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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극단 연극 <안녕, 엄마>

고래의노래 2019. 1. 17. 23:43

 연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잘 한다기보다 무대에서 온 몸으로 나를 표현하는 그 느낌이 좋다. 학창시절에도 기회가 닿으면 기꺼이 즐겁게 연기를 했고 연극부에 들어가려고 오디션을 보기도 했었다.

몇년전부터 학교공동체의 학부모들과 극단을 만들고 싶어서 이리저리 여러 사람을 찔러보았지만 다들 선뜻 응하지 않으셔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마을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동네에 '여인극단'이 만들어진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내 안에 용암처럼 꾸덕거리는 이 뜨거움이 화산처럼 폭발할 기회가 생기는걸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멤버를 모으는 것부터 쉽지가 않았다. 나처럼 손들고 지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서 마을사업담당자께서 이리저리 홍보하며 직접 사람들을 끌어오셔야 했다. 그마저도 참여하셨다가도 이러저러한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간에 빠지시는 분들이 많았다. 5월에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9월 정도 되어서야 겨우 6명의 배우가 확정이 되었다.

 

 다양한 몸활동으로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맛을 조금씩 알아갈 즈음 대본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주제가 '엄마'로 모아졌다. 엄마에 대한 기억, 엄마와의 관계, 엄마를 대하는 나의 태도..이런 것들이 참 다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것은 '엄마'가 나에게 아직도 깊은 의미라는 거였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엄마와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들을 모아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엄마'라는 주제로 '극 속의 극' 형식으로 대본을 짜보기로 했다. '엄마와 딸'이라는 주제로 나와있는 기존의 연극 대본을 무대에 올릴까하는 이야기도 나왔었는데 막상 대본을 받아 읽어보니 모두 선뜻 내켜하지를 않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의 이야기였다.

 

 

 대본을 완성하고 배역을 정하는데 나는 살짝 고민이 되었다. 나의 에피소드를 내가 연기하면서 쏟아버리고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한 편, 상처로 남아 있는 그 당시를 재연하면서 혹시라도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평정심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었다. 내 장면은 내가 2명으로 나뉘어 표현되는데,  고민 끝에 나는 내 마음 속 목소리 역할을 담당하고 장면을 재현하는 배역은 다른 분이 해주시는 것으로 정하게 되었다. 해당 장면을 연습하면서 나는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과거에 내가 겪은 그 장면인데 내 앞의 사람은 그 때의 '그 사람'이기도 하면서 아니기도 했다. 연극 속에서는 '그 사람'이었지만 내가 내 속의 진실을 격하게 이야기한다고 해도 나를 상처내지 않을 것이 확실한 '안전한 벗'이기도 했던 것이다. 극 중 상황이 '실제로' 눈 앞에 펼쳐지지만 분명히 '가상'이기도 했다. 그 때가 조금 멀게 객관적으로 보이면서 지금은 그 때가 아니고 그래서 여기, 지금, 현재는 안전하다는 느낌이 따뜻하게 밀려왔다. 과거를 내가 바라는 미래로 새롭게 구성해보는 것만이 치유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 당시 상황과 나를 떨어뜨려서 인식하게 하고 '이제 지나간 일'로 여기게 했다.

 

 각 장면에 들어갈 안무 연습도 했다. 유쾌한 장면, 슬픈 장면, 때론 강렬하고 때론 코믹한 장면들을 몸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신나고도 후련했다. 특히나 나의 에피소드에 있는 살풀이 춤 장면을 연습할 때는 모두가 감정에 깊게 빠져들었다. 안무 선생님께서 어떠한 코칭도 없이 그저 몸이 가는대로 느낌을 표현해보라고 하셔서 시작하기 전에는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음악이 흐르고 기다랗고 하얀 천을 몸에 둘러보자 감정에 따라 몸이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슬픔, 분노,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 내가 춤을 추고 내 주변으로 모임벗들이 동그랗게 각자의 살풀이를 추었는데 음악이 끝났을 때 우린 같이 눈물을 흘렸다. 같이 눈물흘려주는 벗들의 마음이 어찌나 고맙던지... 나 혼자 시작했으나 나중에 '모두 함께'라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공연을 올릴 날짜와 장소가 확정되고 홍보작업에 돌입했다. 좀 더 완전하게 '우리가 만든 극'이었으면 해서 포스터는 내가 만들어보겠다고 자청을 했다. 많은 분들이 멋진 포스터라고 칭찬해주셔서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동네 이 곳 저 곳에 포스터가 붙고 공연날짜는 점점 다가왔다. 하지만 모두 저학년 학부모였던 배우들이 시간을 맞춰 모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턱없이 부족한 연습시간들을 단 한번의 공연기회라는 절박함으로 마법처럼 극복해내야 했다.

 

 

 조명이 준비되고 메이크업을 하고 이리저리 동선을 다시 확인하면서 관객을 맞을 준비를 했다. 심장이 엄청 두근거리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공연직전에 다리에 쥐가 난 걸 보니 나름 긴장을 했던 것 같다. 무대 위에 올라서서는 그저 공연 안에 흠뻑 취하려고 했다. '안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춤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한 거고 관객들에게 그것은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하신 안무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 동작과 목소리에 온 마음을 담았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의 무대를 직접 축하하러 와준 따뜻한 이웃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벅찬 감정을 느꼈지만 이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고 침착하려고 했다. 아쉽게도 이 날 남편은 일 때문에 공연을 보지 못했고 공연이 끝난 후 아이들을 봐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공연이 끝났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에 나는 아이들과 바로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울 준비를 해야했다. 아마도 공연 직후 올라왔던 감정들을 뒷풀이에서 해소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눌렀던 것 같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 고요해진 집에서 멍하니 새벽 2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마지막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모임벗들과 공연을 함께 준비하며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너무 소중해서 그저 감사할 뿐이다. 연극공연을 준비하며 많은 것을 새롭게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생각보다 나는 이미 단단해져 있었다. 과거의 상처가 재현되어도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다. 
몸으로 표현하는 구체적인 물성이 나 스스로에 대한 친근감을 주었다. 무언가 실제적으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가깝게 확인되는 느낌이었다.

꼭 나의 방식이 아니어도 일이 이루어지며 그것이 내가 바라던 방향이 아니어도 의미가 있었다. 내가 생각한 '최고'의 결과는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내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내가 열려있다면 모든 것이 '최선'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미 평가되어질 수 없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의 부분이며 우리가 함께 연결되었다는 느낌은 언제나 우리를 치유해준다. 이러한 치유의 연대감은 매번 뜨겁게 느껴지는 감정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느끼면 '믿게 되는' 감정이다. 지금 실제적으로 느껴지지 않더라도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그러한 믿음을 나에게 주었던 모임벗들에게 감사하다.

 

참으로 모든 것이 감사했던 경험. 이러한 경험을 2018년의 추억으로 쌓을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