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2016년을 되돌아보며 본문
이사를 하는 부산스러움 때문이었을까.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올 때 즈음에는 항상 일년을 글로 마무리해보고 내년을 새롭게 다짐하고는 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게다가 막둥이 1주기였던 그 날의 기록도 당일에 적지 못했네. 시간을 내어 따로 적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갈 만큼 내 마음이 벌써 안정이 된걸까.
천변을 산책할 때면 아이들과 에쁜 꽃을 꺾어 막둥이 나무에 놓아주고 막둥이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막둥이를 뿌린 곳이긴 하지만 막둥이가 그 곳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어느 날 천변의 나무들이 싹뚝 잘리고 막둥이 나무도 잘려진 것 보았을 때 심장이 쿵!하긴 했지만 그 때 뿐이었다. 슬퍼하지 않았다. 막둥이가 그 곳에 잠들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 곳에 남아 있는 건 막둥이를 보냈던 그 시간 속의 나와 내 남편이다.
첫째가 막둥이 나무에 꽃을 얹으며 "불쌍하다. 태어나보지도 못하고.."라고 말했다. 막둥이를 떠올리며 슬퍼하는 첫째의 모습에서 나는 간간히 위로를 받곤 한다.
11월 20일은 막둥이 기일이었다. 남편이 내가 미리 부탁했던 하얀 국화꽃을 사왔다.
나는 조그만 탁자를 국화로 장식하고 막둥이 초음파 사진첩이랑 요정인형, 막둥이까지 포함해서 3남매를 상징하는 조그만 3개의 양모 도토리, 제주도에서 우리에게 와주었던 막둥이를 추억하며 제주도에서 가져온 솔방울을 작은 상자에 넣어 '막둥이 기억상자'를 만들었다. 첫째가 밀랍으로 예쁜 별과 반지를 만들어서 막둥이에게 선물했다. 나는 이유식을 만들어 상에 올렸다. 아마 태어났으면, 지금쯤 이유식을 먹었을까.
상 양쪽에 초를 밝히고 제사 때 올리는 기도문을 읽고 다함께 기도를 했다. 눈물이 안나올 줄 알았는데 "막둥아.."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물을 줄줄 흘러내렸다.
기도를 마치고 국화꽃 한 줄기를 가지고 막둥이 나무로 향했다. 마냥 즐거운 둘째. 본 적도 없는 동생의 죽음이라는 건 아직 둘째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햇볕이 따스한 날이었다. 막둥이 나무에 꽃을 내려놓고 가만가만 나무를 쓰다듬었다. 욕심같아서는 봄이 되었을 때 다시 이 나무에서 싹이 나와준다면 좋으련만.
지난 한 해는 나에게 투쟁의 해였다. 투쟁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그러한 과정이었다.
막둥이의 죽음 이후 나는 혼란스러웠고 이 혼란을 잠재워 줄 답을 찾아댔다.
이제까지 믿어왔던 내 모습과 한참 다른 내 실상을 확인한 이후, 나는 나를 어떻게 정의내려야 하는지,
하느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나는 막둥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 자신에 대해서, 나의 종교에 대해서, 신에 대해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해본 1년이었다.
이 성찰의 과정으로 나를 이끌어 준 건 현주언니였다. 깊은 늪 속에 널부러져 있던 내게 "지금 이 책이 너에게 필요하다."며 <치유의 글쓰기> 모임으로 나를 이끌어내 준 현주언니. 언니 덕분에 1년 동안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분석심리학 3부작>,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읽으며 그렇게 파헤쳐보고 싶던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참 고마운 1년이었다.
베트남, 하와이로 가족여행도 다녀오고,
쪼물딱이라는 학교 안의 수공예 모임에서 인형도 3개 만들고,
윤우 생일 선물로 그림책을 만들어주었다.
몸은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다.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졌고 기절해서 쓰러지기도 하고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의 몸은 말하고 있었다.
"쉬어야 해."
몸이 이끄는대로 허리치료 열심히 다니고 많이 걷고 많이 쉬고, 욕심 부리지 않았던 시간들.
남편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육아와 살림의 많은 부분을 함께 감당해주어서 가능했었다.
막둥이를 보낸 이후 남편과 나의 관계에도 많은 굴곡이 있었다.
그 많은 변곡점들을 아슬아슬하게 지나 서로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2017년, 새해는 이솔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게 되고, 남편이 다시 회사로 복귀한다.
나는 운동, 그림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다른 취미생활을 하나 더 가져볼 생각이다. 책모임도 쭉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절대 욕심부리지 않기. 지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도를 하자.
내가 있는 이 자리를 따뜻하고 반듯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여전히 나의 가장 큰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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