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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 - '通'해 본 적 있나요?

고래의노래 2010. 12. 19. 11:13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 - 10점
M. 스캇 펙 지음, 김민예숙.김예자 옮김/열음사

   어릴 때부터 나는 사람과의 부대낌을 즐기고 친구들을 끔찍히 아꼈다. 심지어 중학교 1학때 친구들과 어두컴컴한 방에서 가졌던 우정 언약식에서 마음 깊이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는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감싼 그 유대감을 그 때에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모두 크고 난 후에 그 중 한 친구가 나에게 말하길 그 당시 내가 우는 것이 참 이상해 보이고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이해가 되더라고 했다.
   이렇게 '사람관계에서 느끼는 기쁨'을 확실히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일찍 깨우쳤다. 그것은 아마도 외동으로서 어두운 가정 분위기를 혼자 감당하기 버거웠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옆의 사람과 말없이도 서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은 희열 중에도 최상위급인데 2002년 월드컵을 경험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의 목표(또는 고난)를 가지고 있을 때 쉽게 형성되는 이 공동체 정신의 예는 최근 구조된 칠레 매몰 광부들의 이야기와 아시안 게임에서 보여준 우리나라와 이란과의 축구 역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스캇 펙 박사는 사람들이 서로를 마음 깊이 포용하고 보듬는 공동체 형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인류의 숙원인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공동체보다 평화를 먼저 강조하는 것은 순서가 잘못되었으므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했는데 번역본인 이 책의 제목이 "평화 만들기"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저자의 이름과 '평화'라는 안전한 단어로 책을 포장하려 한 것인데, 저자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제목 바꾸기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소수의 사람과 깊게 친구관계를 맺는 편인데, 이 과정에서 공동체 경험을 하기도 했다. 대학교 때 나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신촌 지역의 3개 학교에서 각자 자취를 하고 있었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그야말로 가족같은 유대를 형성했었다. 여자 3, 남자 3이었던 우리는 툭하면 모여서 저녁을 같이 해먹었다. 다들 자취생인지라 밥해먹는 것이 부실한데다 혼자 먹는 것이 싫으니 누가 부르기만 하면 그 좁은 자취방에 곰실곰실 모여들었던 것이다. 이 때에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친구가 가족이 되는 때가 있다.'는 말을 실감했으며 말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았다. 내 마음이 통째로 너에게 전달된다는 느낌은 경이로웠다.
   스캇 펙 박사가 이야기했듯이 공동체는 섹슈얼리티라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는 그 위험에 노출될 최적의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짝수가 맞는 남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는 그 위험을 교묘히 잘 피해가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본래에도 공동체에서의 유대감을 최고 가치 중 하나로 치는 나에게 친구 하나없는 분당에서의 육아생활은 그 욕망에 불을 지핀 꼴이 되었다. '마을 공동체'와 '마을이 함께 하는 육아'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던 나에게 이건은 커다란 기회이기도 하다. 매일 베란다 창밖으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들이 점점이 흩어져 섬처럼 부유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우리를 연결시켜주지 못하는 이 환경과 우리의 수줍은 심성이 너무 안타까웠다. 고민 끝에 지역 생협에 가입하고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자연을 살리고 우리 몸을 되돌리는 먹거리에 대한 관심뿐이었다면 계속 이용하고 있던 한살림만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우리 마을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따뜻한 사람들을. 사실 아직까지 이렇다할 진행 사항은 없다. 다만 이제 문을 열었으니 물꼬가 트이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이 나에게 의미가 깊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영성'에 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마치 나의 고민에 대답해주기라고 하는 듯한 내용이어서 놀랐다. 우리가 우리의 지성으로는 제대로 인지할 수 조차 없는 거대한 우주의 힘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이것이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신'의 개념과 합치되는 것인가 궁금했고 이러한 마음으로 천주교의 문을 두드려도 될 것인지 고민스러웠다. 아직까지 나는 예수를 부처와 같이 "경이롭게 현명해서 우주의 힘을 깨달은 선각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또한 진실이며 이것이 영적 단계에 속하는 발전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용기가 조금 생겼다.

