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4) 나의 월경 이야기 본문
1. 나의 월경 스토리를 정리해봅니다.
- 월경에 대한 첫 기억은 어떤가요? 월경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리고 나는 그 경험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나요?
- 월경과 관련하여 경험한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있나요? 기억나는 에피소드들은 어떤 분위기인가요?
- 여성인 것에 만족하나요? 여러분에게 월경은 어떤 경험인가요?
월경경험이 여러분이 여성임을 긍정하는데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고 있나요?
- 월경 주기를 음력 주기를 기준으로 살펴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월경주기에 따라 여성은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이렇다고 느껴지나요? 비슷한 경험이 있나요?
내가 처음 월경을 한 건 중학교 2학년때였다. 큰 일을 보려고 화장실에 갔다가 팬티에 묻은 갈색 자국을 보았다. 그것은 정말 진한 초콜렛색이었고, 그래서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소리쳤다. "엄마 나 똥 지렸어!"
지금 생각하면 똥을 지렸다면 속옷을 갈아입으면 될 것을 왜 엄마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_-;; 14살이나 되가지고 말이다. 아무튼 엄마가 와서 보시고는 깜짝 놀라시며 "어머, 생리구나. 이제 시작하네!" 하셨다. 엄마는 조금 들떠보였다. 그 다음날 아빠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 아니면 모르는 척 넘어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생리대 사용과 그 처리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던 것 같기는 하다. 집안 분위기로는 그걸 엄청난 축복으로도 고통의 시작으로도 느끼지 못했고, 다만 들뜬 엄마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주변의 분위기를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이미 내 마음 속에 폭풍이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월경에 대해서는 이미 여기저기서 들어 알고 있었고, 주변에 월경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월경이라는 현상 자체가 나에게 놀라운 것은 아니었지만, 월경을 하고 난 거대한 진실과 마주해야 했다.
바로 내가 '진짜 여자'라는 사실.
나는 내가 남자이길 바랐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면서 남자 흉내를 내곤했다.
여자는 나에게 연약함의 상징이었다. 물리적 힘도, 사회적 힘도 약하고 혼자서는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의지하는 존재'. '여자니까~'로 시작되는 모든 당위들에 진저리쳤고, 조직폭력배처럼 힘세고 그 힘으로 충분히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길 바랐다.
그런데, 월경을 해버렸다. 나는 여자였던 것이다. 당연히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확인사살을 받은 충격은 꽤 컸다. 나는 좌절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진 월경들은 나에게 큰 분노나 고통이 되진 않았다. 월경통이 전혀 없기도 했지만 월경은 그렇게나 내가 거부했던 '여성' 안에서 '자매애'를 경험하게 했다. 친구들끼리 "너는 생리 시작했니?" 하며 은밀하게 서로를 알아가는 게 좋았고, 예상치못하게 월경이 터졌을 때 생리대를 빌리고 빌려주면서 생기는 연대감도 좋았다. (그런데 시댁에서 저런 상황이 생겼을 때는 시어머니에게 직접 말 못하고 신랑을 시켜서 어머님께 말씀드리게 했다. 아직 시어머니는 나에게 '여성'이기보다 '어른'인가보다. ^^;;)
물론 잠잘 때마다 뒤로 월경혈이 새면서 옷이며 이부자리 빨래가 늘어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밖에 나가 있을 때 울컥하며 갑자기 많이 나오는 느낌이 들 때면 혹시라도 패드를 넘어 옷에 베인 건 아닐까 긴장하기도 한다. 월경을 하고 있을 때는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중학교 때는 월경양에 따라 그 때 그 때 생리대를 갈고 처리하는 것이 미숙해서 아예 어른용 기저귀를 사용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준비를 위한 체력장 연습이 있던 날, 난 이리저리 몸을 과하게 움직여도 월경혈이 새어나오지 않게 어른용 기저귀를 하고 수업에 나갔다. 그런데 바지로 피가 막 새기 시작했다. 급하게 화장실에 가서 살펴보니 앞면과 뒷면을 바꾸어 대고 있었던 것이다. 흡수기능이 전혀 없는 뒷면을 몸쪽에 대고 있었으니 월경혈이 다 새어나왔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 날 내가 좋아하던 담임선생님께서 그 수업에 함께하고 계셨는데, 나는 그에게 이런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었었다.
