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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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글이 될 때/치유의 글쓰기

9월 치유의 글쓰기 모임 중

고래의노래 2016. 9. 10. 02:41

안녕하세요, 치유반 친구들.
아이가 아팠던 분들 아이들은 이제 괜찮나요? 책이 아직 도착안했던 분들은 책 받으셨나요?

지난 시간에는 현주언니와 오붓하게 모임을 가졌습니다. 다들 이유가 있었지만 그냥 전 괜히 찔리는거 있죠. ㅜㅜ 융 입문서도 아닌 책으로 그 어려운 융을 시작하고자 했던 게 모두에게 부담을 준것 같아서요.

심란한 맘에 며칠 전에 도서관에서 융 입문서 중 한권을 빌려보았어요.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수유+너머 의 인문학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을 읽으니 아주아주 약간 더 융의 생각이 더 보였습니다.
근데 신기했던건 이 책에서 우리 모임 때 얘기했던 이성복 시인의 시와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인용하고 있는거예요. 반갑기도 했고 뭔가 길을 잘못 들진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저를 위로? ㅎ 했던건, 자서전과 관련된 융의 일화들이었어요.
융이 죽기 전 자서전에 대한 외부의 편집작업이 이미 시작되었데요. 그 작업은 매우 섬세했는데 융에 대한 선의의 걱정에서부터 출판 이해관계에 이르기까지 그 의도는 다양했습니다.

예를 들어 융의 어릴 적 환상 중 '신이 바젤 성당에 똥을 누었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똥을 떨어뜨렸다'로 바꾸었다고 하네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ㅎ 융이 당할 공격에 대한 방어막을 치면서 내용은 최대한 유지되게하려는 몸부림.

자서전 작업자 중 '헐'이라는 영문판 번역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융의 의도를 살리기위해 융에게 심할 만큼 꼼꼼하게 질문을 해댔다고 합니다. 융은 그(녀)의 이런 열성을 고맙게 여기면서도 번역자를 바꾸었어요.

"융이 직접 쓴 원본을 읽는다해도 오해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오해는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필사적으로 막아야할 무엇도 아니다. 그렇기에 융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오해들어 투덜거리면서도 방관자적으로 서 있었다....체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 삶의 순간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을 넘어서 이야기하는것은 융에게는 거짓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도 각자 체험한 부분에서 진실이며 거짓은 "이게 코끼리 전체야!"라고 말하는 순간이라는 겁니다.

어떠신가요? 저는 이 부분을 일고 융을 잘못 이해할까 전전긍긍하고 이 책이 아니었음 더 좋았을껄했던 마음이 좀 가라앉는 느낌이었어요.

어짜피 전 융의 생각을 제 경험치만큼 제 깜냥만큼 이해할 뿐입니다. 지금 다 이해하지 못한데도 그건 지금 저의 상황일뿐 그게 나쁜 게 아니겠죠.

추석 잘 보내시고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 만나 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