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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깨어있는 소비자되기

자연스러운 살림 한걸음

고래의노래 2011. 12. 9. 23:00
자극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만큼 어려운 게 있을까. '자연(自然)'스럽다는 말 그대로 스스로 그러하게 흘려두었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 판이다. 시류를 거슬러 오르는 푸닥거림이 있어야만 저 한 쪽 구석에 놓인 자연스러운 삶과 겨우 마주칠 수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는 이제 범국민적인 것이 되어서 유기농 식품에 대한 선호가 날로 느는 것 같다. 그 흐름이 자연도 살리고 우리도 사는 '손잡은 유기농'이 아니라 '특별한 고급 먹거리'쪽으로만 기울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우리 가족도 먹을거리 쪽에 대해서는 일찍 눈을 떠서 한살림과 생협을 이용하고 장을 보면서 첨가물을 확인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생활주변의 물품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연스럽지 못했는데 이번에 큰 결심을 하고 몇 가지 변화를 주었다. 

1. 전자렌지 없는 삶 - 가능했다!

몇 주 전 전자렌지를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하고 돌아왔다. 이제 우리 집에 '전자파 기계'가 사라진 것이다!

전자렌지의 원리는 전자기파가 음식 안의 분자들(특히 물분자) 안의 양전하와 음전하의 위치를 빠르게 바꾸면서 회전시켜, 이 분자의 회전에 의해 분자들이 서로 밀고 당기거나 충돌하는 운동에너지로 음식을 데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자 내 전하들의 빠른 회전이 분자의 성질까지 바꾸면서 식품 내의 의도치 않은 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고 한다. 물을 전자렌지로 데우고 식힌 후 식물에 꾸준히 부어주었더니 식물이 죽어버렸다는 실험 이야기도 들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도 무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거부하는 판에 집에서 손쉽게 분자변형 음식물을 먹는다는 건 아이러니다. 이렇게 전자렌지의 전자파가 유해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기계의 손을 놓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초등학교 때 우리 집에 처음 전자렌지가 들어왔던 날을 또렷히 기억한다. 누르면 뾱뾱 소리가 나는 그 기계가 너무나 신기해서 나는 무조건 내가 그 버튼을 누르겠다고 선언을 했었더랬다. (친정에서는 아직도 그 때의 그 전자렌지를 사용하신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근 20년간 전자렌지와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그 손을 어찌 그리 쉽게 놓을 수 있겠는가..ㅜ.ㅠ 냉장고에 들어있던 찬 밥과 온갖 반찬 데우기부터 단호박 찌기, 달걀찜에 행주살균까지 되는 요 신통방통 편리한 기계를 말이다. (살균되는 기계에 음식을 넣었었다니 생각해보니 섬뜩하다!)

언젠가는 없애야지 하며 미적거리다가 이제 윤우가 좀 더 크면 빵을 만들어 간식을 해줘야 한다는 핑계를 들어 전자제품 가게로 광파오븐을 보러 갔다.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이건 그냥 전자렌지다. 빵이 되는 전자렌지라는 게 다를 뿐. 광파오븐의 다음 타자로 눈독을 들였던 컨벡스 오븐을 살펴보니 해동기능이 있기는 한데 바람으로 해동시키는 거라 매우 오래 걸리고 속까지 해동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아무 것도 사지 못하고 광파오븐을 사면 가게에 반납하고 와야지 했던 전자렌지를 자동차 트렁크에 둔 채 이 김에 잠정적인 실험주간에 들어갔던 것이다. 과연 우리가 전자렌지없이 살 수 있나 확인해보는 실험!

처음 며칠은 정말 난감했다. 전자렌지 대신 항상 커다란 찜기가 밖에 나와 있어야 했고 냉동실에 있던 떡을 찌면 물이 뚝뚝 떨어지고 흐물거려서 먹기가 참 난감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시행착오 끝에 결국 전자렌지 없는 삶에 안착하게 되었다. 아래에 방법을 적어본다. 전기밥솥의 활약이 돋보인다. ^^;

- 거대한 찜기 대신에 구멍뚫린 작은 삼발이를 편수 냄비에 넣고 사용하니 훨씬 공간 절약이 되었다.
- 찔 때는 꼭 젓은 면보를 함께 사용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음식이 흐물거리게 된다.
- 찬 밥은 먹기 30분 전쯤 전기밥솥에 넣어두었다. 급하게 냉장고의 찬 밥을 덥혀야 할 때는 찬 밥을 밥솥에 넣고 물을 조금 부은 다운 백미취사를 누르면 말랑해진다. 얼린 빵이며 얼린 피자도 전기밥솥으로 덥혀 먹일 수 있다.   
- 냉장고에 넣어 차가워진 부침, 튀김 요리들을 후라이팬에 살짝 데워서 먹었다.
- 구운 조기 같이 부피감이 있는 반찬이 차가워졌을 경우 후라이팬에 기름을 아주 살짝 두르고 올린 뒤 팬이 달궈지면 물을 조금 넣고 두껑을 덮어 증기로 가열하는 방법을 썼다.