월경은 시작했지만, 생리대 모양의 차이와 용법에 대해서 엄마가 자세히 알려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날개형 생리대를 하는 법을 알지못해서 대학교때 즈음 되어서야 날개형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런저러한 불편함과 당혹스러운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그것때문에 월경이 저주스럽지는 않았다. '여자들만의 연대'가 좋았던 것도 있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월경전 증후군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이유없이 가라앉는 걸 느낄 때도 있었지만, 월경 전마다 매번 그런 건 아니었다. 배에 조금 뻐근함이 느껴질 때가 있는 정도이다.
극심한 월경통에 대한 이야기들과 커리어를 위해 월경중단을 선택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월경을 겪는 여성들에게 이 사회가 얼마나 가혹한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에서 '개인적인 생리현상'에 대한 배려를 기대하는 건 힘든 일이다. 사회는 끊임없이 '프로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강조한다. '개인적인 것을 공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 이것이 지금 이 사회를 병들게 한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빠들이 제 시간에 퇴근하지 못하는 것도, 워킹맘이 주변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것도, 죽은 아들의 장례식에 업무를 한 것이 칭송되는 것도 모두 한 뿌리에서 시작한다.
월경에 대한 모든 것이 더 당연했으면 좋겠다. 월경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밀스럽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월경전 증후군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자연스러웠으면 싶다. 월경에 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 월경 후 뒤처리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월경이 우리 내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 흐름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해주면 좋겠다.
월경주기가 여성에게 육체적으로 내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명확한데, 사실 나는 월경주기가 주는 '흐름'을 민감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작년 한 해 동안의 월경주기를 따져서 이를 확인해보려고 했지만 뚜렷하게 발견한 것은 없었다. *(2016년 월경주기로 본 1년간 내 몸의 흐름 http://whalesong.tistory.com/632)
월경을 시작한 이후로 나의 월경주기는 참으로 불규칙했다. 30일에서 40일 사이를 왔다갔다 했고, 심지어 중학교 3학년 때에는 한달 내내 피를 흘린 적도 있었다. 그러한 불규칙함이 아이들을 낳으면서 서서히 규칙적으로 되더니 막둥이 이후 1년간은 정말 자로 잰듯 30일 주기가 지속되기도 했다. 작년 8월 월경혈 양이 급속히 줄어들고 월경이라고 하기 애매한 피비침이 며칠이나 계속되더니 갑자기 주기가 32~35일 정도로 늘어나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월경의 지혜를 아직 온전히 느끼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의 자궁이 월경이라는 현상으로 내 인생과 함께하고 있다는 건 알고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나는 친구들하고 있을 때만 살 것 같았고, 집은 나에게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같은 공간이었다. 그당시 극단적으로 불규칙했던 나의 월경주기는 혼자 있을 때 극도로 불안하고 우울했던 나를 반영한 것이리라. 그리고 막둥이를 보내고 자궁안에 피가 계속 고여 결국 처치시술을 받고 했을 때, 또 그 이후 처음 한 월경에서 피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을 때 나는 자궁이 나와 함께 울어주고 있다고 느꼈다. 폭포같은 피를 쏟아내는 내 몸이 걱정되기 보다 그렇게 슬퍼하는 자궁이 고맙고 미안했다.
면생리대를 빨 때마다 내 몸에서 흘러나온 붉은 에너지를 실감한다. 빨간 물줄기를 만들며 흐르는 피들.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번 나를 변화시키는 에너지. 거대한 자연에 종속되고 휘둘린다는 것이 나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내 친구의 이야기에 이제 귀기울여 보려한다. 가장 가까이에서 나와 함께 울고 나에게 힘을 주고 있는 자궁.
그 이야기 속에 숨은 지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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