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의식혁명> - 내 안에 있는 거대한 힘을 믿어보자 본문
의식혁명 - 데이비드 호킨스 지음, 이종수 옮김/한문화 |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성공, 행복, 영성 등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다른 책들은 이 책의 이야기들을 각자의 주제대로 풀어낸 것이라고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했다해도 이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더 힘들다. 한 번 읽는 것만으로는 흡수할 수 없는 내용이다. 절판된 것이 아쉽다.
저자는 우리의 근원이 가진 잠재력에 대해서 확고하게 긍정하고 있다. 우리의 몸은 이미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예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근력의 차이를 들고 있는데,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진 그림을 볼 때는 우리의 반응이 강해지고, 복사판을 볼 때는 그림의 내용과 상관없이 근육 반응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어떠한 대상이나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근력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어떤 후보자에게 투표권을 행사할지 결정하는데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팔을 어깨까지 올리고 그 후보자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에게 그 팔을 힘으로 내려달라고 부탁하는데, 이 때 저항이 세서 왠만큼 팔이 내려가지 않으면 이는 긍정적 반응이고 반대로 힘없이 내려가면 부정적인 뜻이라는 것.
또한 인류가 의식 도약을 위한 분기점인 200의 상태에 들어와 있으며 앞으로의 선택에 따라 확실하게 인류가 더 큰 의식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예견한다. 그 방법은 진부하게도 '사랑'이다.(하지만 진부하기에 더 진리일 수 밖에 없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관심을 가질 것.
나는 모든 것에 에너지가 존재하고 이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기본적으로 믿고 있다. 예를 들면 나쁜 말 한마디에도 부정적인 에너지가 들어있어서 이것이 실제로 대상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의식의 도약은 이런 것을 믿고 인정하는 나에게도 역시 힘든 일인 것 같다.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내가 품어안지 못하는 것을 보면...
꼭 다시 한 번 읽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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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식수준의 단계
스트레스나 부정적인 에너지장에 접했을 때 나타나는 흉선의 기능 저하는....간단한 '흉선 치기' 방법으로 몇 초안에 고칠 수 있다. 흉선을 불룩 튀어나온 가슴뼈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주먹으로 가볍게 몇 번 친다. 주먹으로 치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거나 미소를 짓도록 하고, 주먹으로 칠 때마다 '하하하' 하고 말하게 한다.
'용기' (200) 수준의 사람들은 자기가 흡수하여 소모하는 에너지만큼 세상에 그 에너지를 되돌려 보낸다. 반면, 낮은 수준의 사람들은 사회로 환원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여 에너지를 흡수한다고 할 수 있다.
'중용'의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내가 이 직장에 못들어가면 다른 직장에 들어가면 되지"라고 생각한다. 이 단계는 내면의 사진을 신뢰하는 출발점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느끼기 시작하며, 쉽게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다.
'포용'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문제 해결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정열을 쏟는다.
절박한 생존 상태에서 간신히 벗어나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가 생긴 사람들도 욕망으로 치달리고 있는 세상의 '경제 방앗간'에서 곡식이 되어 짓찧어지고 있으며, 욕망을 성취함으로써 기껏해야 '자존심'의 수준에 도달할 뿐이다.
* 깨달음을 위한 자유
사람들이 여러 방법으로 추구하는 높은 의식 상태란, 사실 그들 자신의 의식(진아)의 장에 대한 경험에 지나지 않다. 영혼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고 황홀경을 이해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고도의 의식 상태란 자기 '밖의' 무엇(스승, 음악, 약물, 연인 등)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믿어버리기 쉽다. 사실 그들에게 일어난 느낌이란 특수한 상황 아래서 '자신들 내면에 지금 있는' 그 무엇을 경험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땀흘리지 않고 얻은 것은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으로 남는다...훔쳐온 기쁨의 대가로 중독 현상이라는 절망을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내 몸이나 마음이 나인 것이 아니라, 내가 몸이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자유가 찾아든다. 일단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하게 되면, 삶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임사체험>이란 책에서도 이런 말이 나오는데, 죽음을 경험한 자들은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삶을 소중히 다루게 되었다고 한다.)
웃음은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져온다. 웃음은 자신이 희생당했다는 피해 의식 속에서는 떠오를 수 없으며, 더 크고 포용력 있는 관점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사는 개인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우리가 어떻게 의식 수준을 높여갈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둔다. (<스캇 펙 박사의 평화만들기>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진정한 지도자는 구성원들의 내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사람이다.)
* 의식을 진전시키는 방법
천재성이 활발하게 발휘되기까지의 과정에는 공통된 과정이 있다. 그들은 맨 처음 의문을 품고, 의식이 그 의문을 해결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린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은 언어가 아닌 다른 형태로 한 순간에 해답을 얻는다.
...천재성이라는 불사조는 풀 길 없는 의문과 아무런 보상도 없는 싸움을 벌인 끝에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문득 날개를 털고 일어나는 그 무엇이다. 패배에서 승리가 나오고, 실패에서 성공이 나오며, 겸손에서 진정한 자존심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연구는 천재성이란 자신의 목표와 가치를 높은 끌개 에너지의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천재란 인내, 용기, 집중, 끌고 나가는 강한 힘, 절대적인 정직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천재들의 공통된 의견은 '네가 제일 좋아하는 분야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높은 에너지장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내적 태도가 자연스럽게 바뀌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조 그룹 사이에 잘 알려진 현상으로, "몸만이라도 회합에 참석하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높은 에너지 패턴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만으로도 '마찰 현상'이 일어나고, 그래서 소위 '삼투작용'이 시작되는 것이다.
칼 융은 롤랜드에게 "네가 믿는 안 믿든 네가 판단하기에 좋아보이는 영적 그룹에 네 몸을 완전히 맡기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하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병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참자아에 대한 진실은 일상의 삶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관심과 친절을 갖고 사는 것'이다.
단순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누구라도 용서하는 훈련을 한다.
모든 욕망을 기꺼이 멈출 수 있어서 어느 순간에나 자신의 의지를 항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 도약의 분기점들
표면의 힘은 만족을 안겨주지만, 잠재력만이 기쁨을 안겨준다. 타인에 대한 승리는 우리에게 만족을 안겨주지만, 자신에 대한 승리만이 기쁨을 한겨준다.
의식의 분포도에는 두 개의 분기점이 존재하며, 이는 의식의 진화를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되어 준다. 첫번째는 200의 수준으로, 이 단계는 잠재력을 최초로 느끼는 수준이다. 이 단계에서는 남을 비난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이나 느낌, 믿음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숙이 시작된다...두번째 분기점은 500으로 이 수준은 사랑, 비판없는 용서의 생활 양식,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예외없는 무조건의 친절함이다.
각자의 마음은 자신의 옳음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정'의 과정을 밟는다...의식의 커다란 진전은 '내가 안다'라는 착각을 버릴 때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기꺼이 변화하려는 태도는 흔히 개인들의 믿음이 다 허물어지고 더 나아갈 수 없는 아주 '밑바닥'에 처했을 때에만 가능하다...위기의 좋은 점은 그것이 높은 의식 수준으로 가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데 있다....가장 흔하고 만연된 중독은 부정이며, 이것은 이지적인 허영에 의해 우리를 어둠으로 덮는다.
지혜란 궁극적으로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피하는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창조란 계속적이거나, 창조란 것이 전혀 있을 수 없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창조의 '시작'을 찾는 일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간 개념의 산물일 뿐이다. 시간 밖에 존재하는 어떤 것의 '시작'을 시간 속에서 찾을 수는 없다. 빅 뱅은 관찰자의 마음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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