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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노래의 사는 이야기/하루歌

2017년 8월 月記

고래의노래 2017. 9. 16. 00:26

뜨거웠던 여름날의 기록

* 아이들의 여름방학

윤우도 이솔이도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여름방학을 시작하기 전 나의 야심찬 계획은 소도시, 또는 시골 곳곳에서 내가 꿈꾸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방문해보고 그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의 방향을 잡아보는 거였다.
그런데 윤우의 복사준비, 비올라 레슨, 연극연습모임으로 8월 달력이 빼곡히 채워져서 도저히 어디론가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내 석문호흡 스케줄까지 더해져서 거의 매일 어떤 모임들이 있었다.
내가 원하는 여정으로 채울 수 없는 점은 아쉬웠지만 적당히 바빴고 즐거웠고 어떤 점에서는 의미있었다.

특히나 복사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윤우가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걸 위해서 우리 부부가 부모로서 해 줘야 할 것은 무엇일지 고민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매일 미사에 나가고 성경 필사를 해야하는 복사준비 과정은 물론이고 복사단의 의무라는 것과 그 곳의 경직된 환경이 아직 3학년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것이라고 생각해서 윤우에게 4학년 이후에 복사를 도전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복사에 대한 윤우의 열망은 꽤나 단단한 것이었다.
어떤 목표가 생기면 몰입하고 매진하는 윤우답게 한달간의 복사준비 과정을 착실하게, 하지만 힘들어하면서 ^^ 통과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기도문을 외우고, 매일 기도를 하고, 필사를 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목표지향적인 윤우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목표를 달성해보는 경험을 원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저 욕구를 성당에서 채우고 있는듯.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과정을 즐긴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완벽한 것 바랄 수는 없겠지. 그러한 점들은 학교에서 배워나가길. ㅎㅎㅎ

윤우가 우리 가족의 영성을 이끄는 것만 같다. 고맙다.


* 옹기장 방문

윤우의 여름방학 숙제는 옹기장, 대장장, 직조장을 방문해보는 것이었다.
8월에는 경기도 여주로 김일만 옹기장님을 뵈러 갔다. 옹기장님 가족은 6대째 이어 옹기를 만들고 있는데 얼마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셨다고 한다. 가보니 마침 옹기장님과 그 손자분들이 흙으로 옹기작업을 하고 계셨다.
몇십미터나 되는 용같은 가마는 식어있었는데, 1년에 몇 번 정해서 가마를 피우신다고 한다. 한 번 피우면 이젞지 만들었던 옹기들을 한꺼번에 가마에 넣고 굳히는 작업을 하시는 거다. 상상하기 힘들만큼 높은 온도로 올라간 가마는 식는대만도 며칠이 걸린다고 했다.
아이에게 옹기장님 작업을 보여주고 싶어 왔다고 하고 옹기 하나 만드시는 모습을 쭉 지켜보았다. 작은 뚝배기 하나도 사고.

이 방학숙제를 하러 민속촌에 가서 체험을 하고 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첫째에게 그야말로 장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통을 재현하는 곳이 아닌, 전통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말이다. 더워서 가마를 피우지 않아 불타는 가마를 눈 앞에서 보지 못해도, 흙 한 번 빚어보고 망치 한 번 내리쳐보는 체험하지 못해도, 밥벌이이자 숭고한 자부심인 그분들의 작업을 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지는 그런 곳들.

무언가를 꾸준히 오래 해내고 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것이 꼭 전통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을 몇 번이나 이겨내었다는 것이리라.
아이 숙제였는데, 내가 받은 울림이 컸다.


* 메마른 입술, 피부 트러블

꽤나 오랫동안 입술이 튼 적이 없는데, 7월말부터 갑자기 입술이 심하게 트기 시작했다. 제주도에서 일부러 입술보호제를 사야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얼굴에 아토피까지 도져서 눈이 퉁퉁 부어 쌍거풀이 형체가 사라지기도 하고. 뭐가 문제일까. 막둥이와의 이별 때문인지..


* 막둥이와의 이별준비

2년 전 7월 말 우리는 제주에서 막둥이를 맞이했다. 그래서 7월 말에 다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면서 생각했다.
'막둥이를 잘 보내주고 와야겠구나.' 특별히 제주에서 어떤 의식을 한 건 아니지만 내내 막둥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꽤나 오래 마음앓이를 했다. 석문호흡 수련지도자께서 나를 따로 불러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힘들꺼라고 알고 있었으면서도 마음 한켠에 그래도 다시 아기를 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마지막 날을 이번 여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여름이 지나면 너무 늦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날들이 지나고 있었다. 아기를 다시 품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희망사항이 될 것임을 아프게 확인하는 날들이었다.

막둥이를 기억하며 다시 살리는 것은 이제 다른 숙제가 되었다.


* 남편

오랜 마음앓이를 하며 나는 점점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갔고, 남편과의 대화도 줄어들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서로 거실과 방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별 관심이 없고 알고 싶어하지 않더라도 내 상태를 이야기해야겠다 싶어서 막둥이에 대해 혼자만의 이별을 하고 있는 나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것이 꽤 깊은 상처여서 어쩌면 나에게 트라우마인지도 모르겠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중이라는 이야기까지.