    이 책은 또한 우리가 정치적 지도자를 뽑을 때 중요시하여야 하는 점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계속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몇 달 전 이모의 장례식에서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대통령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외삼촌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직을 잘 수행하려면 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너무 쉽게 내려놓았다. 그것이 그 분의 잘못."이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가 국가 '공동체'를 이루려 했던 역사상 유일한 대통령임을 알지 못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뜻인 '내가,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없이, 장수같은 대통령이 나와 갓난아기처럼 그 아래 보호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는 누군가의 지도 아래 이루어질 수 없다.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며 그렇기에 때로 지도자는 무능력하다는 비판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도자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덜어주고 대중이 참되게 스스로의 힘을 각성할 수 있게 '대중매체'가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그런 행운도 따라주질 못했다. 안타깝다. 그래도 그 분이 우리에게 되돌려주었던 그 힘으로 조금이나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고 위안한다.
   또한 이 주제에서 저자는 '국가 공동체'를 위해서 정부가 비밀없이 활동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최근의 위키리스크 사태과 맞물려 흥미로웠다. 비밀문서는 '우매한' 대중을 대립각에 둔 의식에서만 성립되는 것이다. 위키리스크 설립자의 폭로 대의(大意)가 설령 순수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그것임은 확실하다. 비록 그 속도에 멀미를 해서 속도는 늦을 추 있을지언정.

    스캇 펙 박사는 공동체를 지향했던 미국 역대 대통령으로 카터 전 대통령을 꼽았다. 사실 이 분에 대해 잘 알지 못해 검색을 해보니 그 행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너무 흡사해 놀랐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은퇴 후 가장 아름다운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평화사절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 다시 '국가 공동체'를 추구하는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2년 뒤에는 우리 모두 '通'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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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그리고 개인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가 문명 사회의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평화구현과 공동체'로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수레를 말 앞 쪽에 놓는 격이었다........평화구현은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전 인류의 평화 실현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영향권 내에서 공동체의 기본 원리를 배우지 않고서는 세계 공동체 -세계 평화의 실현을 위한 유일한 길 - 을 향해 과연 우리가 얼마나 전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 알코올의존증방지협회

온건한 개인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약점, 부족함, 불완전함, 부적합함, 죄, 전체성과 자족성의 결핍을 자유롭게 나눠 참된 자신이 되는 개인주의다....."나도 괜찮지 않고 당신도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그것은 우리의 자아를 스며 나오게 하고 타인의 자아를 스며들게 한다.

공동체의 막대한 힘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 위험이란 집단의 섹슈얼리티이다. 한 집단의 구성원이 서로 사랑에 빠지면 막대한 성적 에너지가 배출되는데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해롭지는 않으나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잠재한 엄청난 섹슈얼리티를 자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 영적 여정의 단계

단계 1 : 혼란적, 반사회적
단계2 : 형식적, 제도적
단계 3 : 회의적, 개인적
단계 4 : 신비적, 공동체적

만일 단계 3의 사람들이 진리를 충분히 깊게 그리고 넓게 구한다면, 그들은 원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진리를 짜 맞출 수 있는 조각들, 그러나 전체 퍼즐을 완성하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은 조각들을 발견한다. 사실상 그들이 더 많은 조각을 발견할수록 퍼즐은 더 커지고 더 방대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전체 그림'을 희미하게 볼 수 있으며, 그것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단계 2에 있는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가 믿는 '원시적 신화와 미신들'이 이 그림과 이상하게도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단계 4로 진화한다.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가진 신비주의자들은 단일성에 관해, 그리고 남성과 여성 간에 그리고 우리와 무생물까지 포함한 다른 피조물과 같은 사물들 간에 내재되어 있는 연관성에 관해 말해왔다. 즉, 우주의 밑바탕이 되는, 보통은 보이지 않은 구조에 사물이 맞아 들어가는 것에 대해 말했다.

