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아이와 부릉부릉> 버찌씨와 함께 한 안성, 천안 여행 본문
여행 경로 : 28일 - 안성 너리굴 문화 마을
29일 - 천안 독립 기념관
일정 : 2011년 5월 28일 ~ 29일
숙소 : 천안 에벤에셀 펜션
누구와 : 버찌씨 커플들 (선희 가족, 영주 커플)
버찌씨들과 중학교 때 했던 '크리스마스 이브 만남' 약속은 92년 이후로 10년을 지켜오다 깨져버렸다. 남자친구가 생겨도! 남편이 생겨도! 이 날만은 만나서 함께 하자던 약속이었는데, 정작 남자친구가 생기자 슬슬 약속을 깨는 녀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약속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던 나는 무척 실망했지만, 이미 마음 떠난 애인처럼 떠나가버린 친구들 마음을 돌려세울 순 없었다.
그렇게 4, 5년이 흘러가고 우리 모두 자기 짝을 찾게 되었다. 그 중 몇몇은 결혼을 하고 또 그 중 몇몇은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정말 기쁘게도, 우리는 다시 일년에 한 번씩 모임을 갖게 되었다. 남자친구, 남편,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 모임!
올해는 천안에 숙소를 잡았다. 사실 천안에는 그닥 생각나는 관광지가 없어서 망설였는데, 서울, 경기와 당진의 중간 지점을 고르다 보니 천안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게다가 아이들때문에 방이 2개 이상인 펜션을 찾았는데, 굉장히 드물었다. 어렵게 찾은 것이 천안의 에벤에셀 펜션.
숙소가 천안시보다는 조금 위 쪽에 위치해 있어서 일단 안성에서 모여 관광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영주가 검색해서 결정한 곳이 '안성 너리굴 문화마을' 비누, 양초, 금속공예 등 각종 공방이 산 속 여기저기에 지어져 있고 비용을 내면 체험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워낙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인지라 체험까지는 할 수 없었고 길가의 꽃들과 푸른 나무들을 보며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초등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과 함께 가면 좋을 듯.
녹음 속에서 산책하는 친구들과 남편들. 저 멀리 아직 결혼 안 한 커플인 영주 커플은 화려한 신혼여행 룩을 하고 와서 주변을 푸켓으로 만들어 버렸다. ㅎㅎㅎ 전체공개되는 블로그에 얼굴 나오는 걸 꺼려할 부끄럼쟁이 친구들이기에 사진은 작게 작게~~~ ^^
산 속 민들레들은 도시 민들레들과 달리 정말 힘차고 건강해 보였다. 꽃씨도 어쩜 저리 완벽한 공모양인지~
계속 장난을 거는 승모삼촌을 윤우는 계속 경계했는데, 매점을 보고 "우리 까까 사러 갈까?"라는 한 마디에 바로 손을 덥석 잡더라는...큰 일 날 앨세. 얘야, 얘야..이래서 아이들이 유괴당하는 거란다. -_-;;;; 삼촌 덕에 마트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 본 윤우. 승모 삼촌의 화려한 남방이 범행 모의 현장을 더 생생히 살려 주고 있다.
문화 마을을 나와 점심을 먹고 숙소로 출발했다. 원래는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다시 더 밑쪽으로 내려가 계곡을 갈 예정이었는데, 숙고 옆에 조그만 계곡이 있었다.
물도 꽤 맑고 올챙이들이 바글바글~~~ 추기경 삼촌은 바닷가 소년의 능력을 보여주듯 맨 손으로 물고기를 잡아 윤우에게 보여주었다. 오오오오~ 야생!
추기경과 승모씨~ 같은 포즈로.....올갱이를 잡고 계시다. ㅎㅎ
남자분들은 이것저것 잡아서 윤우에게 보여주기 바빴다. 아이스크림에 물놀이에~ 이 날은 거의 윤우 생일!