전자렌지가 없어서 음식을 덥혀 먹기 힘들어지니 좋아진 점은 매번 먹을 만큼의 양만 요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손품은 더 드는 일이지만 신선하고 건강한 요리를 먹을 수 있으니 몸에는 확실히 더 좋겠지~ ^^

2. 전기렌지 사용하기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여성들이 폐암에 걸리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가스렌지때문이라고 한다. 가스렌지에서 미세하게 새어나오는 가스를 오래 흡입하다보니 이것이 암까지 키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스렌지를 쓸 때는 반드시 환기팬을 틀어야 한다. 창문까지 열어놓으면 더 좋다.
생각같아서는 가스렌지를 통째로 전기렌지로 바꾸고 싶었지만, 직화구이에 대한 미련과 어마어마한 가격때문에 포기하고 1구짜리 전기렌지를 구매했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물 끓이기나 국 끓이기 같은 기름 튈 일 없는 일에 사용하고 있는데 아주 만족한다.

3. 섬유유연제 대신 식초로
아이와 어른 빨래를 같이 빨기 시작하면서 섬유유연제가 껄끄러워 식초를 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섬유유연제 넣었을 때랑 부드러움의 차이도 못 느껴질 뿐더러 내가 싫어하는 유연제 냄새가 안 나서 너무나 좋다. (적당히 넣는다면 식초 냄새는 나지 않는다.) 더군다가 식초는 세탁기 내부 때끼는 것도 방지한다고 하니 일석이조.

4. 쌀독을 장만하다.
한살림을 통해 쌀독 옹기를 마련했다. 이제까지는 플라스틱 통에 쌀을 담아두고 먹었었는데, 다른 음식처럼 그 때 그 때 바로 먹는 것이 아니라 쌀은 오래 두고 먹다보니 아무래도 담긴 그릇의 영향을 받지 않을까 싶어 큰 맘 먹고 구매했다. 옹기가 숨을 쉬어서 쌀이 상하는 것도 방지하고 더 신선하게 보관된다고 하니 믿어보자. ^^ 


5. 천연가습과 가습기 - 절충안을 찾다.
쌀독을 구매할 때 숯을 담아둘 커다란 항아리 뚜껑도 함께 구매했다. 그리고 집 안에 흩어져 있던 숯을 하나 둘 모아서 넣고 물을 가득 부었다. 드라마틱한 가습효과는 없다. 가습기 살균제때문에 요즈음에 천연 가습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천연 가습기로는 원하는 만큼의 가습효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벤타같은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면 확시히 가습효과가 있긴 한데 우리는 겨울에 추워서 도저히 쓰지 못한다. 우풍 막을려고 바둥거리는데 공기청정기에서 나오는 차가운 바람을 직방으로 맞고 있기는 힘들다. ㅠ.ㅜ
그래서 우리는 가습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매일매일 가습기를 청소하지는 못하지만 자기 전에 가습기 물을 모두 버리고 건조를 시킨다. 이것만으로도 세균 증식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6. 스텐팬 사용하기
스텐팬은 전자렌지 버리기와 함께 우리의 '자연주의 삶'의 척도, 로망이었다. 오랫동안 써 왔던 테팔 후라이팬의 코팅이 일부 벗겨지고 음식이 타기 시작하면서 과감히 구석에서 스텐팬을 다시 꺼냈다. 스텐팬에 대한 열정은 현수가 훨씬 강하다. 나는 그 당위성을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조금 수동적인 편. 아직 부침개같은 본격적인 팬요리에는 스텐팬을 쓸 엄두를 못내고 국물많은 자작한 나물요리나 불고기 요리 등을 할 때만 사용하고 있다. 점점 더 익숙해지면 스텐팬 위에서 부침개가 춤추듯 미끄러지는 경험을 할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