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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 3장 개성화 과정

고래의노래 2018. 8. 13. 12:16

 아니마, 아니무스, 자아와 자기, 개성화 과정 등 분석심리학의 기본 개념과 용어들을 정리해주는 이번 장은 내가 읽은 모든 분석심리학 관련서들의 내용들과 연결되었다. 

우선 내 마음에 떠올랐던 두 가지 큰 질문이 이 책에서 딱 같은 내용으로 제시되어 놀랐고 내가 융의 사상을 이해하면서 길에 제대로 들어서긴 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 질문은 옳다


 첫번째 질문은 여신모임을 하면서도 계속 떠올랐던 질문은 '무언가 선택을 해야하는 갈림길에서 내 내면이 전하는 목소리나 감정들이 그림자의 에너지인지, 우리를 인도하는 자기의 방향성인이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였다. 결국 이러한 선택의 순간에 올바른 직관의 힘에 의지할 수 있도록 평소에 자기자신에 대한 충분한 탐색을 하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외부의 에너지에 휩쓸리거나 중독되지 않도록 창조성의 시간들을 가질 것이 제시되었었다. 

<우리 안의 여신들>에서 페르세포네 원형을 가진 여성이 극복해야할 지점이 있다.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네 마음을 따라가라' '네가 불행하다면 당장 일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떠나라.'류의 이야기는 모두의 길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은 <코스모스>를 읽으며 우리가 우주의 미미한 존재라는 점을 느끼고 겸손해지는 것과 <분석심리학>을 통해 우리 내면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의 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는 이 긴장감 속에서 한 쪽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올곧게 세우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융이 이야기했듯이 심리학은 양극단을 조율하고 조화롭게 하기 위한 학문이다. 



* 아니마와 아니무스, 자기 : 새롭게 알게 된 것들


 아니마와 아니무스에 대한 설명에서는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2부분 모두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아니무스의 예로 <푸른수염>이야기를 들었는데, <늑대와 함꼐 달리는 여인들>속의 해석과 맞물리면서 이해가 되었다. <늑대가~>에서는 푸른수염을 여성 안의 창조성을 파괴하는 '내면의 천적'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을 부정적 아니무스로 바꿔서 설명해도 될 듯 하다. 부정적 아니무스는 '너에겐 아무 희망도 없다, 네가 하는 일들은 다 소용없고 의미없다'는 내면의 속삭임이라고 한다. 푸른수염은 자신의 전 부인들을 모두 살해하여 비밀의 방에 가두었는데 <늑대와~>에서는 이렇게 살해된 여성들이 '창조성과 내면의 에너지가 파괴된 여성들'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마지막에 푸른수염을 처치하러 오는 오빠들은 긍정적인 아니무스라고 할 수 있겠다. <늑대와~>에서는 오빠들을 진취적인 적극성으로 상징되는 아니무스라고만 설명하여 나는 이제까지 아니무스를 긍정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부정적인 아니무스의 또 다른 예로 저자가 제시한 것은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이다. 이 소설에 관해서는 <셀프혁명>에서 스타이넘이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 와 비교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폭풍의 언덕> 속 두 남녀의 열정은 로맨스이고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에게서 채우려는 갈급함이지만, <제인에어> 속 두 남녀의 에너지는 서로가 각자 자신인채로 서로 함께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스타이넘은 그러면서 로맨스는 우리가 자기완성이라는 목적으로 가는 수단이지만 사랑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로맨스를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을 인지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금슬좋아보이는 완벽한 남녀한쌍이 어떻게 서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파괴적인 존재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세시대 기사들의 사랑은 상대방에게 아니마를 투영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로맨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화의 힘>에서 조셉캠벨은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를 한다. 중세의 사랑은 욕정놀음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며 어떤 고통도 함께할 수 있는지 (com-passion)하는 사랑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이떄의 사랑은 여성이 주도했으며 남성이 사랑을 수용할 다정한 가슴이 있는지 시험했다고 이갸기한다. 그러면서 요즈음엔 그러한 여성이 없다며 한탄하기도 한다. 이런 사랑 속에서 사람들은 개인적 경험이 개인적 믿음이 되고 이것이 삶으로 발현되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때문에 중세시대의 사랑을 캠벨이 높게 평가한 것이 아닌가 한다. '개인의 탄생'으로서 말이다. 


