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사랑의 기술> - 감히 아무도 사랑하지 마라. 너 자신을 사랑하기 전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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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 감히 아무도 사랑하지 마라. 너 자신을 사랑하기 전에.

고래의노래 2010. 11. 16. 14:56
사랑의 기술 - 10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문예출판사

   본래 이 책이 '연애의 기술' 따위를 다룬 책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그 점에만 집중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이 책이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책이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래서 모성애 얘기가 나왔을 때 놀라고, 신에 대한 사랑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다. (요즈음 계속 신에 대한 믿음의 문제 때문에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 또는 위대한 힘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지 한참 고민하는 중이다.)
   이성 간에는 성적 결합에 대한 기본 욕구가 있고 이를 통해 일치를 경험하고자 한다는 것은 동성애를 포용하지 못하는 의견이고, 모성애와 부성애를 따뜻한 감성과 차가운 이성으로 구분짓는 경직성도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지혜를 보여준다.
   이건 부모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이다. 그 어떤 육아서보다도 자식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법을 핵심을 꿰뚫으며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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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현재의 상태, 곧 그녀의 자식으로 남아 있는 것 뿐이다....어머니의 사랑은 보답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획득할 수도, 만들어 낼 수도, 통제할 수도 없다.
   아버지의 사랑은 조건이 있는 사랑이다. 아버지의 사랑의 원칙은 '너는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너는 네 의무를 다하고 있기 때문에...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어린애의 생명을 안전하게 하는 기능을 갖고, 아버지는 이 어린애가 태어난 특수 사회가 직면하게 하는 문제들을 처리하도록 어린애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어머니는 생애의 일부를 어린애가 독립해서 마침내 그녀로부터 떨어져나가기를 바라는 소망에 바쳐야 한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린애에게 능력감을 증대시켜야 하고 마침내 어린애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권위를 갖고 아버지의 권위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성숙한 사람은 밖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어 내면에 그 모습을 간직하는 것이다....자기 자신의 사랑의 능력에 어머니다운 양심을 간직하고 자신의 이성과 판단에 아버지다운 양심을 간직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정신적 건강과 성숙의 기반은 어머니 중심 애착으로부터 아버지 중심 애착으로의 이와 같은 발달, 그리고 이러한 애착의 궁극적 종합에 있다.

   원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는 아니다. 사랑은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모성애는...어린애의 생명과 욕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다. 이것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보호와 책임이다. 또 하나는...삶에 대한 사랑을 천천히 가르쳐 주고 '산다는 것은 좋은 일이고 소년 또는 소녀인 것은 좋은 일이고 이 지상에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는 감정을 갖게 하는 태도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는 '젖'을 줄 수 있으나 '꿀'(삶에 대한 사라으, 살아있다는 행복감)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꿀을 주게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일 뿐아니라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모성애의 참된 본질은 어린애의 성장을 돌보아 주는 것이며 이것은 그녀로부터 어린애가 분리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뜻이다....이 단계에서 모성애는 비이기성, 모든 것을 주면서도 사랑하는 자의 행복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능력을 요구하는 어려운 과업으로 변한다...자아도취적이고 지배욕과 소유욕이 있는 여자는 어린애가 연약할 때만 '사랑하는' 어머니로서 성공할 수 있다.
   오직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여자, 받기보다는 주는 데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 여자, 그녀 자신의 실존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여자만이 어린애가 분리의 과정을 밟고 있을 때에도 사랑하는 어머니일 수 있다....여자가 '사랑할' 수만 있다면, 다시 말하면 그녀가 그녀의 남편, 다른 애들, 낯선 사람들, 모든 인간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여자는 참으로 사랑하는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어머니는...그녀의 어린애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의식적으로 믿으면서 사실은 그녀의 관심 대상에 대해 깊이 억압되고 있는 적의를 가지고 있다. 이 어머니는 어린애를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애를 사랑할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을 보상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이다.

