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2017년 4월 月記 본문
축 늘어져있던 3월을 지나 4월에는 조금 기운을 차렸다. 아이들은 모두 보내고 비는 시간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의 약속을 잡기도 하고, 첫째와 요일을 잡아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바깥으로는 학교 안에서 구성원들끼리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부딪힘에 대해 고민하기도 했고, 내면적으로는 나의 불안을 직면하고자 하였다.
#막둥이돌
4월 18일, 막둥이 돌이었다. 나는 마른사과를 넣어 백설기를 찌고 미역국을 끓여서 생일주인공 없는 생일상을 차렸다. 돌떡이니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남색또 엄마들에게 조금씩 주기도 했다.
미역국을 끓이고 돌떡을 준비하면서도 마음이 괜찮아서 이제 괜찮은가 보네...했는데 봄 노래를 듣는데, 눈물이 펑펑 나왔다.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나는 정말 생명의 계절, 참 좋은 봄날 태어날뻔 한 나의 아기.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고 사람들은 행복에 겨워 노래하는데 우리 아기는 없구나...이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막둥이 돌 즈음해서 나는 셋째를 임신한 나니아를 만나고, 막둥이와 몇달 차이로 태어난 주미님 아기를 보고, 다운증후군인 유림이 동생을 보았다. 나는 막둥이에 대한 나의 마음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지 아직도 혼란스럽다.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될 것 같아서 더 답답했다. 그래서 아기를 먼저 보낸 적이 있다는 혜성이 언니와 벼리언니를 일부러 만나 그 경험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어떤 경험이었고 어떻게 극복했고 지금은 어떠한 기억으로 남았는지...그래도 아직 모르겠다. 시간이 더 필요한지도 모르고 어쩌면 애초에 정의내릴 수 없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아들과의 데이트
둘째가 낮잠을 자면 "이제 엄마랑 둘이네, 우리 둘이 뭐할까?"라며 마냥 신나했던 첫째. 그게 불과 작년이다.
그래서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첫째가 하교하고 둘재가 하원하기 전, 오롯히 둘만의 시간을 잘 활용해서 첫째의 그런 마음을 채워줘야겠다 다짐했었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엄청 좋아할꺼라 생각했는데 첫째는 오히려 시큰둥했다. "너 예전에는 엄마랑 둘이 있는 거 좋아했잖아!"하고 억울해서 항변을 하니, 어디 나들이갔을 때 이솔이가 이리저리 방해하니까 그 때는 엄마랑 둘이 있는게 좋은데 다른 때는 그다지 더 좋지는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빼앗기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T0T 친구들과의 시간이 더 좋아지는 시기가 이제 오고 있구나, 아직은 '엄마, 사랑해.' '나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하지만 유효기간이 얼마 안남은 거구나. 아아아아 첫째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간다는 것이 편하기도 하면서 서운했다. 지금이 아니면 이제 안되겠다! 싶은 절박한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원래는 첫째와 함께 글쓰기 시간을 갖거나 그림을 같이 그린다거나 서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인문학적 주제에 대해서 초등생의 눈높이로 대화해보는 걸 꿈꿨다. 그런데 내 기대가 너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잠자기 전 성경을 읽는데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에 대해 내가 설명을 하기 시작하자 어느 날은 무척 듣기 힘들어하다가 급기야 "나 힘들어서 내 기도는 못하겠어. 그냥 잘래."라는 것이었다!!!! 내가 설명을 재밌게 못하는 것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윤우에게 이런 식의 시간은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차라리 자연에서 물고기 잡고 풀 따고 벌레 잡으며 노는 건 어떨까? 싶어서 집에 고이 모셔져 있던 자연놀이 책을 다시 찾아 뒤적거려보기도 했고 실제로 하루는 비오는 날 둘이 잠자리 애벌레 먹이를 잡아준다는 명목으로 올챙이를 잡으러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에 벌레 외에 자연에는 그닥 관심없는 아들에게 나의 욕심을 꾸역꾸역 강요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서히 나는 깨닫게 되었다. 무언가 커리큘럼을 짤 게 아니라 그냥 둘이 즐겁게 시간 보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엄마와의 시간이 즐겁다는 것, 그거 하나만 느끼게 하자. 그래서 그 다음에 돌아온 둘만의 시간에는 맛있는 것 사먹고 천변을 걷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언제까지 가능할랑가? 올해? 아니면 이번 학기? 확실한 건 얼만 안남았다는 거. -_-;;;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며 공존한다는 것
학교에서 모터쇼와 자동차 카달로그, 용돈 문제에 대해서 반모임 때 이야기가 오고간 모양이었다. 우리 부부도 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었고 '아이의 성향을 존중하고 어느 정도의 자유를 주되 이러한 부분에 불편해하는 가족에 대해서 배려할 부분도 챙기기'로 정리가 되었었다.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다보면 길이 찾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은 있지만 조금은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솔이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 안전벨트 부분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공식적으로 이야기된 것은 아니고, 내 마음 속에 깃든 혼란스러움이다. 우리 부부는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깐깐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이 깐깐하다는 것도 다른 사람 시각에서 그렇다는 거지 우리들은 이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우는 아직도 어린이용 카시트를 타는데 이에 대해 친구들이 "너 아직도 카시트 타니?"라고 놀린다. 윤우는 별다른 대응도 투정도 하지 않지만, 난 속으로 부글부글 끓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언젠가 따끔하게 한마디 쏘아줄까? 라는 생각마저도 하고 있다. 어린이라도 어른용 안전벨트로는 안전하지 않으므로 어린이용 카시트를 거의 5~6학년까지 태우는 게 안전하다.
그런데 이번에 어린이집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가며 아이들을 몇몇 엄마들이 태워줘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아이 4을 뒷자리에 태우라고 하셨다. 나는 거절했고 모두에게 안전벨트를 해주기 위해서 앞자리에 카시트를 해서 이솔이를 태웠는데, 원래 앞자리에 카시트를 장착하지 말라는 게 권고사항이라 많이 헷갈렸다. 그래도 4명을 안전벨트 없이 태우는 건 아니지않나? 여러가지 안전사고로 아이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어쩜..
내가 선생님께 나의 우려를 말씀드리겠다고 하자 남편은 오히려 찍힐 뿐이라며 나를 말렸다. 모르겠다.
#오소희씨를 통해 돌아본 나의 마음
우리학교에 있다가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낸 작가인 오소희씨에 대한 내 감정이 복발한 시기였다. 그 사람의 잘못이라기 보다 내 안에 만들어놓은 오소희라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어그러졌기에 오는 불편함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격한 감정이 누그러지지가 않았다. 그 감정의 끝을 잡고 따라내려가다가 결국 자존감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나의 불안과 두려움의 바탕도 모두 자존감의 문제인 듯 하다.
그런데 그 해결책을 생각한 것이 결국 '하느님'이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지 긍정받고 사랑받는 경험의 부재에서 노는 것이 자존감의 결핍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사랑은 오직 하느님만이 나에게 주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문제가 있고 그것을 고칠 수 있는 어떠한 동력, 즉 지금까지의 가던 길에서 방향을 들어 나아가는 '평소와 다른 힘'이 필요하다고 할 때 그것을 스스로 끌어모으는 것이 가능할까? 심리서적에서는 이를 행동요법으로 바꾸라고 하고 명상서적에서는 '내면의 힘'을 믿으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 드는 생각은 융이 말한 것처럼 내면의 힘이라는 것이 결국 신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며 그것을 구분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을 좀 더 바라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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