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아이랑 뚜벅뚜벅> 땡볕 아래 종로 나들이 본문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자 할 때 내가 하는 첫번재 행동은 책을 빌려보는 것이다. 냉큼 도서관으로 가서 관련 책 두권을 빌렸다. 처음에는 <엄마와 아이의 서울산책> 한 권만 검색해 놓고 갔는데 바로 옆에 <아이와 함께 서울 나들이>도 꽂혀있길래 같이 빌려왔다.
엄마와 아이의 서울산책 - 정진영 지음/살림Life |
글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엄마의 느리고 포근한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서울 나들이 - 이재영 지음/북하우스 |
같은 주제의 책이지만 이렇게 중심점이 달랐기에 서로 보완해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두 책이 동시에 추천한 코스가 있었다.
7월 20일 오랫만에 한여름 땡볕이 뜨겁던 날에 윤우와 나는 이 코스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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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 흥국생명 빌딩 -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 성곡미술관
(세 코스 중 성곡미술관만 유일하게 관람료가 있다.)
점심 : 흥국생명 지하 세븐프링스 (비추천)
교통 : 분당에서 9401 버스를 타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내린 후 도보로 15분이면 도착.
돌아갈 때는 택시로 평화방송국 앞까지 이동 후 분당행 버스.
흥국생명 빌딩은 로비에서 3층 갤러리까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공짜로 관람할 수 있지만 대기업의 사옥이라는 생각에 섣불리 사진을 찍어대진 못했다. 그래서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_-;;; 건물 앞의 여러 구조물에서도 아이는 한참을 장난치며 놀았다. 심지어 비슷하게 노는 또래의 아이와 엄마를 발견하기도. ^^
이 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유리 계단. 밑이 훤~히 보이는 계단인데, 일부러 윤우에게 보여주려고 엘레베이터를 안타고 선택한 코스였지만 올라가는 동안 내 손에서는 식은 땀이 났다. 단지 아래가 보인다와 안보인다의 차이일 뿐인데 이렇게 공포심이 들다니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정말 단순한 것 같다.
관람을 마치고 점심시간이 되어 책에서 추천한 흥국생명 빌딩 지하의 세븐스프링스를 갔다. 주변에 아이 데리고 마땅히 먹을 곳이 없고 이 곳이 제일 '만만하다'고 이야기하여 갔는데, 이 곳에서 난 체해 버렸다. -_-;;
이 곳은 채식 위주의 뷔페로 가격이 조금 세다. 대신 아이를 먹이기에 적당한 음식들이 참 많다.
그런데 윤우는 바나나를 몇 입 먹고 주스를 한 잔 마시더니, 입을 닫아 버렸다. 나가잖다. 케익을 먹으려면 밥을 먹어야 한다고 구슬렸지만 단호했다. 그 좋아하는 케익마저 마다한 결단이니 얼마나 단단한 것이겠는가. 계산을 하며 너무 아까워서 난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T-T 그리고 체한 것이다.
나중에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보니 콩豆라는 음식점이 있는데 조금 비싸긴 했지만(뷔페만 하리...) 아이와 먹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성곡미술관쪽으로 골목으로 돌아 들어가자 또 음식점들이 많이 보였다. 역시 나 밥먹을 때 아이를 상대해줄 '여분의 어른'없이 부페를 가는 게 아니었다!!!! 으으으으...
서울역사박물관 마당에는 이렇게 지도분수가 있다. '선비' 윤우는 엄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분수로 뛰어드는 것을 거절하고 손으로만 살며시 분수를 만져보았다. 분수 색깔도 계속 변해서 어스푸레해질 저녁 7~8시쯤(여름기준) 들르면 분위기가 멋질 것 같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대학시절 내내 버스로만 지나다니고 한 번도 들어가보지 못한 곳인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무료로 이런 곳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너무 흐뭇했다. 더운 날에는 공짜로 에어컨 바람 쐬러 들어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그랬다. ^^ 흥국생명과 성곡미술관, 경희궁은 딱 이 역사박물관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한 곳을 방문하고 나면 더위에 파김치가 되어서 꼭 역사 박물관 안으로 들어와 땀을 식히고 다음 포인트로 출발을 했다. ^^
이 곳은 아이들에게도 무척 흥미로운 곳이다. 윤우가 보고 있는 것은 '도시모형 영상관' 투명한 발판 아래로 저렇게 반짝이는 서울의 밤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내가 보기에도 아주 멋졌다.
또 이 곳에서는 손으로 만져보거나 버튼을 누르는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체험꺼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역사 박물관 앞에 전시되어 있는 전차. 실제로 예전에 운행을 했던 전차라고 한다. 안에 들어가서 구경해 볼 수 있다.
<엄마마중>에 나왔던 전차라며 윤우는 큰 관심을 보였다.
역사 박물관 뒤쪽길로 가면 경희궁으로 연결된다. 숨어있는 궁궐이라서 나도 책을 빌려보고 나서야 서울에 이러한 곳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알고보니 이 곳이 일반에 개방된 것이 2002년이라고 한다. 일제치하에서 일본인 학교가 이 곳에 들어서서 궁궐 건물 대부분이 헐렸다고. 우리나라 궁궐이 모두 그렇지만, 특히나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이 곳은 윤우때문에 많이 돌아보지는 못했다. 계속 유모차만 끌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겨우 구슬려 궁궐 옆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것까지는 했는데 그 이후로는 진전이 안되었다. 나중에 날이 선선해지면 다시 와 봐야겠다.
성곡미술관은 <엄마와 아이의 서울산책>에서 극찬을 해 놓은 곳이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역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어쩌면 더운 여름날 유모차를 끌고 인도도 없는 위험한 좁은 골목의 도로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은 실내갤러리와 뒷동산의 야외 조각공원, 그 조각공원 안의 찻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개의 조합에 따라 입장료가 달라진다. 나는 찻집만 이용할 생각이었는데, 찻집의 음료가격이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다길래 '조각공원+찻집' 페키지 입장료를 샀다. 사방이 유리라서 온통 녹색으로 푸르른 찻집에 들어가 시원한 팥빙수를 시키고 앉아있으니 살 것만 같았다. 윤우에게는 생애 첫 빙수였는데,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다가 숟갈로 떠 주니 거부를 했다. 덕분에 나만 시원하게 한 그릇 뚝딱먹고 공원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이 곳에서 지금 계신 분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큰 적도 있었는데 요즈음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위한 길'이라고 진심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만 그 방법이 시대에 뒤떨어지게 '근대'적일 뿐.
어쨋거나 저쨋거나 사회는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삐걱거리면서도 앞으로 아주 천천히 나가고 있다고 말이다.
윤우와 친구들이 컸을 때는, 그 속력을 조금 더 내 주었으면.
성곡미술관을 빠져나와 우리는 역사박물관에서 휴식을 취했다. 너무 자주 들락거려서 박물관 로비의 안내원 분들의 눈치가 조금 보일 지경이었다. ;;;; 윤우는 가는 길에 잠들어버려서 나는 박물관 벤취에 앉아 가방 속의 책을 오랫동안 읽었다.
많이 덥긴 했지만 윤우와의 첫 서울 나들이는 성공적이었다. ^^ 찾아보면 아이를 데리고 공짜로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걸 알게되니 더 힘이 났다. 게다가 이렇게 더운 날에도 해냈으니 이제 날이 시원해지면 더 잘 해낼 수 있겠지?
얼마 남지 않은 윤우와의 온전한 이 하루하루를 맘껏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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