하게 잘 자라난 것이겠지.
역시 아이들의 발길을 멈춰 세우는 것은 동물들이다. 첫번째 골목의 '먹거리 로서의 동물 시장'과 다른 '키우는 동물 시장'이 시장 끝에 있다. 토끼와 강아지, 병아리, 새끼오리들.
윤우의 얼굴이 크게 나온 사진을 전체공개 블로그에 싣는 게 아직은 선뜻 내키지가 않아 이 사진을 올릴까 말까 망설였는데, 도저히 안 올릴 수가 없었다. 토끼가 강아지보다 더 좋다며 토끼 우리를 떠나지 않던 윤우의 즐거움이 잔뜩 잔뜩 묻어나 있다. 동물 친구들 때문에 윤우에게 시장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곳'이 되었다.
희범이는 옥수수를 우적우적 먹고 토끼 파는 할머니 분부대로 옥수수 심을 토끼에게 하사했다. 사진은 그 직후의 모습. ㅎㅎㅎ
강아지가 귀엽다며 서로 이야기하는 아이들.
아기 동물들이 인간 아기들보다 더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강아지보다 아이의 머리에 더 손이 간다.
아주머니가 "어서 오세요~ 호박죽 밭죽 있어요~"라고 손님을 부르시는데, 윤우가 이거 따라하는데 재미가 들렸다.
이 소리는 이제 윤우에게 '시장의 소리'로 기억되겠지.
시장 구경하면 재미있겠다~ 싶었지만, 나는 시장을 푸근함이 아니라 '여유없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이 밥벌이 걱정에 마음의 여유없이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곳. 섣불리 살 것처럼 구경하다 돌아서면 욕들어 먹을 것 같은 곳. 친절함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싼 가격에 그나마 만족해야 하는 곳으로 말이다.
그런데 내가 오늘 본 시장은 아이를 살갑게 품어 주었다. 아이를 대한 모든 사람들, 아이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아이에게 웃어주었다. 음식점 의자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우리들의 유모차가 좁은 길을 막아 사람들이 싫은 소리를 내뱉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였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 날 현주언니와 아이를 키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에 대한 배려를 은근 기대하게 되는 마음과 그 기대가 어긋나면 심하게 상처받는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로 언니는 요 몇 달동안 몇 개의 사건을 겪은 뒤라서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착한 언니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배려를 당연하게 기대하는 것 같다며 자기 반성을 했다. T-T 하지만 아이라는 약자를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마음의 여유를 나타내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삶 속에 품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어찌보면 우리가 불평한다고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시장은 놀랍게도(나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오늘 윤우와 희범이는 그 품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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