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공공미술의 가능성 - 낙산 프로젝트 본문
성남문화재단의 모니터링 교육을 받으며 더욱 관심이 많아진 "공공미술"
그러던 중 우연히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서울 문화예술탐방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는데,
프로젝트 내용 중 "이것이 공공미술이다."라는 주제로 화요일마다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 한 달 전 참가 신청을 해두었었다.
지난 주의 일본여행의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아주 오래 전에 벼르고 신청해 두었던 탐방 프로그램이었기에 참여가 확정되었다는 메세지를 받고 화요일 아침 일찍 시청 앞으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25분쯤 일찍 도착하게 되어서 뙤약볕에서 서서 기다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벌써부터 알록달록 예쁘게 치장을 한 프로젝트 버스가 에어컨을 빠방하게 틀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정글"을 컨셉으로 꾸며진 내부장식이 재미있었다.
좌석 등받이 커버에는 밀림에 사는 각종 동물과 식물의 실루엣이 스티치되어 있었고,
기둥 부분은 담쟁이 덩굴로 장식되어 있었다. 버스 입구에는 실물크기의 원숭이 인형도 있었는데
버스에 다시 올라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만큼 묘사가 사실적인 인형이었다. -ㅂ-;;
미술기획자 윤태건님의 설명을 들으며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서울농학교의 담벼락.
학교의 학생들의 직접 그린 그림들을 타일로 이어붙여 멋진 벽을 완성하였다.
그 장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반영하면서도 그들과 소통하며 이루어지는 "과정 속의" 공공미술이 잘 나타나 있었다.
* 남녀의 만남. 가만히 서 있는 담벼락에서 이 둘 때문에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이번 탐방의 주요 관찰지인 낙산 지역.
2007년 9월부터 3개월간 "공공미술을 통해 사회 양극화 해소에 기여하고 공공미술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한다."는 목표 아래 추진되었다고 한다.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거의 최초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라고.
이러한 프로젝트에 낙산 지역이 선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우선, 문화의 메카라는 대학로를 근처에 두고 있지만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으며
최초의 국민주택이 남아있을 만큼 근대화가 처음 이루어졌으나 최근에는 "개발"부분에서 소외되었다.
전통적으로는 낙산이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되어 중요시되었고 궁녀들이 살았던 터가 남아있을 만큼
옛 문화와도 무관하지 않은,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흔치않은 지역이라고 한다.
* 가장 주목받는 한국의 젊은 조각가의 작품이라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정확한 시선을 받을 수 없도록 약간 삐둘어지게 만들어졌는데
오래 보고 있으면 마치 홀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눈이 어지럽다.
* "낙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예쁜 간판을 새로 달게 된 봉재집들.
예전에는 봉재작업을 하는 가게들이 더 즐비했다고 한다. 크고 눈에 띄는 간판들을 더 선호하셨던 터라
아기자기한 느낌의 이 간판을 달도록 설득하는 게 많이 힘들었다고...
* 낙산 지역의 명물 미화 이발관.
참관하는 사람들 모두 이 이발관을 지나면서 낙산 프로젝트의 일환이라 생각해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는데 정작 이건 이발관 주인의 "창조적인 작업" 이라고 한다!!!!
나중에 살펴보면서 더 깨닫게 되었지만, 주민들의 창의성은 전문가를 넘어선다.
언뜻 유치찬란해 보이는 빽빽한 광고 문구들을 빨강, 파랑, 하얀색만으로 구성하면서
너무나도 멋지게 살려내고 있다. 이발소 앞 자판기까지 세심히 신경써주시는 센스!!!!!
* 건조한 도시 담벼락에 옮겨진 바닷가 한토막
모두가 함께 보고 느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가장 중요시했던 것은
생활 속에서 보일 듯 말듯 묻어나면서 세월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미술을 구현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 돌담이 그림 속 낚시꾼들의 돌담이 되면서 그림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공유된다.
* 언덕 터널 안 쪽 벽화.
서울 농학교 벽화처럼 주민 참여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쓰레기통이 상주하면서 아주 지저분한 구역이었는데 깨끗히 정비하고 벽화를 그려놓은 후에는 말끔해 졌다가 최근에 다시 쓰레기통이 들어섰다고 한다. -ㅂ-;
* 세월과 함께 녹아버릴 것만같은 인물상.
이 같은 자연스러움이 낙산 프로젝트의 정신.
* 저녁 노을을 반사하는 유리판들
저녁에 어스름해지면 정서(西)족을 마주하고 있는 이곳으로 저녁 해가 떨어진다고 한다.
그 노을 빛이 아까워서 설치하게 된 노을의 물결이라고.
자연만큼 아름다운 예술은 다시 없을 것이기에~
* 분홍, 노랑, 파랑새들과 함께하면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힘들다기 보다 새처럼 훨훨 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 역시 주민 참여형 작품. 집주인이 직접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예술적 분위기는 또 다시 예술을 생활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예술 인력의 법칙! ^^
*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고 있는 산수화.
돌담에 있는 까만 이끼들을 그대로 살리면서 자연과 함께 그 형태를 달리 할 수 있는 산수화를 그려넣었다고 한다. 장소에 예술이 얹혀진다는 건 바로 이런 것!
*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뭇가지 위에 올렸지만,
아이들이 자기 작품(?)을 하나씩 떼어 주변 친구에게 선물하는 바람에 ^^;;
이제 몇마리 남지 않았다는 알록달록 새무리들.
* 저녁이 되면 노을 속으로 함께 걸어들어간다는 신사와 강아지.
낙산의 가장 높은 언덕 자락의 울타리 위에 허공을 향하여 설치되어 있다.
* 당장이라도 펄럭이며 날아갈 것 같은 낙산 경찰서.
한젬마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시민에게 한결 가까워진 분위기의 경찰서~
건축 속의 미술에서 공공장소 속의 미술, 도시계획 속의 미술을 넘어 이제 시민참여중심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공공미술.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을 활동에 참여시키다 보면 작품성이 하향 평준화되는 단점도 있다고 하지만, 낙산 지역에서 주민들 스스로가 보여준 창의성은 그 말을 무색하게 했다.
보통 이러한 지역 단위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지역주민들은 재개발이 지연된다는 이유때문에 이를 달기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시장 경제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이므로 그 분들의 그런 마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한 장소의 구조를 조금이라도 변경하려고 하면 여기저기 연계되어 있는 관공서에 허락받으러 다녀야 했는데,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여기저기 PT 하는 과정이 예술 작업보다 더 큰 일이었다고 한다.
예술이라는 것을 "필요"라고 보기보다는 "허울없는 사치"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기에 더 힘드셨다고 하는데
그래도 요즈음은 많이 의식이 개선되었다고.
문화적으로, 예술적으로 성장하고 생활한다는 것 또한 먼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 된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성남시의 태평동 프로젝트에서 생전 처음으로 붓을 잡은 아저씨, 아주머니가 이제서야 평생 한을 풀었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마음 속에 예술가를 키우고 있다는 것도...
한 여름의 뙤약볕이 너무나도 강한 날, 가파른 언덕을 이리저리 오르다 보니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생활영역을 존중하고,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을 깨지 않으면서 예술을 생활 속으로 불러들인
낙산 프로젝트의 맑은 정신을 느낄 수 있어서 뜻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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