 무의식의 작용인 자기까지도 어두운 측면을 지녔으며 이 때문에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현실과의 접촉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이것은 <늑대와~>의 앞부분에 <에스겔의 바퀴를 본 네 랍비>이야기에서 잘 그려지고 있다. '진리'를 경험하고 나서 어떤 랍비는 미치고, 누군가는 사이비종교로 빠지고, 누군가는 무기력해지지만 마지막 랍비는 자신의 현실로 돌아가 순간을 즐기며 살아갔다고 한다. 개성화 과정을 밟는다는 것은 누군가의 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안의 여신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여신원형들을 현실이 아닌 그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일 때에는 우리의 현실과 맞추어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나를 돌아보는 것이 결국 사회화인 이유


 자기를 의식적으로 의식할 수 있으면 그것이 사회화 과정이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어떤 면을 투사하지 않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적인 수준에서의 정신적인 혈연관계'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즈음 나의 고민 중 하나는 SNS의 소통영역이 점점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만 확장되고 깊어지는 것 같다는 것이다. 페북엣는 나의 성향을 분석하여 관심있어할만한 그룹이나 페이지, 사람을 추천해준다. 이렇게 된다면 정보의 홍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신념의 우물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이해하고 나의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없이 열려서 흔들리는 것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나를 이해하고 <자기>를 인식하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이 책에서는 제시하고 있다. 

"의식적으로 실현된 개성화 과정은 개인의 인간관계까지도 변화시킨다. 혈연이나 비슷한 관심사로 맺어진 친수한 인간관계의 어우러짐은 다른 유형의 어울림, 즉 <자기>를 통한 어우러짐으로 대체된다."

이번에 여성활동가리더십교육 자치회 운영진이 되면서 각기 다른 목소리를 한데 안전하게 편안하게 아우르는 것이 숙제처럼 다가오고 있는데 분석심리학이 방법을 제시해줄 수 있을런지.


 '광신적인 정치활동'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이 꾼 꿈에 대한 분석이 나에게 매우 의미있게 다가왔다. 책의 저자는 그의 꿈을 '나라의 자유를 되찾는 것은 좋으나 외적인 방법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이 자기 삶에서 아무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공산주의 국가에서 살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살든 다를 것이 없다'면서 '한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산다는 것이 내적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개성화 과정이라는 것이 외부적 목표의 달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앞서 아니무스 부분에서도 아니무스는 '거룩한 신념'으로 드러날 때가 많다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러한 신념을 강요하는 여성을 예로 들었다. 내가 읽은 많은 여성주의 서적들이 정치사회적 운동보다는 여성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더 강조하였고 옮긴이들 중에는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서운함을 내치비기도 했다. 



* 완점함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편안해진다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라고 하는 것은 마음 속에 있고 그것만이 우리가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데, 사람의 마음과 관련된 사상은 독자성이 너무 강해서 인간이 영적 실체 그 자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며 우리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고 무엇이 올바른지 말할 수 있다는 것도 환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보상은 자기라는 개성화 과정을 통해 분리된 개개인이 자신의 동류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심리학들이 행복으로 이르는 길을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한다. "당신이 우울한 이유를 알려주겠다." "모든 열쇠는 당신 안에 있으니 관점을 바꿔보아라."라고 하며 행복과 평안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분석심리학은 인간은 <인간이 되는 것> 그 목적 이외에는 없으며 그 과정은 무의식을 세계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능한데 그렇데 되면 의식의 계획은 방해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짜피 너의 운명은 너를 자기라는 중심으로 이끌 것인데, 그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이해한다면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감정으로서의 행복과 평안이 아니라 고난을 미리 알고 한다는 예측의 편안함, 그래도 그 길은 옳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믿음의 편안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