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부르는 노래
<빨래하는 페미니즘> 내 인생의 페미니즘 본문
빨래하는 페미니즘 - 스테퍼니 스탈 지음, 고빛샘 옮김, 정희진 서문/민음사 |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통해 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고, 나의 삶은 물론이고 인류의 역사를 통해 이어져내려온 여성에 대한 억압이 마음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분석심리학 3부작>을 통해서는 우리의 정신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페르조나, 자아, 자기, 그림자, 심혼을 살펴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 표현되어지는 내가 과연 내 참모습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나를 올바로 보기 위한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페미니즘'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의 추천사를 쓴 장희진 교수가 이야기했듯이 페미니즘은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주기'때문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에는 '여성'임을 부정했었고, 그러면서도 '출산'이라는 축복에 희열을 느끼며, '대지의 어머니'가 홀대당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가 도대체 '여성'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어디쯤 위치해있는지 궁금했다.
페미니즘은 나의 인생과 결코 떨어뜨릴 수 없이 긴밀했다.
어린시절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누워있는 아빠가 엄마에게 물을 가져다달라고 했다. 나는 아빠에게 "아빠가 직접 가져다 먹으라."며 오열을 했었다. 그 당시 엄마, 아빠는 굉장히 황당해하시며 '엄마가 아빠에게 물 한잔은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장면이 가부장제의 한 단면을 표현한 장면이든 아니든 중요한 점은 내가 이러한 부분에 민감했다는 점이다.
"여자는~"으로 시작되는 모든 이야기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꼈다. 이모가 사촌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여자아이들만 모아서 "여자애들, 이것 봐봐. 바닥에 먼지가 있으면 이렇게 손으로 쓸어서 꾹 눌러 찍은 뒤에 버리면 돼. 알아둬."라고 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니 왜 여자한테만 이 얘길 하는데?'라며 속으로 열받아 했었다. 고등학교 때 야영을 가서 극기훈련 비슷한 걸 하는데 선생님이 "여학생들은 이렇게 해요."라며 더 쉬운 포즈를 제시했다. 내 차례가 왔을 때 난 남자아이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했다. 나는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며 여자가 하지 못할 역할이나 직업은 없다. 모두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점에 굉장한 가치를 두고 있었으며 온 몸으로 그걸 증명해내고자 했다.
그런데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매우 걸맞지 않은 측면도 있었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특징은 친구들에게 음담패설을 전하는 아이였다는 거다. 페미니즘운동권에서는 음담패설에 대해 성희롱의 측면에서 매우 강경하게 대응한다. 하지만 나는 음담패설을 여자들이 순수하게 즐기지 못한다는 건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다는 것의 반증이며 이것은 여성들이 스스로 풀어야할 족쇄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면을 포함하는 음담패설, 예를 들어 개인의 신체나 경험에 대한 이야기라면 상황이 다르고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음담패설이라 할지라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중지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성적인 이야기'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높은 것이 자신의 어떤 가치관 때문인지, 그리고 그것은 진정 사회가 강요한 모습이 아닌 내 것이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음담패설을 즐기는 여자아이였기에 나는 남자아이들에게 대화하기 편한 상대였다. 그래서 남녀공학이었던 고등학교에서 남학생들과 매우 격없이 지냈는데, 이것이 몇몇 여자아이들의 눈에 거슬려 왕따를 당한 적도 있다. 여자 부반장이 주도한 왕따였고, '반의 대화합'을 내가 망친다는 이유였다.
대학교에서 페미니즘 운동과 정면으로 마주 대하게 되었다.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친구가 곁에 있기도 했다. 관련 강의도 듣게 되었다.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들이 받는 억압에 분노하고 단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받는 차별에 반대했지만 나는 페미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아직 나의 페미니즘은 기존의 것과 많이 달랐다. 강의 중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 레포트를 써오는 숙제가 있었는데 델마와 루이스가 불평등을 극복하는 방식이 폭력적이라는 이유를 들며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없다고 썼었다. 엠마 융이 이야기한 '남성화된 여성 운동'에 대한 반대였던 것이다.
결혼은 사회가 사람들을 종속시키고 관리하기 편하게 하기 위해 만든 제도 이며 가부장제의 산실이라는 생각에 결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아이는 낳고 싶었지만 결혼은 하기 싫었다.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며느리의 의무와 역할 속으로 나를 우겨넣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비혼모를 선택할 용기는 없었다.
결국 결혼을 하고 결혼 초기에는 여자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것들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시댁에 가면 나만 설거지를 하고 처가에서는 남편이 일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명절 때 시댁에 먼저 가야만 하는 것 등등 모두 거부감이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어른들에 맞설 배짱은 없어서 매번 어설픈 부부싸움만 하곤 했다. 결혼식 준비를 하며 청첩장 하나 고르는데도 어른들 눈치를 엄청나게 살펴댔으니 말다했지.
그래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가정 안에서만큼은 가부장제의 흔적을 벗겨내고 싶어 부단히 애썼다. 아기가 밤에 깨면 일단 남편을 깨워 아이 달래기에 같이 동참시켰다. 불쌍한 남편은 그 당시 피곤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상포진이 걸리는 수모를 당했었다. ;;;; 결혼 전 남편은 만약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면 가사일은 거의 내가 해야할 것이며 그것이 평등한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남녀평등에 민감한 편이 아니고 어쩌면 전형적으로 '남성'으로 커온 사람으로서 어이없는 몇몇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여자동기가 쓴 연애고민 글에 '헤픈 여자'라는 댓글을 달고 내 몸에 대해 대놓고 폄하하는 농담을 했다. 또 성추행을 당하고 들어온 아내에게 성추행범 흉내를 내며 장난을 걸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그 모든 게 사무치게 서럽고 분노가 치밀어올라 울면서 이솔이가 커서 어떤 옷을 입건 어떤 행동을 하건 '헤픈 여자'라는 말을 절대 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그가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남성이듯 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평등개념이 기본세팅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게다가 요리를 잘해서 더 세팅이 견고하다.
쓰고 보니 내 인생은 '여성'으로서 나의 자리를 찾는 긴 여정인 것 같다.
나는 때로는 투사인 듯 때로는 일탈자인듯 때로는 위선자인 듯 살아왔다. 여성임을 거부하고 싶어하다가도 남녀평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가부장제의 억압에 치를 떨고 그러면서도 페미니즘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성적인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남성적인 폭력성을 배제한 운동을 주장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여자아이들이 무기로 내세우곤 하는 애교와 눈물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남성들의 요구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가정주부이지만 육아와 가사가 그닥 나에게 맞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예요.'라고 말하는 여성들을 경멸했다. 페미니스트라는 언어에서 느껴지는 까칠함을 덧입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언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나는 인간이 아니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여성이라면 페미니스트여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으로서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새로 시작하는 <빨래하는 페미니즘> 책을 통해 알아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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