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자연 속 옛 것이 주는 감명... 본문

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자연 속 옛 것이 주는 감명...

고래의노래 2008. 8. 15. 22:25

내가 정보를 찾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는지라, 이번에는 현수가 여행지를 골랐다.
며칠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지더니 결정했다는 곳은 미천골 자연휴양림.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곳으로 계곡과 바다를 모두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여행을 가는 날은 푹푹 찌는 여름날씨가 끝나려는지 장대비가 내려 쌀쌀했다.
강원도에 들어선 이후에도 비가 그치질 않더니 양양에 다다르자 하늘이 말갛게 드러났다.

지난 번 청평 자연휴양림에서 느낀 실망감때문에 이번에도 별반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미천골 자연휴양림은 생각보다 훨씬 정갈하고 푸르른 자연 속이었다.

휴양림 내 펜션에서 짐을 풀고 나와 펜션 바로 앞 계곡물 앞 그네에서 흔들거리고 있는데
펜션 주인 아주머니께서 휴양림 안쪽으로 더 올라가 보길 권하셨다.
여러가지 볼 거리가 다양하다며.

날씨가 너무 추워 차마 계곡물에 들어갈 엄두를 내고 있지 못하던 터라
차를 끌고 위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비포장 도로를 계속 달리다보니 불바라기 폭포와 여러 야영지가 보였다.
가는 길 내내 까만 날개를 새처럼 펄럭이는 예쁜 나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자꾸만 차도 위 물구덩이에서 물을 먹고 있어서 지나는 내내 혹시 차가 나비를 밟은 건 아닌 지 조마조마했다.

상류 계곡에서 잠깐 물놀이를 한 후 내려오는데 '선림원지'라는 표시가 보이고
언덕 위로 탑꼭대기가 보였다.
'어? 문화재가 있나봐!" 라고 소리쳐 봤지만, 물놀이 때문에 온 몸이 잔뜩 추워진 친구들에겐 메아리일 뿐.-_-
마음 속으로 '내일 아침에 와봐야겠다.' 작게 다짐을 했다.

알람을 맞워놓은대로 7시에 눈을 뜨자마자 부스스 일어난 신랑을 채근하여 아침 산책을 나갔다.
동그랗게 머리에 구름을 인 산들에 둘러싸인 휴양림 공기는 자연의 깨끗함에 비온 뒤의 청량함까지 더해져
더할 나위없이 상쾌했다.

신랑과 손을 잡고 어제 차로 달리던 비포장 도로를 한산하게 걸으며 제법 거센 계속 물소리를 들었다.
걸은 지 10분쯤 지나 선림원지로 올라가는 계단에 다다랐다. 잠시 설명을 읽는다. 미천(米川)골이라는 지명은
선림원사에서 살씻은 물이 계속 내려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자, 옛 세계가 펼쳐졌다.
잠깐 낮잠을 자다가 신선들이 장기놀음을 하고 있는 낙원에 들어갔던 옛날 이야기 속 그 사람의 심정이 이랬을까.

구름을 안개처럼 품은 산자락 속에서 선림원지의 석탑, 석등 들이 1,000년이 넘는 내공 속에 강건하게 서 있었다. 사방은 조용하고 풀섭과 야생초는 아침이슬을 머금어, 걸음걸음마다 발목에서 찰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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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의 울타리 안에 빽빽히 필어있던 보라색 꽃.
탑을 빙 둘러 화사하게 피어있었는데 우직한 탑과 대비되어 재미있었다.
마치 높은 스님 밑에서 뛰놀며 재롱부리는 동자승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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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잔뜩 머금은 풀밭을 점박이 개구리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 너희들 정말 살맛나겠다.' 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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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원지를 그나마 멀리서 찍은 것이 이 사진밖에 없는데
사진 속 내가 오히려 풍경에 방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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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이 주는 여유로움과 이야기, 그윽한 눈길이 좋다.
하지만 미술양식을 논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없어서 항상 "느끼고만" 오는 쪽이다.
이번에도 돌아온 후에야 인터넷으로 선림원지를 찾아보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와 있는 곳이라고 한다. -0-
절절한 감흥없이 책장만 넘기고 있었구나. 나의 독서를 반성한다.

각 문화재에 대한 섬세한 설명은 들찔레 님의 블로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http://blog.naver.com/rock0190/70033633303

친구들이 기다린다며 재촉하는 신랑의 손을 잡고 선림원지를 떠나면서
계절이 바뀌면 꼭 다시 오리라 다짐을 했다.
지금 한 번 본 것뿐인데도, 한 여름 아침날의 선림원지가 그 어느 계절과 시간보다 최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만큼 나에게는 가슴을 두드렸던 감동.

꼭 다시 한 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