이야기는 순조로웠고 분위기도 좋아서 이제 모든 것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어진 주말에 억눌러진 감정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다. 친절하지 않은 남편의 한마디에 내가 날카롭게 반응했고, 남편도 여기에 같은 방법으로 날을 세웠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 평일이 더 편하고 주말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말까지 남편이 하자, 오히려 모든 감정들이 차갑게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헤어짐이 연상되는 저런 말들을 요즈음 싸울 때마다 내뱉는 그를 보고 있자니, 내 신세가 처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저렇게 칼을 꺼내들 수 없는 건 경제력 없는 내 상황때문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깊게 들어가진 않고 생각이 든 그 지점에서 멈추었다.

며칠동안 우리의 상황을 되새김질하며 내가 그를 벌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상황의 희생자이고, 그는 그 상황을 만든 사람이며 그래서 당연히 그는 내가 어떠한 발광을 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품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라며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단죄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는 그 상황을 표면적으로 온전히 책임지면서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 결정한 자가 가지는 무거운 짐을 지면서.

아이를 보내고 이혼하는 부부들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왜 더 보듬고 서로 위로하지 않고 헤어지는 길을 택할까 이해하지 못했었다. 서로 위로받고 싶은데, 위로할 여유도 에너지도 없다. 그래서 서운함만 쌓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마치 빚쟁이처럼 그에게 배려와 보살핌을 받으려하고, 이미 혼자서도 너덜해진 그는 나에게 그런 배려를 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마음의 상처를 혼자서 외롭게 보살피고 있었을 것 같다.


* 회복적 서클 쫑파티

회복적 서클 워크샵보다 그 이후 연습모임이 나에게 더 많은 의미를 안겨주었다. 경청하고 말 뒤에 숨은 진심을 알아보는 훈련을 하면서 내 삶의 많은 것들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서로의 일주일을 정성껏 들어주고 돌려주는 따뜻한 작업들 속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싹터갔다.
마침내 여름방학 전까지 연습모임을 마치고 개학 이후에 하루 날잡아 쫑파티를 하자고 벼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봐주며 서로 공부를 이어오고, 다같이 모여 클럽으로, 미용실로 일탈을 시도하는 수연님의 친구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내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쫑파티 때 그런 일탈을 한 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홍대의 독립서점을 돌아보다가 만화방에 들어가서 라면 먹으며 만화보고, 홍다 바에서 술마셔보는 일탈 아니고 사실 건전한 만남. ㅎㅎ 그림책 서점에 들러 그림책을 둘러보고 세련된 성인용품 샵에 들러 최신기기들을 탐색하며 꺅꺅 소리를 지르다가 연이어 당당하게 들어오는 젊은 커플들을 보며 시대의 변화를 느끼기도 했다. 담배냄새 없고 심지어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는 깔끔한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고 나서는 길거리의 잡화점에 들어가 귀여운 물건들을 구경하고 길가를 거닐다 길가에서 그냥 끌리는 펍에 들어가 맥주를 홀짝였다.

하와이풍으로 꾸며진 펍의 야외 데크 자리에 앉아 시원한 초가을 바람을 맞으며 하와이 맥주를!
이제 서로를 믿는 우리는 삶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나는 또 그 이야기들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슬픔을 비밀스럽게 간직하지 않고 자주 이야기하면 내 슬픔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 묘한 죄책감을 느끼고는 했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그렇게 가벼워지라고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하고.
이야기가 내 치유의식인 것만 같다. 내 슬픔이 공기 중에 말로 흩어지고 내가 믿는 사람들이 눈물지어준다.
그리고 내 슬픔 앞에서 꺼내놓는 다른 사람들의 슬픔들.. 슬픔이 슬픔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그렇게 치유되어 간다.


* 변화를 준비하다

1년 반동안 꾸준히 참석해온 치유반 독서모임에서 나는 점점 책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서양미술사>에서 갸우뚱하던 마음은 어찌어찌 가닥을 잡았는데 <총, 균, 쇠>에서는 도저히 마음이 모아지지 않았다.
나는 '나'에 좀 더 집중하게 도와주는 책들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치유반 독서모임을 잠시 쉬기로 결정하고 현주언니랑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가 뜻밖의 말을 했다.
내가 냇물에서 펼치고 싶었던 것들을 지금 당장 시도하라는 것. 아직 나는 그럴 내공이 안되는 것 같다고 한발 빼는 나에게 언니의 강력 뽐뿌질 한 마디. "냇물, 올해가 끝일지도 몰라. 이 장소에서 우리 여한없이 즐겨보자."
나 울라고 한 얘기 아닌 거 아는데, 난 울어버렸다.

어쩜 언니는 긴장되고 불안한 일상 속에서도 다른 이의 꿈까지 챙기고 북돋울 수 있는걸까.
내 주변에서 가장 생생하게 삶을 살아내는 몇 안되는 고운 사람.
현주언니를 나와 인연으로 엮어주는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내가 사랑하는 언니, 형부, 그리고 냇물!
영원히 잘 될지어다. 그래서 시작해본다. 내공이 안되도 구르고 부딪히며 성장하자는 각오로.
사랑하는 냇물을 순간순간 더 아끼고 앞으로도 영원히 아낄 수 있게 하자는 각오로!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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