* 신에 대한 사랑

   신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하는 것이 자신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이 문장의 가장 적합한 번역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나의 이름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하라." 헛되이 신의 형상을 만들지 말고, 쓸데없이 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고 궁극적으로는 신의 이름을 전혀 말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것도 동일한 목표, 곧 신은 아버지이고 사람이라고 하는 생각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주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만일 그가 일신론적 관념의 본질에 따른다면, 어떤 일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그는 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그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 겸손하다.
   나는 엄밀한 일신론의 결론과 정신적 실재에 대한 궁극적인 비유신론적 관점은 비록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 싸울 필요가 없는 두 견해라고 믿고 있다.

   세계를 궁극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고가 아니라 행위에, 곧 일체성의 경험에 있다....신에 대한 사랑은 사고를 통한 신에 대한 지식이거나 인간의 신에 대한 사랑에 관한 사상이 아니라, 신과의 일체성을 경험하는 행위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 어린애가 어버이의 원리를 확립하고 스스로 자기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는 것과 같은 발달.

* 이성 간의 사랑

   행복한 결혼에 대한 실천지침들은 결코 '핵심적 관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는 서로 예의바르게 대우하고 서로 더욱 호의를 가지려 노력하는 두 사람 사이의 원활한 관계이다.
   '이혼'은 적어도 자식들에게 인간은 용감한 결정에 의해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음을 가르쳐 줄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 그들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사귈 때, 그러므로 그들이 각기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사랑은 휴식처가 아니라 함꼐 움직이고 성장하고 일하는 것이다.
   사랑의 현존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의 증거가 있을 뿐이다. 곧 관계의 깊이, 관련된 각자의 생기와 힘이 그것이다. 이것은 사랑을 인식하게 하는 열매이다.

* 사랑의 실천 - 훈련, 정신집중, 인내

   정신집중 -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 우리는 스스로에게 민감하지 못하면 정신집중도 배우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민감한데 이는 불안, 근심이 아니라 어린애가 보내는 의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을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빈틈없는 균형상태에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울하다면 우울한 생각으로 우울감을 부채질하는 대신 '무슨 일로, 왜 내가 우울한가?"하고 묻는다.

   비합리적 신앙은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복종을 바탕으로 하는 믿음이다. 합리적 신앙은 자신의 사고나 감정상의 경험에 뿌리박고 있는 확신이다. 이는 어떤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확신이 갖고 있는 확실성과 견고성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그의 기본적 태도, 그의 퍼스낼러티의 핵심의 불변성 그의 사랑의 불변성을 의미한다...예컨데 그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의 존재는 자기 자신의 일부로 변화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신앙을 갖고 있다는 또 다른 의미는 다른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신앙과 관계된다....이러한 조건 중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는 어린애의 생활에 대해 중요한 인물이 이러한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다. 이 믿음의 여부에 따라 조작과 교육이 갈라진다. 교욱은 아동이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도와준다. 교육과 반대되는 것이 조작이며 조작은 이러한 가능성의 성장에 대한 믿음의 결여, 그리고 어른이 어린애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억압할 때 비로소 어린애는 올바르게 되리라는 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신앙은 '인류'에 대한 신앙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는 적절한 조건만 주어지면 인간에게는 평등, 정의, 사랑의 원칙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질서를 수립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상이다.

   사랑은 오늘날의 서양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주변적 현상이다. 여러가지 직업이 사랑하는 태도를 허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산 중심의 상품에 탐욕스러운 사회의 정신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만이 이 정신에 맞서서 성공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을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합리적 대립으로 보고 사랑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을 매우 개인주의적 주변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회 구조의 중요하고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이 책의 범위에서는 오직 암시될 수 있을 뿐이다.

   "그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면, 그대는 그들을 한 인간으로 사랑할 것이고 이 사람은 신인 동시에 인간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위대하고 올바른 사람이다."
- 마이스터 에그하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