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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깨어있는 소비자되기

쇼핑의 고단함 - '완벽한 물건'은 과연 존재할까?

고래의노래 2012. 1. 26. 00:51
몇 달 동안 사려고 벼르던 아이템이 있었다. 고구마와 귤을 항시 담아두고 먹을 수 있는 그릇.
이제까지는 오목하고 넓적한 유리그릇을 썼었는데 윤우가 이 그릇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안 깨지는 안전한 그릇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로 사소하고 그 용도마저 소박한(-_-;;) 물건임에도 내 마음에 드는 상품을 발견하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가격이 높으면 내 주머니 사정도 문제이거니와 물건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은 내 마음과 맞지 않았고, 그렇다고 가격이 너무 낮으면 '이 가격은 누군가를 부당하게 희생시켜서 얻어낸 결과일테지.' 싶은 생각에 꺼려졌다. 적당한 가격에서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물건을 하나 구매하는데 여러 날(또는 달)이 소요되는 나에게 쇼핑은 고행일뿐 선택의 즐거움이 아니다. 게다가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해당 카테고리의 모든 상품에 대한 비교가 가능해졌다. 선택의 폭이 늘어난 만큼 쇼핑에 대한 내 멀미도 심해졌다. 인터넷에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서 오히려 내가 원하는 내용을 찾지 못하고 피곤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소비활동이란 것이 점점 압박스러운 선택의 연속이 되고 있지만 이건 현재의 모든 소비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인데 왜 나만 유달리 쇼핑이 고단하기만 할까. 생각해보니 이건 완벽한 소비를 하고 싶은 나의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에게 있어 완벽한 물건란 판매자의 선한 의도와 매력적인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의 교집합이다. 그런데 이것도 소비재에 따라서 각 요소의 중요도가 달라진다.

이러한 나의 소비 성향을 정확하게 알게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 해 여름 한달 동안 나의 금전 거래내역에 대해 하루하루 리포트를 써서 제출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던 것이다. 거래에 대한 신뢰도가 실제 거래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소비자심리학 대학원생분들의 논문 자료용이었는데 소비에 대한 나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매우 좋은 기회였다.

리포트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거래를 신뢰한다는 의미가 상품에 대한 신뢰냐, 판매자 또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냐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리고 리포트를 꾸준히 쓴지 한달쯤 지나자 구매품의 영역에 따라 거래시 중요시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공산품(책, 옷 등)은 ‘만족’을 중심에 두고 선택하고 먹거리와 서비스는 ‘신뢰’에 중심을 두고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책 구매를 보면, 책은 완성품으로 어느 곳에서 구매를 하든지 똑같은 제품이다. 즉 판매자에 따라 달라지는 성질의 제품이 아니므로 이런 경우 철저하게 가격 위주로 가게 된다. 합리적인 낮은 가격에 좋은 제품을 구매했을 때의 ‘만족도’에 철저하게 기울게 되는 것이다. 옷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이것은 판매자에 따라 디자인과 질이 달라지지만 일정 수준의 가격대에서 만족할 만한 제품을 적당히 구매하게 된다. 나는 공정무역으로 판매되는 옷들에 관심이 많고 이를 즐겨찾기 해 놓고 있다. (http://www.fairtradegru.com) 친구와 이 곳의 오프라인 매장에 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한 번도 이 곳의 옷을 사본 적은 없다. 이 곳의 좋은 ‘의도’에 도 불구하고 옷에는 그만큼의 돈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게 일정 영역에서는 거래의 신뢰도가 구매로 연결되지 않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하지만 먹거리의 경우 우리 몸의 건강,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판매자의 의도를 제일 우선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신뢰를 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손해를 보더라도(가격이 높더라도) 너를 믿는다 (건강한 먹거리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의료, 미용 등 서비스 분야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라고 생각되는데, 이 경우에는 ‘의도’에 대한 신뢰보다도(물론 의료에서는 이것도 있겠지만) 기술력에 대한 신뢰가 아닐까 싶다.

며칠 전 EBS에서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슈퍼박테리아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 방송에 따르면 슈퍼박테리아의 원인이 독일의 한 농장에서 재배된 콩 새싹으로 강하게 의심되는데 이 곳의 콩들은 여러 나라에서 수입된 콩으로 재배된다고 한다. 그래서 현지 농장의 잘못이라기보다 수입과정에서의 감염에 무게를 두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푸드마일리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푸드 마일리지는 생산지와 소비자간의 거리를 나타내는데 푸드마일리지가 늘어날수록 환경보호 측면(유통 과정에서의 이산화탄소 배출)에서도, 건강면에서도 유해하다고 한다.
건강상의 문제는 최상의 신선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면도 있지만, 식품의 보관행위 자체에 있다. 장시간 먼 곳으로 운반하려면 냉장, 냉동 유통을 거칠 수 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세균, 박테리아들이 묻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화장실과 휴대폰보다 냉장고가 더럽다는 뉴스와도 일맥상통한다. 냉장고는 신선도를 보장하는 기계라는 생각에 위생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각종 오염군의 온상이 되고 이것이 냉장고에 있던 먹거리를 통해 고스란히 우리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이 작은데도 푸드 마일리지가 꽤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극심하게 비효율적인 유통구조에 있었다. 전국의 농산물이 서울의 가락시장으로 모인 뒤 다시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는데, 강원도에서 온 채소가 다시 강원도로 되팔려가는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_-;;; 건강한 식품소비의 대안으로 방송에서는 재래시장을 언급했다. 하지만 재래시장이라고 수입산을 팔지 않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원산지 표시도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렇다면 결국 농민, 어민과 소비자간의 연결단계를 최소화하는 <한살림>(www.hansalim.or.kr/)과 같은 생협들과 제철 꾸러미 농산물 직거래 장터인 <언니네 텃밭>(http://we-tutbat.org/)등이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원하는 그릇이 없다는 푸념이 샛길로 빠지고 얘기가 거해졌다. ;;;
그릇 구매에 대한 결과를 얘기하자면, 결국 내가 원하는 것과 비슷한 그릇을 발견하고 구매할 수 있었다. 예전처럼 인터넷에서 눈이 빠질 만큼 뒤진 결과였다. T-T 하지만 어쨋든 저 그릇이 오자마자 고구마와 귤을 올려놓고 어찌나 흐믓하던지 사진을 찍고 남편에게 전송할 정도였다.

구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돈'을 지불한다는 고용자의 입장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 힘에서 오는 보람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결과물의 외형에서만 가치를 찾으려 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깐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손살림', '자급자족'을 하고 싶다. ㅠ.ㅜ 소비자에서 창조자가 되고 싶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나의 아이에게 내 손으로 옷을 해 입히는 것이다. 아직 재봉틀도 없고 재단의 기본도 모르는데다가 뜨개질은 학창시절의 희미한 기억인 겉뜨기 안뜨기 밖에 모르기 때문에 아마도 목표를 '올 겨울 아이와 남편 목도리'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그리고 10년 넘게 내가 사지 못한 아이템이 있다. 진한 빨간색에 적당히 크고 지퍼가 달린 가방. 이건 재봉틀을 사게 되면 맨 먼저 만들고 말리라!

쇼핑의 고단함을 접고 손의 고단함을 선택한다면 결과물이 어떠하든 그 물건은 나에게 완벽할 것이다.
창조자는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게 되어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