'예수는 나의 구세주다.'라고 하는 기독교의 예를 들어보자. 단계 2의 사람에게 이 말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잊지 않는 한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나를 구워해 주는 '예수는 요정같은 대모'라는 의미로 해석될 것이다. 단계 4의 사람에게 '예수는 나의 구세주다.'라는 말은 '예수는 그의 삶과 죽음으로 내게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것 또한 진실이다. 완전히 의미가 다른 해석이지만 둘 다 진실이다.

* 정치 지도자에게 진짜 필요한 한가지

진정한 공동체를 성취하려면 선출된 인도자는 다른 사람의 지도력을 격려하기 위하여 자신은 되도록 인도에 소극적이어야 하며 통제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인도자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무능력하다는 비난을 받을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우리의 국가 지도자들은 그런 비난을 얼마나 무릅쓰는가?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지도력을 개발하려는 의도가 있는가? 참된 공동체를 형성하려면 의존심이라는 과제 회피의 가정을 제지해야 한다.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대통령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주기만 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지도자를 기대해야 하고, 슈퍼맨이 아니라 실제 인간을 기대해야 하며, 위대한 아버지가 아니라 정신적인 인도자를 기대해야만 한다. 우리는 제국주의적인대통령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대통령을 수용하고 축하할 준비를 해야 한다.....구원받으려면 의존이라는 과제 회피 가정에서 벗어나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성숙해져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하고있다. 그리고 이 과제는 공통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공동체에서는 모든 참가자들이 지도력을 배우고, 권위자에게 의존하려는 경향과 싸우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매체 전문가들이 이러한 임무를 담당해야 한다. 실제로 심령이 가난한 대통령직을 지지할지 또는 비웃을지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권력이 그들 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숙을 위해 대중을 교육하거나 퇴행시킬 수 있는 대중매체를 책임지는 것이 신문기자와 TV와 라디오 논평자가 일차적으로 할 일이다.

그렇다고 이미 그러한 사실을 깨우친 정치적 지도자가 대중과 언론이 성숙하기를 기다리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치 지도자는 상호관계 속에서 언론과 대중을 교육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마음 여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정치가가 개혁의 진통을 기꺼이 겪으려고 하지 않고서는 공동체적 대통령직을 확립할 수 없다.

카터 대통령은 심령이 가난한 대통령직을 창조하려고 시도했던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역할이 지닌 제도적 본성을 볼 때 그가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시도를 지켜낼만한 용기가 없었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특히 유감스러운 점인데, 왜냐하면 그의 실패는 사람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대통령직은 불가피하게 약한 대통령이며 '현실세계'에서 일할 수 없는 대통령직임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번 대통령 선거 때 우리는 원시적 이미지과 권련의 개념으로 기꺼이 되돌아 갔다.

* 앞으로 가야할 길

나이가 들어 삶의 방식이 더 확고해지고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확신이 서면서 새로운 일에 흥미를 덜 느끼게 되고, 변화하려는 의사는 더욱 없어진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육체적으로 노쇠해 간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진정한 어른이란 탈바꿈하는 능력을 계속적으로 발달시키며 연습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 우리가 성장 여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발달속도는 더 빨라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장하면 할수록 마음을 비우는 능력이 훨씬 더 커지기 때문이다.

당신이 공동체에 합류할 사람을 찾을 때 지켜야 할 두 가지 지침이 있다. 하나는 다른 속셈을 가진 사람들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작은 속셈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대의나 애정을 쏟을 대상이 있다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이런 것들을 포기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그것들을 옆으로 제쳐놓거나 '괄호'치거나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또 다른 지침은 당신과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서라는 것이다. ...진정한 공동체는 포용적임을 기억하라,. ..당신이 전인(全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능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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