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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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사는 이야기/아이들이 자란다

나의 눈으로 나를 보기

고래의노래 2016. 8. 8. 23:22

윤우가 "난 얼굴 못 그린단 말이야."라고 두번째로 말했을 때 나는 "정말 한 때 때려주고 싶을만큼 화가 난다!"라고 하며 윤우를 노려보았다.

오늘 새로 산 책에 워크북이 딸려 있었는데 자신의 얼굴을 그려서 여권을 만드는 것이 첫번째 페이지에 있었다. 자동차, 비행기 등 기계류는 잘 그리지만 동물, 사람은 잘 그리지 못한다고 평소에도 윤우는 자신의 그림실력을 평가해왔다. 분명히 사람이나 동물을 그릴 때는 막막해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머리부터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발부터 그려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이 점이 윤우의 사람 그림을 어색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그런 것은 잘 모르겠지만 그림 그릴 때 어색해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못' 그리는 것은 아니다. 그리려고만 하면 사람의 형태로 그려내는데 내가 보기에 윤우가 말하는 '못 그린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었고 자신감의 문제였다.

윤우의 기질인지 우리의 양육태도 탓인지, 윤우는 평소에도 자신감없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는 못 해." "안 될 것 같애." "안되면 어쩌지?"와 같은 근심 걱정이 매일 줄을 잇는다.
그럴 때마다 용기를 북돋고 어르고 달래지만 계속되는 징징거림에는 우리도 싫증이 나고 짜증이 나서 결국에는 "그러면 하지 말든지!" "안해보고 걱정부터 하면 어떡해!"라며 언성이 높아지게 된다. 저렇게 몰아부쳐 보았자 우리가 원하는대로 아이의 자신감이 올라갈리 만무한데도 말이다.

오늘 저 장면도 결국 그런 패턴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윤우와 조용히 둘만 있게 되었을 때 윤우에게 물었다.
"윤우야, 엄마가 아까 왜 화냈는지 알겠어?"
당연히 아이는 모른다. 도리도리. 사실 저런 문제로 엄마가 화가 났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일 것이다.
아이가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화를 내다니! 마주하기 싫은, 내 아이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화가 났다.
이것도 찬찬히 되돌아 생각해보아야할 문제다. ;;;;

"윤우야, 윤우가 아까 사람 못그린다고 한 건 윤우가 구구단을 못외운다는 거나 자동차 운전을 못하는 거랑은 다른 이야기야. 당연히 윤우도 못하는 게 있어. '아직' 구구단 못외우고 '나중에' 어른되면 자동차 운전할 수 있게되는 거야. 하지만 그림 이야기는 달라. 윤우는 사람을 그릴 수 있어.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윤우 그림을 보았을 때 못그렸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윤우가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윤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림은 자신의 생각을 종이에 옮기는 것, 그리고 그걸 즐기는 것, 그거면 족한거야. 다른 누군가가 잘 그렸다 못 그렸다 이야기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윤우는 알았다고 했다. 글쎄..9살 아이에게..어려운 말이다.

자기 전 기도시간, 윤우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윤우야, 아까 엄마가 한 말 다시 이야기해 볼 수 있겠어? 아주 중요한 말이어서 윤우가 잘 이해했는지 엄마가 궁금해서 그래."

"알긴 알겠는데 말로 하긴 어려워."

"그래. 그럼 다시 말해줄께. 절대 다른 사람 눈으로 너 자신을 판단하지마. 이건 아주 중요해. 다른 사람 눈으로 널 판단하게 되면 삶이 행복해지기가 어려워."

"왜?"

"음...윤우가 열심히 노력해서 이만큼의 돈을 벌었어. 윤우는 아주 뿌듯해. 그런데 저 옆에는 이따~~만한 부자가 있어. 그 사람이 보기에는 윤우가 번 돈은 아주 적은 돈이야. 윤우가 그 사람 눈으로 윤우가 번 돈을 판단하면 어떻게 되겠어? 뿌듯함은 사라지고 '난 이만큼밖에 못 벌었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야. 그러면 행복하지 않겠지?
앞으로 윤우를 다른 사람의 눈으로 생각하지마. 오로지 너의 눈으로만 널 바라봐야 해. 자, 윤우가 이야기해봐."
(아이에게 쉽게 설명한다고 아이가 관심있어하는 돈으로 이야기를 했는데...지금 생각하니 다른 소재로 이야기할 걸 그랬다.)

"나의 눈으로만 날 보는거야."

"아까 윤우 얼굴 그렸어?"


"응"

"보여줘봐~"

윤우가 보여준 그림에는 벌어진 앞니가 예쁘게 그려진 웃는 윤우가 있었다. 아주 멋진 그림이었다.

"이것봐! 이렇게 멋지게 그리는데!!!"

나는 윤우를 꼭 안고 뽀뽀를 해주었다. 여전히 윤우는 자기 그림을 만족스러워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세상의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하기 싫어서 아이를 키우며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해왔다. 대안교육까지 선택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윤우는 꿈을 생각할 때 '앞으로 뭐하고 돈을 벌지?'와 같이 생각하는가 하면 '난 못생겼어. 결혼 할 수 있을까?'처럼 외적인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뭐가 문제였을까...고민해본다. 생활 속에서 우리 부부가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판단하고 평가하고 몰아쳤던 건지...

안아주고 사랑해주고 긍정해주고...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그것뿐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