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죽음의 수용소에서> - 살아갈 날들이 아깝지 않기 위한 필독서 본문

삶이 글이 될 때/읽고 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살아갈 날들이 아깝지 않기 위한 필독서

고래의노래 2010. 7. 30. 21:35
죽음의 수용소에서 - 10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청아출판사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의 기록. 이 짧은 소개글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이 책이 필독서가 되어야 함을 인정할 것이다. 영화표 값을 아까워하지 않기 위해서 극장에 가기 전에 영화리뷰를 챙겨보는 그 상식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아깝지 않기 위해 마땅히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저자는 수용소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묘사하는데 공을 들이지 않는다. 누구나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 끔찍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똑바른 정신'을 유지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살아남기 위해 그가 취한 행동은 철저한 기회주의자가 되거나 호시탐탐 탈출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알코올의존증협회의 구호 중 하나와 맞닿아 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 뿐이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바깥에서 찾으려 노력하지만, 어짜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인 의미란 우리가 감히 엿볼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니 이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개개인에 있어서 삶의 의미란 모든 경험과 상황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자아실현, 성공, 행복 등은 목표 자체로 결코 성취될 수 없으며 흐름에 따른 '결과'로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 과잉의도에 의해 애초의 목표와 점점 멀어지게 되는 '역설적 의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부분은 이해가 되면서도 씨크릿이나 여타 다른 자기계발 서적들과는 전혀 반대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혼란스러웠다. 머리 속에서 잘 정리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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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의미는 주어지지 않는다.

강제수용소에서는 죄수가 자신을 지탱할 힘을 모두 상실하게끔 모든 상황이 꾸며진다. 삶에서 친숙했던 모든 목표들을 한순간에 빼앗겨 버렸다. 남아 있는 것은 '인간의 마지막 자유', 즉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자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선택의 자유뿐이다. 이 궁극적인 자유, 현대 실존주의자들은 물론이고 고대 스토아 학파도 인정한 이 궁극적인 자유가 프랑클의 이야기 속에서 생생한 의미를 드러낸다. 죄수들은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일 뿐이었으나, 어떤 사람들은 적어도 '자신의 고통의 가치'를 선택함으로써 겉으로 보이는 운명을 뛰어넘는 인간의 능력을 증명했다.

인간의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라도 짧은 한 순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완전히 생각해 보면서 더없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나의 고통이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 뿐이다."....
삶을 의미있고 목적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이 정신적 자유이다....
한 인간이 자기의 운명과 또 그에 따르는 모든 고통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느냐, 자기에게 주어진 시련을 어떻게 감당하느냐 하는 것은. 설사 그가 가장 힘겨운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그의 삶에 깊은 의미를 더해주기에 충분한 기회를 줄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도덕적 가치들을 획득할 기회를 이용하든지 아니면 버리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 선택이 자신의 고통이 가치있는 것이 되느냐 못 되느냐를 결정한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느냐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이다. 라는 것을 우리 자신이 배워야 했고, 더 나아가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했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 대하여 질문하기를 멈추고 대신 자신이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대답은 말과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처신이어야 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든다. - 니체

비극적 낙관론 : 비극에 직면하여 가지는 낙관주의, 또한 다음 3가지를 항상 최상의 상태로 고려하는 관점에서 보는 낙관주의
1. 고통을 인간적인 성취 및 실현으로 바꾸기
2.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보다 낫게 변화시킬 기회를 이끌어내기
3. 삶의 일과성으로부터 책임있는 행동을 취할 동기를 이끌어내기.


* 긴장의 필요성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 즉 이미 성취한 것과 앞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 사이의 긴장, 또는 현재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사이의 간격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긴장은 인간에게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며 따라서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마음의 안정, 또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없는 상태라고 하는 것을 나는 정신건강상 위험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가치있는 목표와 자유의지로 선택한 일을 위한 노력과 투쟁이지, 긴장없는 상태가 아니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떻게든 긴장을 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잠재의미를 불러내는 것이다.

*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삶 속에 존재하는 의미를 세 가지 다른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
1. 일을 창조해 내거나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2. 무엇인가를 체험하거나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다른 한 인간을 유일무이한 바로 그 사람 속에서 체험하는 것, 즉 그를 사랑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고통을 향해 우리가 취하는 태도로써
(고통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고통이 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의미있는 일은 그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위기상황에서도 나의 관심은 동료들의 관심과 달랐다. 그들의 의문은,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아남게 될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고통은 아무 의미가 없을 테니까"하는 것이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이 모든 고통,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죽음에 의미가 있을까? 만일 의미가 없다면 결국은 살아남아야 할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어떤 우연한 일 - 탈출하느냐 못하느냐와 같은- 에 그 의미가 딜려있는 삶이라면 결국 살 가치도 전혀 없다."

(원숭이가 의학실험때문에 당하는 고통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차원, 그러니까 인간의 세계를 넘어선 다른 세계, 인간의 고통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세계가 있지 않을까. 이런 궁극적인 의미는 인간의 제한된 지적 능력을 능가하고 초월한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이를 초의미라고 한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몇몇 실존주의 학자들이 가르치듯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절대적인 의미를 말로는 파악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참으로 덧없는 것은 잠재 가능성뿐이다. 무엇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 가장 확실한 실재이다.
로고데라피는 인간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이라는 점을 마음에 두고 있으나, 염세적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염세주의자는 달력을 매일 한장씩 찢어낼때마다 점점 얇아져 가는 것을 두렵고 슬픈 마음으로 지켜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에 인생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사람은 매일 달력에서 한 장씩 뜯어내어 그 뒷면에다 일기를 적은 다음 차곡차곡 조심스렇게 묶어두는 사람과 같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실체를 가지고 있는 걸. 내가 한 일과 사랑했던 사람의 실체 뿐 아니라 용감하게 견뎌낸 고통의 실체까지도. 그 고통들은 비록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것은 아니더라도 내가 정말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들인 걸."

* 목표가 목표에서 멀어지게 한다.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마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표적으로 삼으면 삼을수록 점점 더 놓치게 될 것이다. 성공이란, 행복과 마찬가지로 추구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보다는 훌륭한 어떤 일에 전념하다가 뜻밖에 얻어지는 부수적인 결과나 또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어줌으로써 얻어지는 부산물같은 것일 뿐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성공도 마찬가지다. 성공하지 못할까봐 걱정하지 말고 일이 되어가는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것은 달성될 수 있는 목표가 절대 아니다. 인간은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목표에서 빗나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자아실현이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서만 가능한 것이다. 삶의 참된 의미를...인간의 내면과 그의 영혼속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역설적 의도' -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으며 또한 과잉의도는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는 이중적인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시크릿의 내용과는 반대인가????***) "전에는 땀을 4리터밖에 못흘렸는데 이번에는 최소한 40리터는 흘려야겠다!"-> 땀 공포증에서 벗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