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등장인물에 대한 그녀의 변론서 - 홀리가든 본문
홀리 가든 -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소담출판사 |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아침부터 부랴부랴 준비해서 9시에 문을 여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반납해야 하는 책이 두권이었는데, 아침이라 괜찮을 거라 짐작하고 가방이 아니라 손에 들고 와 버렸다. 하지만 아침부터 밖은 뙤약볕. -_- 땀이 줄줄 흐르고 내 손에는 양산, 지갑, 책까지 그득했다. 바로 반납만 하고 와버려야지 하고 도서관을 올라가는 언덕 내내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반납하고 잠시 소설책 서가를 살펴보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몇권 되돌아와 있었다. 그녀의 책은 항상 인기만점이라서 서가에 꽂혀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일찍 도서관에 온 수혜인듯 했다. '반짝반짝 빛나는'이후로 에쿠니 가오리에게 완전 빠져들어서 그녀의 신간이며 예전 책들까지 싸그리 사모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몇 번 실망스러운 책들을 접한 이후로는 관심이 싸악~ 식어버렸었다. 작가에 대한 나의 애정은 거의 이런 식으로 불끈 솟아올랐다가 사그라들곤 한다. (만화책 작가들은 제외.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들은 거의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는 것 같다. 오호!) 웨하스 의자때부터 그녀의 신간들을 안 읽기 시작해서 이제는 딱히 읽고싶다고 생각되는 책도 없었는데, 만나기 힘든 책들을 만나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몇권 집어들고 말았다. 그 중 한 권이 '홀리가든'. 작가후기가 1994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는 홀리가든은 그녀의 꽤 초창기 시절 작품인 듯 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나 '낙하하는 저녁'에 비교해 보았을 때 훨씬 성숙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그녀는 퇴화하고 있는 듯 하다..-_-;; 상황 또는 사건들 속에서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인물들을 그녀가 직접 변호하고 있다. 얘가 이러고 있는 건 이래서 예요. 저러고 있는 건 이래서고요... 이래저래 변명을 듣고 있는 기분. 상상력 또는 공감 또는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할 새도 없이 문장이 그대로 멀리 속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여백을 중요시한 나머지 제대로 설명해줘야 할 부분은 남기고 각 인물들의 순간수간 정서에만 집중해 버렸다. 그래서 독자는 점점 이야기에서 멀어진다. 에쿠니 가오리의 인기에 힘입어 무어라도 하나 더 찍어내고 싶었던 소담출판사가 그녀의 과거작품 중에 이리저리 뒤지다가 '그래, 이 정도면 출판할 만 하지 않겠어!'라고 결정한 순간이 생생히 느껴지는 듯 하다. |
http://whalesong.tistory.com2008-08-07T15:51:2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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