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너 행복하니?> - 그 청년들은 어떻게 행복한 사람으로 컸을까 본문
너, 행복하니? - 김종휘 지음/샨티 |
가끔 윤우가 저렇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싶은 청년들을 볼 때가 있다.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좁은 통나무 계단을 올라가는데 우리 바로 앞에 남고생 3명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른들에게는 예뻐 보이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 이 시절이 정말 행복했다고 생각되겠지?"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현명함에 흐뭇했다. 청소년들이란 그리고 특히나 남고생들이란 미래와 과거가 아니라 철저히 현재에 살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미래는 닿고 싶지만 멀고, 과거는 지워버리고 싶은 유치함이다. 시간은 정지된 듯 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진다. 미래의 눈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현명함은 아직 젊음의 능력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할 줄 알았다. 일단 이것을 알면 자신의 인생을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는 훈훈한 여대생을 보았다.
내 옆의 할머니 한 분이 자기 옆의 다른 아주머니에게 신촌역이 몇 정거장이나 남았냐고 물어보면서 창 밖으로 정류장 이름이 잘 보이지도 않고 방송도 또렷히 들리지 않는다며 잔뜩 긴장하고 계셨다.
그러자 할머니 바로 앞에 서 있던 여대생이
"할머니, 저랑 같이 내리세요. 저도 신촌에서 내려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인생의 시름이 한순간에 사라진듯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윤우를 데리고 있는 '대중교통의 약자' 입장이 되다보니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젊은이를 보면 너무 고맙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인간에게 '이타성'이 본능으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나 이외의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다는 건 현대 사회에서 분명 관성화된 습관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렇게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면서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며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윤우가 도서관의 남고생들처럼 인생의 소중함을 미리 깨달아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서 '행복의 방향'을 찾고,
지하철의 여대생처럼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행복의 폭'을 넓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이 책은 당당하게 "너 행복하니?" 라고 묻는 행복한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책에서 인터뷰한 24명의 청년들의 선정기준은 좋은 대학도 번듯한 직장도 아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벤처 사장이 되어 있는 '엄친아'에서 쪽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으며 자신만의 음악을 반응없는 세상에 끝없이 던지는 '배고픈 예술가'까지 그 스펙트럼이 정말 다양하다. 기준은 단 하나, 그저 '스스로 행복하냐고 느끼냐'이다. 물론 그 행복은 자신만을 만족시키는 쾌락이 아니라 주변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강한 에너지이다.
부모가 된 나로서 내 흥미는 이것이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저렇게 되었을까.'
한 마디로 이런거다. '부모가 어떻게 키운걸까!'
그런데 이들 중 부모님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지지를 받은 그룹도 있지만 부모와의 갈등 끝에 가출한 사람도 있고 아예 부모가 자신을 버려 다른 친척이나 시설에서 자라난 사람도 있었다. '어짜피 될 놈은 된다'는 공식이 또 다시 힘을 받는다.;;;; 부모의 영역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난 또 그 한계 안에서의 최선을 알고 싶은 거다.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나같은 독자를 위해 친절하게 그들의 공통점을 요약해 놓았다.
1. 자원봉사
2. 어른 후원자
3. 외국인 친구
4. 인터넷 글쓰기
5. 핵심 또래 그룹
6. 스승을 구하러 찾아다닌다.
7. 사회운동
8. 폭넓은 독서
9. 취미활동
10. 몰입
11. 정보를 구하는 방법을 안다.
12. 권리찾기에 적극적
13. 조직하기를 즐겨한다.
14. 대안교육
15. 양성평등
16. 아르바이트
17. 부모와의 거리
18. 어울리기를 즐긴다.
19. 위기를 기회로
20. 항상 웃으며 산다.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것처럼(리뷰 : http://whalesong.tistory.com/427)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다. 자신의 행복을 남의 손에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경우는 맨 첫번째 인터뷰이였던 '예진'이었다.
'번듯하게'(!) 연세대에 합격해서 부모들에게 가장 모범적인 표본이 될 법한 이 아가씨는 '구하고 찾는 내공'이 남다르다.
'웃음'이라는 테마로 중1때 우표전시를 준비하며 얼굴도 모르는 전국 의과대학교수 50명에게 자필로 편지를 썼다고 한다. "이런 웃음은 어떤 근육을 쓰고 건강에는 어떤 영향을 주나요?"라며 웃음과 인체, 건강에 대한 질문을 쏟아부었다.
한 편지당 내용이 a4 4장이었는데 이걸 일일이 손으로 썼다는 거다! 정성은 역시 통해서 5명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 중 가톨릭 대학 한승호 교수는 자신이 번역한 원서의 복사본에 중요대목에 색칠까지 해서 단행본 분량 자료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메일로 안부를 묻는단다. 이런 에너지가 정말 부럽다.
그녀의 부모는 사람들을 좋아해서 집 안에 항상 손님들이 넘쳐났고 떠들썩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또한 아이의 글짓기 대회에 동행해서 엄마 자신도 옆에서 시를 쓰고 품평을 나눴단다. 아이에게 과일 깎아주고 입에 김밥 넣어주고 옆에서 드러누워 낮잠자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교감을 하는 방법은 이렇게 좀 더 창의적일 필요가 있다. 그건 때론 무조건 아이에게 맞추는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어른의 수준에으로 대하는 상향평준화를 통해서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온 청년들은 모두 '참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한번 물꼬가 트이면 그 이후에는 원하는 흐름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책의 저자를 수소문해서 만나고 그 사람에게 민주주의 학회 공부를 알게되는 방식이다.
아이의 미래를 상상해보았을 때 가장 무서운 것은 윤우가 '냉소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삐뚫어진 열정이라고 해도 마음에 에너지가 있다면 그 방향성만 고민하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아예 차갑게 식다못해 눅눅해져 불조차 피울 수 없게 된 마음이라면 어찌해야 할지...요즈음 아이들이 딱 이런 모습이어서 참으로 안타깝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부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성적만이 평가의 잣대인 학교를 통과하며 자신만의 잣대를 가질 수 있게 가이드하는 것, 질문자가 되는 것이다. 여러 경험에 대한 접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그 중 하나일테지. 윤우가 학교 밖 세상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어짜피 아이의 미래를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너른 품성과 불타는 열정을 함께 지닌 이 청년들의 배경을 흘끔거리는 이유를 한 인터뷰이 청년의 한 마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은 타고나지 않고 (부모님의) 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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