물놀이까지 끝냈는데도 해는 중천~ 할 일 없다고 배 두드리고 있다가 급기야 5시부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ㅂ-;;;
바로 옆에 졸졸졸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앞으로는 푸른 산을 바라보고 맛있는 음식에, 좋은 사람들까지 함께 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펜션 자체를 보고 선택한 것이 아니라 방 2개라는 조건과 지리적 위치의 유리함 때문에 선택한 펜션이었기 때문에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이 곳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산 속에 위치한 (오랫만에 비포장 도로도 달려 보았다.) 펜션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연 속에 파묻힌 느낌이 그대로 드는데다, 한 팀만을 받는 독채 펜션이기 때문에 한 밤중에 옆 방의 함성 소리에 불쾌할 일도 없다. 마당과 뒤뜰도 무척 정갈하게 꾸며져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피아노가 놓여져 있는데 이게 꽤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승모씨는 모든 사람이 밥을 먹고 있는 틈이면 피아노 방으로 가서 독주회를 열기도 하셨다. ㅎㅎㅎ 체르니 40번까지 쳤어도 아직까지 외우는 곡이라고는 '젓가락 행진곡'과 '고양이 춤'이 유일한데, 승모씨는 여러 곡을 알고 계시더라는...사람이 달라 보였다. ㅎㅎ
윤우도 피아노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엄마가 멋지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내가 치는 '고양이 춤'을 자꾸 연주해보라며 시켰다. 엄마를 '피아노 치는 녀자'로 기억해 주렴.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화투'. 이번에는 꼬마 녀석들 차지가 되어 버렸다. 윤우는 삼원색 동그라미가 올림픽 오륜마크처럼 부분적으로 겹쳐서 그려져 있는 '조커 피'를 어찌나 애지중지 하던지, 나중에는 그 화투장을 들고 잠을 잤다. ;;;;
선희 아들 지성이는 완전 화투그림에 빠져들어서 꽃그림 골라내며 꽃과 나무라고 열심히 아는 척을~~~^^
이번 여행의 백미였던 캠프 파이어. 이것도 직접 와서 알게 된 이 펜션의 매력! 서늘한 초여름 밤공기 속의 캠프 파이어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승모씨가 불길 계속 살려내느라 고생하심. ^^) 따닥따닥 타오르는 불 앞에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불렀다. 나는 '개똥벌레' 노래를 부르다 다시 코 끝이 시큰해졌다. 개똥벌레로 레크레이션 율동 만든 사람 누구니..ㅜ.ㅠ 개똥벌레의 무너지는 심정을 당신들이 알어!!! 흑흑...
이번 여행 아침도 승모 요리사님이!!! 결혼하고 나니 누가 내 아침밥 차려주는 게 이리 좋을 수가 없다.
계속 짜다고 자기 비판을 하며 우리들의 기대를 낮추려고 하셨으나 맛은 역시 훌륭하였다. ^^
윤우에게도 한 입 주시는 모습. 아빠가 주는 것도 싫다며 엄마만 찾는 윤우가 어제의 '아이스크림 까까'에 마음이 녹았는지 승모 삼촌에게 '한 입'을 허락했다. ^^
내가 꿈꾸던 풍경이었다. 윤우가 좋은 어른들 틈에서 복작거리며 그 정을 느끼고 살아가는 것.
형제가 없는 나는 윤우에게 살가운 이모의 정을 평생 느끼게 해줄 수 없다는 게 항상 마음에 걸렸다. 시댁 쪽에 물론 고모와 고모부가 있지만, 누가 뭐래도 보다 정겹고 가깝게 느끼는 게 '외가'인데 말이다.
이제 마음이 조금 놓인다. 내 친구들이 윤우의 이모가 되어주겠지. 그리고 그들의 짝들 또한 윤우에게 좋은 어른들이 되어줄 것이다.
점심은 병천 순대로 마무리~ 승모씨가 '쏘신' 천안 호두과자를 각자 한 상자씩 끼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상처없는 영혼>에서 공지영은 남편따라 나간 모임에서 안면없는 아내들끼리 어색한 웃음을 교환하는 것에 치를 떨면서 아직도 주변인 취급을 당해야 하는 여자들의 억울함을 토로했었다. (http://whalesong.tistory.com/307 <상처없는 영혼> 리뷰) 이 책이 쓰인 14년 전에는 우리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같이 다짐했었다. 우리 결혼하면 더 못 보고 그러지 말자고. 오히려 남편들끼리 더 친하게 만들자고. 우리가 서로 더 큰 가족을 만들자고.
한 해, 한 해가 지나고 만남이 잦아지면서 우리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외동이었던 나에게 형제가 되어 주었던 그 친구들이 친구를 넘어 이제 윤우의 이모, 삼촌이 되고, 그렇게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이 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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