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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을 소비할 것인가, 실천할 것인가 - ORGA 친환경 샵 이용 후기 본문

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깨어있는 소비자되기

친환경을 소비할 것인가, 실천할 것인가 - ORGA 친환경 샵 이용 후기

고래의노래 2010. 3. 17. 23:38
* 친환경의 길로 들어서다.

유기농, 친환경 먹거리에 오래 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구매하지 시작한 건 아기를 낳은 후이다. 건강하고 깨끗한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제까지 생각 속으로만 중요시하던 가치들을 아주 단순한 '소비'행위에서만이라도 풀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는 삶을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 변해야 했고.

그렇게 나의 소비방향을 틀게 된 걱정거리와 가치들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1. 환경호르몬 걱정 - 환경호르몬에 특히나 취약하다는 남자아이인데, 환경호르몬 물질이 들어있다는 농약 성분을 조금이라도 먹이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2. 합성첨가물 배제 -  연약한 아기에게 더 좋은 것, 더 순수한 것만 주고 싶은 엄마의 기본적인 마음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이고 처절했던 이유는 아토피의 괴로움을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화학실험실이 아니라 주방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싶다는 아주 기본적인 욕구.
3. 동물복지 - 모든 에너지는 소멸되지 않고 보존된다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물리적으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생명체가 느끼는 행복, 좌절, 고통, 기쁨도 에너지이고 이것은 그것을 취하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고 믿는다. 채식주의자가 되기에 게으르다면 최소한 그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보장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4. 자연친화 - 유기농, 친환경 농법으로 소비자도 물론 건강해지지만, 땅도 건강해진다. 화학농약에 물든 토지를 정화시키는 그 더디고 힘든 과정을 지지하고 싶었다.

* ORGA를 발견하다.

그래서 한살림을 이용하고, 백화점 유기농 코너를 돌다가, 집 근처에 올가(ORGA)라는 유기농 먹거리 매장을 알게 되었다. 풀무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이 가게는 국내외 유기농 식품을 모아 파는 멀티숍인데, 얼리지 않은 생고기와 어류를 직접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여기에서 알게된 뻥튀기 과자들은 아기들 간식으로 아주 안성마춤이어서 자주 사먹였다. 와코도 아기 과자를 먹이는 것조차 찜찜했는데, 쌀과 천연감미료만을 넣은 과자라니, 마음이 놓였다. 그 후 여러 유기농 매장에서 뻥튀기 과자를 사보았지만, 올가 것만큼 부드럽고 모양도 완벽하게 동그라면서 크기도 적당한 것을 보지 못했다.
또 여기에서 운영하는 베이커리의 생크림 케익은 정말 최고이다!
단 것을 싫어하는 신랑이 먹어보고 살면서 먹어본 케익 중에 제일 맛있다고 칭찬했고, 몇 달 지나자 또 먹고 싶다고 이야기하기까지 했다. 이 곳의 케익을 먹으면 시중 판매되는 케익이 '설탕 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지 않고 부드러운 우유맛 크림은 환상적이다. 게다가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시중 브랜드 빵집의 빵에 얼마나 많은 합성첨가물이 들어가는지 본 후로는 올가 베이커리에서만 빵을 사먹게 된다. 빵도 성분표시를 할 필요가 있다! 한살림에서도 베이커리를 세롭게 운영하게 시작했다고 하는데, 언제 한 번 사먹어 봐야겠다.

* ORGA에 놀라다.

이렇게 올가의 열성팬이 된 후 어느 날, 아기 과자가 다 떨어져서 겸사겸사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주문을 했다. 4만원 이상이어야 무료 배송이 가능해서 마침 필요했던 오징어와 고기도 함께 주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배달된 상자를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 모든 냉동식품이 '개별적으로' 한 상자씩 포장되어 있었고, 다른 식품들도 이중으로 모두 비닐포장이 되어 있었다. 주문했던 오징어, 오뎅, 고기가 따로따로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져 왔으니, 우리 집 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상자더미가 현관 가득, 높이 쌓여 버린 것이다. 스티로폼 상자들은 모두 내용물보다 훨씬 커서 주문품들을 한 상자에 모두 함께 넣었어도 될만한 사이즈였다. 이건 주문배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통합 쇼핑이 아니라 '따로 쇼핑, 모아 배달'만 한 듯 했다. 하나의 주문을 쇼핑-> 포장 -> 배달 하는 게 아니라, 야채담당, 육류담당, 해물담당이 들어온 주문을 포장해 놓으면 같은 배송지의 포장들만 통합하는 식인것만 같다. 이렇게 거한 상자들에게 대한 수거안내도 없었다.
여러 곳을 거쳐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상자도 수거해가는 한살림과는 너무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니, 올가의 친환경적이지 않은 운영은 이 외에도 있었다. 장바구니에 대한 할인도 없고 비닐봉지도 50월을 받지 않는다. 장바구니의 경우 작년까지는 쿠폰제가 있어서 쿠폰을 다 찍으면 사은품을 준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그것마저도 없다.

* 친환경, 소비만으로 충분할까?

친환경 먹거리를 구매한다는 것은 단지 농약과 합성첨가물을 배제한 식품을 사먹는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소비활동이기 이전에 생활방식에 대한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식품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더 이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그야말로 '친환경' 생활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한마디로 '귀찮게 신경써야 할 일들'을 잔뜩 생기게 한다. 냉혹한 시장의 원리에 따르면 당연히 도태되어야 할 '번거롭고 비싼 구매'를 유지하려면 그래서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저런 경험으로 올가를 '소비에 중심을 둔 럭셔리 유기농 샵'으로 규정하고 이용을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올가 사이트에서 아래와 같은 공지를 보게 되었다.

http://www.orga.co.kr/event/event_01.jsp
http://www.orga.co.kr/event/event_090217.jsp

역시 그 엄청난 스티로폼 상자에 대해 회수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환경지킴이에 가입하면 스티로폼 상자를 사용하지 않고 배송해주기도 한단다. 에구, 이런 것들은 인터넷 쇼핑 첫 이용고객에게 배송시 알려주어야 했다. 인터넷으로 공지한 게 일단 책임을 피해갈 수 있겠지만, 친절한 행동은 아니었다. 더군다가 나같은 소비자는 위와 같은 이유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는 것인데.

* 안심, 하지만 조금 더...

이제 조금 안심을 하고 올가를 이용할 수 있겠다. 내 생애 최고의 케이크과 아기과자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
하지만 여전히 올가가 친환경 판매 뿐 아니라 친환경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조금 더 신경써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