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코스모스> 7장 밤하늘의 등뼈 요약 본문
* 요약
인류는 세상의 근원을 알아내기 위해 우주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것은 태초에는 비유적인 해석이었고 이후에는 산화적 설명이었다. 그러다가 2500년전 이오니아인들은 우주를 신과 떨어뜨려 규칙으로 이해하고자 시도했다. 섬중심 문명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교류를 가능하게 했고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운 발상 또한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의 비약적 발전은 노예제도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사회적 성숙이 동반되지 않는 지적 성장은 결국 신비주의로 퇴보하게 되는데, 기득권들이 자신을 노예와 구분하기 위해 노동을 천하게 여겨 실제적인 관측과 실험마저 중요하지 않게 인식되어 버린 것이다. 그후 급격히 이루어지던 지적 성장은 주춤하며 더딘 성장을 이어나가게 되는데, 이 성장은 관측을 통한 이론의 검증과 그것에 의한 이론의 파기, 새로운 이론 등장이라는 용기있는 결단과 유연성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 인류의 지적 성숙 과정
개개인의 지적 성숙에도 생물학의 반복설이 성립된다고 믿는다. (개체 하나의 발생 과정이 해당 종이 겪어온 진화의 전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조상들이 해 온 사고의 과정들을 되풀이하면서 하나의 개인으로 성장해 간다.
보츠와나 공화국 칼리하리 사막에 사는 !쿵쪽은 하늘이 거대한 짐승이고 우리는 그 짐승 뱃속에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머리 위의 은하수는 그 짐승의 등뼈이다.
이같은 비유적 해석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한 막강한 존재들이 다양한 이름의 신으로 승격됐다. 그들에게는 이름, 계보, 수행할 임무도 맡겨졌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라의 가슴에서 뿜어져나온 젖이 은하수라고 하며 그래서 'Milky way'라는 이름이 붙었다. 수천년동안 인류를 억눌러 온 생각은 이 우주가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신에 의해 조정당하는 꼭두각시 연극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2500년 전 이오니아에서 새로운 깨달음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생각, 인간과 동물이 원래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 발생했다는 생각, 지구는 단지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이며 별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 또한 태동했다. 그들은 우주에 내재적 질서가 있으므로 우주도 이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연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훌륭하게 정돈된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 이오니아의 위대한 깨달음들
왜 이오니아였을까?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는 섬 중심으로 발달한 세계였고 이는 섬마다의 다양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모든 섬들의 사회적, 지적 다양성을 하나로 묶을 만한 강력한 중앙 권력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탐구가 가능했다. 따라서 미신을 조장해야할 정치적 필요도 약했다. 게다가 문명들이 교차하는 길목에 있었다. 페니키아의 음성 알파벳 기호를 처음으로 그리스어에 사용했고 이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사제의 전유물일 수 없게 했다. 정치적 권력은 상인들의 손에 달려 있었고 상인들은 번영의 성패가 달려 있는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었다. 여러 신들의 각축장에서 신을 가정하지 않고 세상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깨달음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 이오니아의 과학자들
탈레스 -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와 수평선 위에 떠오른 태양의 고도를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잼. 그리고 물이 세상의 근원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정말 중요한 점은 문제해결을 위해 그가 접근한 방식이다. 신들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물리적 힘의 결과로 만물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야말로 당시 사고를 뒤흔드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아낙시만드로스 - 연구에서 실험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최초의 인물. 수직으로 세워놓은 막대기의 그림자가 이동하는 것을 관찰하여 1년의 길이를 정확하게 측정했다. 자연발생설을 주장하고 인간이 다른 동물로부터 발전한 것이라는 진화의 개념을 말했다.
히포크라테스 - 의술이 물리학과 화학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
이오니아의 과학적 사고방식과 실험기법은 그리스 전역을 거쳐 이탈리아, 시칠리아까지 퍼져 나갔다.
엠페도클래스 -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개념을 생각해냈으며 공기의 존재를 믿지 않던 시절, 실험을 통해 공기를 존재를 증명하고 주장했다.
데모크리토스 - 원자의 존재를 구체화했으며 원뿔과 피라미드의 부피를 '극한의 원리'를 이용하여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얇은 판을 쌓아올리는 것) 자신의 시대를 지배하던 종교들을 모두 악이라고 판단했으며 불멸의 영혼이나 불멸의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원자와 빈 공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아낙사고라스 - 물질이 세계를 지탱하는 근본이라 믿었고 달이 밝은 것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처음 주장했으며 지구, 달, 태양의 위치 변화에 따른 달의 위상변화를 설명했다. 당시 사람들은 태양과 달이 신이라고 믿었기에 이러한 생각은 매우 위험하게 생각되었으며 불신앙의 죄목으로 투옥되었다.
