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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강연 기록

고래의노래 2018. 4. 21. 09:49

* 관점이 언어가 되어 능숙해지려면


 남부권역 젠더거버넌스 성평등 교육 입문강좌, 세번째 강연은 <불편함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라는 주제로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의 이민경 작가님과 함께 진행되었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많은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사회시스템이나 제도에 대한 불편함 외에도 일상생활 속에서 불편함이 피어오른다. 나를 소모시키지 않으면서 능숙하게 그 불편함들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 질문을 품고 들었던 강연을 요약해본다. 먼저 작가님의 책들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이라는 관점과 그것을 풀어내는 언어의 이야기, 그 언어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강연이 있었고 그 이후 질의응답이 길게 이어졌다.


1. 관점은 곧 언어이다.

 역사는 남성들의 관점에서 남성들의 언어로 기술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 관점을 내면화하여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불합리함을 깨닫고 여성의 눈으로 본 것들로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페미니즘의 역사이다. 한 개인여성이 자신의 관점을 갖게 되는 순서도 여성역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바깥에서 제시되어 내면화했던 규칙들이 일상의 삶에서 매치되지 않는 경험들이 쌓이면서 우선 인지의 불일치가 생겨난다. 하지만 이후에는 깨달음의 기쁨보다는 부인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세상이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관점에 대해 가진 선입견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내면에서 자신이 채택한 관점을 인정하는 순간이 오고, 그 관점에 대한 단단함이 쌓이면 그것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추가되는 것이다.

 역사는 관점의 투쟁이었고 관점은 곧 언어이다. 언어체계가 다르면 세상을 보는 시선 또한 완전히 다르다. 표면상으로 한국어라는 같은 언어를 쓰고 있다고 해도 관점이 다르면 중간에 해석이 필요한 다른 언어체계인 것이다.


2. 책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강남역 살인사건은 한국의 여성들에게 ‘급작스러운 인지불일치’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따르던 규칙들은 이 사건과 아무 상관이 없었다. 여성혐오가 사회이슈가 되어 일상의 담론이 되었는데 그 대화 속에서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답답함을 느꼈다. 이 모습을 보고 이민경 작가님은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취지를 밝히고 제작비 지원을 받은 후에 목표액이 달성되면 결과물을 보내주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책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목표치를 훨씬 뛰어넘는 펀딩을 받았다. 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좋았지만, 책을 만들면서도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이 적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기에 씁쓸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인지불일치의 경험이 나만의 관점으로 만들어지고 정체성으로 추가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그러한 내면화의 시간없이 페미니스트로 규정되는 혼란스러움을 겪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렇게 당황한 여성들을 위해 그들이 절대 혼자가 아니며 그러한 여성들은 국경넘어 세대넘어 존재해왔고 우리는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라는 책을 쓰셨다고 한다.

 세번째 책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서>는 남녀성차별 이슈 안에서 경제담론싸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썼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넘어 동일노동, 동일직급 안에 동일능력에 대한 이슈가 들어간다면 어떨까. 능력이 되지 않아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구제를 거쳐 현재의 임금을 받는 자리에 오른다. 여성이 남성과 같은 조건이라면 여성은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의 빈곤은 매우 심각한 현실인데도 경제정책은 독거노인남성에게만 반찬을 제공하는 등 편향되어 있다. 관점이 말이 되고 말이 확산될 때 담론이 형성되고 정책을 바꿀 수 있다.

 네번째 책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낙태죄 폐지에 대한 것으로 올해 출간될 예정이다.




이후 질의응답시간에 나온 이야기들을 굵직하게 몇가지 주제로 묶어 정리해 보았다.


1) 페미니즘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답답하다.

- 다른 여성들과 : 나의 과거 경험을 떠올려보자.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도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설득한다면 어떨까.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나의 과정처럼 길게 봐야 하는 시간싸움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외로움과 불편함이 너무 심해지지 않게 주변에 페미니스트 동료를 만들어서 교류하라.

- 엄마와 : 엄마의 서사 안에서 엄마의 경험을 해석해보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상황에서 성장했고 아이를 낳고 키웠다. 이러한 엄마의 인생경험에서부터 시작해서 엄마의 관점을 함께 찾아주자.

- 딸과 : 딸들도 앞으로 살면서 ‘인지불일치’라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경험들을 해석하는 방법들을 알려주면서 시작하자.


2) 남자들과의 대화가 너무 힘들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므로 남자들은 페미니즘을 공격으로 느낀다. 그래서 우선 남자들은 대화에서 방어적이다. 또한 다른 관점, 다른 언어체계를 가졌으므로 말로서 이해시키려 하기보다는 사회규범을 바꾸는 것이 더 빠른 길이다. 폐지된 호주제를 당연시하는 남성들은 별로 없다. 규범과 시스템이 바뀌면 사람들은 거기에 순응해간다. 또한 메갈의 등장으로 일반 페미니즘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계속 자리바꿈이 일어나야 한다. 대화로는 어려운 문제이다.

 남자들과의 현장 대립은 가능할지에 대해 상황 판단을 하고 나서 해야한다. 내 몸의 안전이 걸려 있을 수 있다. 젊은 남자가 임산부석에 앉은 것이 불편하면 대놓고 이야기하기보다 문자를 이용해 지하철역, 승무원에 신고할 수 있다.


3) 능숙한 대처란 어떤 것인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다. 말 자체보다 내 마음의 크기가 커져야 한다. 페미니즘 동료들과 오래 함께 머물러라.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순간이 온다.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말도 공격의 대상이 되는 시절이 있었다. 내가 나를 키우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의 범위를 늘여가자.

 통계라는 수치적 근거가 있으면 대화가 더 잘 될 것 같지만 다른 언어체계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마저도 요원하다. 근거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와 이야기할 때를 빼고 근거라는 것은 대화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특히 남성들은 스스로의 믿음이 중요하다는 확신 속에서 키워졌다. 차라리 ‘내가 근거가 왜 필요해?’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4)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괴롭다.

 페미니즘에 빠져드는 것은 연애감정처럼 곡선을 그린다. 어떨 때는 몰두했다가도 소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면 기회는 찾아온다. 지금 당장 무언가 해야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작은 헤프닝이 있었다. 강연스텝들이 이민경 작가님을 강연자가 아니라 참석자로 생각해서 안내를 한 것이다. 작은 실수로 웃으며 넘어갔었는데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나니 그 때 ‘강연자’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조금 나이가 있는 원숙한 느낌의 누군가’라는 강연자에 대한 상이 존재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렇게 시작부터 ‘인지불일치’를 경험하며 듣게 된 강연은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되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내면화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느꼈던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할 수 있었고 때로 비겁하다 자책하기도 했던 나를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 네오가 빨간약을 먹고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된 것처럼, 페미니즘이라는 관점으로 본 세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그 관점이 나만의 언어로 발화되기 위해서는 내면이 단단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불편함에 능숙하게 대처하게 되기까지는 내 마음의 크기가 말보다 커져야 한다’는 작가님의 말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능숙함은 표면적인 대화법의 문제라기보다 내가 나의 정체성을 얼마나 바로 세웠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능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은 같은 페미니스트들과의 연대에서 응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수 있다.


 작가님께서는 이해받기보다 행동하라고 하셨고, 같은 관점으로 모여 담론을 형성하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러면서도 지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당장 무언가 해야한다는 부담을 갖지 말라며 ‘시간의 힘’을 이야기하기도 하셨다. 나를 키우는 것도, 남을 이해하는 것도 ‘시간’속에서 가능할 것이다. 함께 한다면 그 시간을 견디는 것도 시간을 줄이는 것도 조금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