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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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글이 될 때/치유의 글쓰기

맘맘토크에 참여하고 나서

고래의노래 2016. 4. 25. 23:50

몇주전 '냇물아 흘러흘러'에서 맘맘토크에 참여했다. 질문카드를 사용해서 사람들과 내면의 이야기를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잘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꺼라는 말에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막상 모임이 준비중인 공간에 들어갔는데 테이블 두 개에 질문카드가 쫙 놓여져있고 내가 다 모르는 사람들이고...이솔이는 칭얼대고 갑자기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같은 시간에 진행될 예정이던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모임에 참여하고 싶어지는 거다.

일단은 이솔이를 핑계로 모임을 먼저 시작하시라고 얘기한 후 잠시 이솔이와 밖에 있었다. 상황에 못 이기는 척, 맘맘토크가 아니라 치유모임에 참여할까 한 것이다.

그런데 치유모임분들이 오늘은 모임을 안하고 맘맘토크에 참여하시겠다고 해서 나도 자연스럽게 다시 맘맘토크 모임방으로 들어가고...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 내 마음이 닫혀있는 걸 스스로 느꼈다. 그다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느낌.

왜였을까. 일단 모임이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겉핥기 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꺼려졌다.

 

그런데 모임이 끝나고 나니 이 경험이 나에게 주는 여운과 울림이 있었다.

내가 뽑은 카드는 3가지 였는데, 그 중 "내가 내 인생에서 한 최고의 선택은?"이라는 질문이 가장 강렬하게 남았다.

살면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

일단 저 질문을 보고 맨 처음 생각난 것은 내가 삶에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했던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거였다. 상황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였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선택이라는 것을 상황을 무릅쓰는 용기라고 해석해서 그랬을까?

 

몇몇 선택들 중 내가 뽑은 것은 '아이를 임신하고 회사를 그만둔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나는 좀 놀랐다. 왜냐하면 지금 나는 한창 나의 인생의 항로를 점검하는 시기에 와있고 그래서 워킹맘들을 부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기 전에 나는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일을 그만둘 꺼라든지 절대 그만둘 수 없다는지 그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었다. 미리 이리저리 상상해보고 시나리오를 짜는 나에게 매우 드믄 일이다. 내 마음 속 두 마음이 갈등하는 것을 나는 적극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는데 아마도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이미 크지만 독립적인 여성상을 모델로 삼고 있던 그 때의 나는 그 마음을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저런 답을 내 스스로 하고 나자 '아, 내가 엄마로서 지내는 것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구나.'라고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것도 아니고 집안일이며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아니어서 능력상으로는 상당히 낮은 점수의 엄마인데도 난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매우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모둠의 구성원들 중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행동파분들이 계셨다. 난 하고싶은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은데 항상 의욕만 앞서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

일단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면 일단 책부터 사고 보는데 그마저도 온 즉시 독파하거나 하지 않는다. 심하면 몇년간 아주 오래오래 그저 책장에 꽂혀만 있다. 책을 산 행위만으로 이미 그것을 다 배운 듯 안도하는 거다...;;;;

열정적인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항상 컸다.

 

그런데 그 분들 중 한 분이 자신은 이렇게 행동이 먼저 나가는 자신의 성격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으며 진중하게 고민하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것이다!

아, 이런 성격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것일 수도 있는거야?

생각해보니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상대방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식의 말을 되내여 왔으면서 나에게는 항상 '바뀌어야만 해.' '오직 바꿀 수 있는 건 나 뿐이야!'라고 하면서 나를 닥달했던 것 같았다.

 

나의 이런 행통패턴이 나에게 불편함을 준다면 당연히 바꾸어야 하겠지만

그 불편함의 이유가 진짜 실생활에서의 불편함이 아니라 단지 이상향과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라면

내 장점을 인정하면서 조금 더 나를 느긋하게 바라봐주는 것 어떨까 싶다. 

 

내가 내 현실을 생각보다 사랑하고 있었음을 그리고 내가 훨씬 사랑받을 만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