피타고라스 -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우주를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천체' 측 코스모스로 봄으로써 우주를 인간의 이해 범주 안으로 끌어들였다.
* 이오니아의 과학적 사고는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나.
이오니아 사람들은 대부분 우주의 조화에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은 관측과 실험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피타고라스는 순수한 사고를 통해서 자연의 법칙을 추론해 낼 수 있다고 가르쳤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수학적 논증의 객관성 및 확실성에 매료되었고 수학적 논증이야말로 인간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인지 세계라 믿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은 완벽한 세계의 단지 불완전한 투영일 뿐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이어진다. 피타코라스학파는 플라톤에게 그리고 기독교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들은 상충하는 관점들의 자유로운 대결을 허락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는 정수를 좋아했고 무리수(두 정수의 비로 표현할 수 없는 수)를 일존의 위협으로 간주했다. 중요한 수학적 발견들은 외부와 공유하지 않았는데 신성한 지식은 소수집단의 전유물로 여겼다. 그들은 구와 원을 완벽한 존재로 여겼다. 비록 감각으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완벽하고 신비로운 세계의 존재를 확신했고 기독교도들은 이 사상을 쉽게 흡수했다. 이런 생각은 케플러에게 영향을 미쳐 케플러가 우주의 조화로운 비율을 탐구하게 하였으나 원이라는 완벽함에 갇혀 행성 운동의 연구가 10년이상이나 지체되게 되었다.
이오니아의 중상주의적 전통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노예경제의 발전도 동반했다. 아테네인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온갖 대범한 생각들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해당됐지, 구성원 전부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육체노동은 노예를 뜻했고 과학실험도 육체노동이었다. 중상주의 전통을 기원전 600년경 이오니아의 위대한 깨달음에 크게 기여했지만 노예제도를 통하여 200년 후에는 과학적 사고의 몰락을 가져오기도 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사회에서 편히 살던 인물이었기에 노예제도를 정당화했고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르쳤다. 그들은 하늘에서 지구를 분리시켰다. 그것이 서양의 정신세계를 2000년이상 지배해온 분리의 사상이다.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코스모스가 설명될 수 있는 실체이고 자연에는 수학적인 근본얼개가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과학을 하려는 동기를 크게 불어넣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입지를 불안하게 할 소지가 있는 사실들이 유포되는 걸 억압하고 과학을 소수 엘리트만의 전유뮬로 제한하고 실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주고 신비주의를 용인하고 노예사회의 문제들을 외면함으로써 인간의 위대한 모험심에 큰 좌절감을 안겨주고 과학의 발전에도 어쩔 수 없는 퇴보를 가져왔다. 이오니아인들의 과학적 업적은 후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통해 다시금 재발견되었다. 피타코라스 이후 3세기가 지난 뒤 이오니아 지역의 사모스섬에서 아리스타코스는 태양이 행성계의 중심이고 모든 행성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보다 1800년이나 전이다.
* 우리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
아리스타코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은 지구와 지구인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한 것이다. 지구과 지구인이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통찰은 위로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보편성으로 확장됐고 옆으로는 인종차별의 처폐로까지 이어졌다.
1915년 섀플리는 "태양계는 은하의 중심이 아니라 은하의 외진 변방에있다."라는 대담한 주장을 폇다. 20세기 중반까지 천문학자들은 오직 하나의 은하, 우리 은하만 있다고 믿었다.
지상에 발을 붙이고 살기 시작한 이래,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우리는 하늘을 보고 머릿 속에 모형을 구축해보고 관측을 통해 검증하고 예측이 실제와 맞지 않을 경우 그 모형을 과감하게 버리면서 모형을 다듬어 왔다. 이론적 모형을 이렇게 지속적으로 구축하고 파기하는 과정을 뒤돌아보면서 우리는 인류의 진정한 용기가 과연 어떠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아리스타코스 이래 과학작들의 임무는 우주 드라마의 중심무대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한발씩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이었다. 여태껏 인류가 멋모르고 부렸던 우주에서의 특권의식에 먹칠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코스모스를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자신의 위상과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주변을 개선할 수 있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구가 우주에서 중요한 존재로 남길 원한다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던져진 질문에 깊이있는 답변만이 우주에서의 지구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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